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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영화 '버블 패밀리'(2017) 리뷰

by 김동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한 딸은 학비를 내줄 수 없게 되었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집을 나섰다. 아마도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을 것이다. 독립한 딸은 학자금대출을 받아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며 몇 해를 지냈다. 아무 날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던 어떤 하루. 길을 걷던 딸은 저만치 앞서가는 한 낯익은 남자를 보았다. 분명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기억하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왜지, 왜 없는 번호지? 남자를 따라갔다. 남자를 따라 종각역 플랫폼까지 갔다. 아버지였다. 아빠를 5년 만에 마주쳤다. 천만 명이 사는 부동산공화국 서울에서, 초라한 모습의 아빠와 철로 건너편에서 그를 지켜보는 딸. 이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버블 패밀리>(2017)는 감독 본인과 그 가족의 개인사를 따라가는 여정을 중심으로 1980년대 이후의 부동산 개발 열풍이 배경처럼 언급되는 작품이다. 한때 중산층, 잘 나가는 건설사 사장이었던 아빠와 사모님 소리를 듣던 엄마. 감독의 부모는 IMF 외환위기 이후 몰락한 이후 재기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떠나온 월세 집에서 15년째 살고 있다.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화려한 영광이 ‘버블’처럼 부풀었다 사라진 현재. 감독이자 딸은 이 모든 것의 이면이 궁금했다. 부모는 왜 여전히 과거의 유물처럼 부동산 투자에만 기약 없이 얽매여 있는가. 가족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하철역에서 아빠를 만난 딸은 그날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얼마 후 부모가 사는 월세 집이 이듬해 원룸으로 재건축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부모는 본인의 학자금대출은 물론 부모 자신에게 주어진 빚도 갚을 능력이 되지 못한다. <버블 패밀리>의 카메라는 이 가족의 오늘로부터 강남과 잠실 지역의 개발이 한창이던 1970년대 중반으로 향한다.


공장에서 일하던 아빠는 엄마와 함께 우연한 기회로 ‘땅을 사서 집을 지어 파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일이 잘 되자 본격적으로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그 당시는 그야말로 집을 짓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였다. 사람들은 꿈을 찾아 욕망을 좇아 서울로 모여들고 있었고, 강남과 잠실은 그 중심이었다. 땅값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개발 전보다 200배가 뛰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딸은 태어났다. 당시 엄마는 캠코더로 딸의 생일파티와 같은 일상들을 홈비디오로 남기고 있었다. <버블 패밀리>의 카메라는 ‘버블’이 시작되기 전의 부모의 역사를 추적하며 부모를 인터뷰 하며 또 가족의 일상을 담으며 조금씩 한 가족의 역사로 관객을 인도한다. 2013년부터 촬영된 영화의 중간중간에는 건설 중인 롯데월드타워의 모습과 완공된 현재의 롯데월드타워의 모습이 교차한다. 과거와 현재를 수시로 오가는 동안 부모 명의로 된 땅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등 몇 가지 일들이 벌어지지만 여전히 근거 없는 낙관과 집착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영화 '버블 패밀리' 스틸컷


<버블 패밀리>의 마민지 감독이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회의 경제 발전과 그 이면을 탐구하거나 고발하려는 의도를 갖고 이 작품을 만든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어쩌다 보니 남이 되어 있었다.”라는 내레이션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감독은 단지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사적인 이야기를 (아마도 영화제 출품이나 극장 상영을 염두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부모를, 과거에만 정체된 듯한 부모를 그럼에도 조금 헤아려보려는 시도. 부모의 과거를 따라가며 자연히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풍부해졌으리라. (2015년 감독은 서울시로부터 과거 사진자료와 항공영상 등의 자료를 제공 받았고,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피칭을 거쳐 추가적인 제작비를 마련했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가 가장 공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했나. <버블 패밀리>는 그렇다면 그 좋은 예다. 개발 붐을 타고 누군가 엄청난 부자가 되는 동안 누군가는 중산층의 꿈을 꿨다. 누군가는 그것을 이루었지만 한쪽에서 어떤 이들은 순간의 선택으로, 혹은 더 가진 자들의 힘에 의해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모든 것을 잃었다. 서울, 부동산, 중산층, 가족. 이런 몇 개의 키워드들이 <버블 패밀리>를 78분의 짧은 상영시간 속에서도 꽉 찬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의외로 <버블 패밀리>에는 종종 의도치 않은 유머가 담겨 있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같은 새 문물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빠, 딸과 이야기를 하다 딴청을 피우며 텔레비전 속 드라마 이야길 하는 엄마. 남편 명의로 된 땅의 세부사항을 알아보러 갔다가 그곳 집주인과 짧은 수다를 나누는 엄마. 그 모습들을 지켜보며 담는 딸. 모든 과정들 후에도, 뚜렷하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두 개의 사소한 장면. 하나는 20여년 만에 새로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는 세 사람의 모습. 뭉클하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줄곧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딸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나 좀 찍어봐”라며 카메라를 잠시 넘겨주는 장면. 중요하다. <버블 패밀리>는 부모의 과거를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부모에게도 이야기를 만들어주려는 마음이 담긴 딸의 영화다. (2020.02.03.)


영화 '버블 패밀리'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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