영화 '소울'(2020)로 맞이하는 11월
바람에 자연스럽게 날리며 빙글빙글 떨어지는 단풍나무 씨앗의 모양. ‘조 가드너’의 몸을 한 영혼 ‘22’는 지금 그 씨앗을 홀연히 관찰하면서 자신이 한 번도 실제로 경험해 본 적 없는 고요한 가을의 정취를 보고 듣고 맡는 중이다. 자기 몸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고양이의 몸을 한) 조 가드너는 22에게 어서 이 일을 끝내고 지긋지긋하고 냄새나는 지구를 벗어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22는 이제 막 지구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느끼고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 <소울>(2020)의 중반, 가을 풍경을 카메라도 함께 느리게 관찰하듯 정적이 흐르고 있지만 두 영혼의 내면에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장면이다.
중학교 밴드부를 지도하는 교사로 일하며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갖고 살던 조 가드너는 우연한 계기로 옛 제자였던 드러머의 제안을 받아 유명한 재즈 뮤지션 도로테아 윌리엄스의 쿼텟에서 피아노 연주를 할 기회를 얻는다. 일생일대의 기회를 얻은 기쁨에 이리저리 전화를 걸며 동네방네 자랑하며 뉴욕 시내를 누비던 조 가드너는 건설 현장에서 떨어지는 벽돌도 재빠르게 오가는 거리의 차량들도 아슬아슬 지나치지만 맨홀은 피하지 못한다. 그렇게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떨칠 기회를 잡은 날 조 가드너는 맨홀 아래로 추락해 죽는다. 정확히는, 작중 사후 세계로 향하는 계단에서 벗어나 ‘생전 세계’에 떨어진다.
<인사이드 아웃>(2015)으로 감정들의 세계를 구현하고 <코코>(2018)로 망자들의 세계를 보여줬던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작품인 만큼 <소울>은 인간이 태어나기 전 영혼들의 세계라는 착상으로 제각기 다른 성격과 특징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소울’이 지구에서 태어날 채비를 하는 과정을 충실한 상상력으로 그럴듯하게 보여준다. 작중 설정상 죽었으니 사후 세계로 가야 했던 조 가드너는 공연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에 발버둥 치다 우연히 생전 세계에 잘못 발 들이게 되고, 다시 자신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우연하게 지구에 가기를 거부하는 말썽쟁이 영혼 22를 만나 생각지 못했던 여정을 함께한다.
우연이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는 건 작중 중요한 소재인 재즈 음악의 즉흥 연주와도 관련이 있다. 정해진 악보만을 따르는 게 아니라 연주자가 순간에 몰입해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악기를 가지고 놀 듯 현장에서 선사하는 분방한 음악은 곧 <소울> 속 조 가드너와 22가 함께하는 여정이 마주하는 관문들 그 자체다. 유명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생의 목표이자 영혼의 불꽃으로 생각했던 조 가드너는 생전 세계 속 ‘당신의 전당’에서 자기 삶의 기록이 동네 식당에서 케이크를 먹거나 지하철 창 밖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들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지구에서의 삶에 대해 다 들어서 안다고 생각했던 22는 조 가드너의 몸으로 처음 걸음을 뗀 대도시 뉴욕에서의 숱한 자극들을 몸소 경험하면서 삶이라는 게 살아볼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감각을 얻는다.
서두에 서술한 대목이 곧 조 가드너와 22 모두의 영혼의 지향점이 바뀌는 순간이다. 우여곡절 끝에 조 가드너는 어렵사리 도로테아 윌리엄스 쿼텟으로 가족과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는데, 모두가 떠나고 공연장의 불이 꺼진 뒤 조 가드너가 느끼는 예기치 못한 허무감이 곧 위와 같은 <소울>의 통찰을 넌지시 내보이는 순간이다. 그토록 바다를 찾아 헤맸는데 자기가 있는 물이 곧 바다였다는 물고기의 일화처럼, 조 가드너는 지금껏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에만 골몰해 있는 채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돌아볼 계기를 마련하지 못했던 것이다.
<소울> 속 생전 세계를 총괄하는 ‘제리’는 자신들이 하는 역할이 영혼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영감을 부여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야기 자체가 인생 목표나 교훈을 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는 단지 관객 각자에게 그 경험을 바다처럼 적셔놓을 따름이다.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누구든 영혼까지 씻기는 듯한 스토리텔링의 경험을 하고 나면 일상이 달라 보일지 모른다. 지금 눈앞에 있는 공간과 사람과 풍경은 앞으로 다시 못 볼 풍경일지 모르니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라고 했던 소설가 김애란의 문장을 떠올린다. 생전 세계에서의 여정을 마친 뒤 조 가드너는 순간을 기쁘게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글이 읽힐 때는 쓸 때보다 조금 더 살갗에 닿는 공기가 차가워져 있겠다. 여느 해와 다르지 않을 평범한, 그러나 지금껏 만나본 적 없는 세계를 향해 다시 기쁘게 나아갈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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