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2024) 리뷰
외부와 통신이 제한된 환경에서 <콘클라베>(2024) 속 추기경들과 수녀들은 단지 활동의 범위만 한정받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대해서도 비슷한 환경에 놓인다. 당연한 말 같지만 교황 선출의 요건(선거인단 3분의 2 이상의 투표 획득)을 갖춘 투표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며칠이고 몇 번이고 같은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뽑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은 분명 인물(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선호하거나 혹은 선출되어야 한다고 믿는 후보가 뽑힐 때까지 그에게 투표하기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여러 이유를 고려해 최선 혹은 차악의 후보에게 표를 줘서 3분의 2 이상 득표 요건을 충족하도록 할 것인가.
추기경단 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스스로의 신앙심에도 내내 의문을 던지면서 오직 고위 성직자에게 걸맞는 합당한 투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콘클라베'를 주도하려 한다. 누군가는 목자가 되는 게 아니라 농장을 관리해야 한다는 선대 교황의 말을 거의 받아들이는 중인 듯한 그는 가까운 추기경들과의 대화 중 "우리가 하는 일이 차악을 위해 투표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다가 결국은 이상과는 달리 오명과 흠결 없는 교황 후보는 인간이 그렇듯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환경과 상황을 받아들이고 마침내 어떤 선택을 하게 된다.
이미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 같은 작품으로 확실한 연출력을 검증받은 만큼, 탄탄한 원작 소설을 토대로 영화 <콘클라베>(2024)는 긴장과 몰입을 높이는 음악과 음향은 물론 거의 어느 컷에서 멈춰도 이름 그대로 스틸컷이 될 법한 의상과 미장센에 힘입어 극장에서 관람하는 정치적 스릴러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세밀하게 계산된 듯한 컷들의 합 속에서도 명배우들의 말과 표정은 내내 인간적인(불완전한) 고뇌와 그들 각자의 사정과 흠결을 담아내고, 굴뚝 연기의 색깔에 매일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서도 종교인이자 직업인으로서는 물론 시민으로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는다.
수많은 보이지 않는 눈과 귀들을 사이에 두고 작중 인물들 각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과를 마주하는지를 지켜보는 일련의 과정은 특히 결말에 이르러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확신은 통합의 가장 큰 적"이자 "관용의 치명적인 적"이므로, "의심과 손을 잡고 걷"기 때문에 믿음이 살아 있을 수 있으므로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며 계속 나아가는 교황을 보내주시길 기도"한다는 본격 '콘클라베' 시작 전 로렌스의 즉흥적인 연설이 영화 전체의 많은 부분을 대변해 주는 것은 물론 공교롭게도 영화가 국내외에 개봉, 공개된 동시대 극장 밖 세상과도 맞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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