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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맺지 못한 편지

by 김동진

장문의 편지를 쓴 것이 올해에는 처음인 것 같아. 직접 전하기 어렵거나 무슨 말을 어떻게 정리해서 꺼낼까 주저되기도 하는 것들이 생각 나 이렇게 먼저 이야기를 시작해. 당신에게 쓰는 편지에서는 항상 존대를 했는데 오늘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써볼게. 아마도 3년 전 여름날에서부터 지금에 걸치는 기록이 될 것 같아.


당신은 내게 정말 친구 같았어. 주기적으로 또는 느슨하게 보는 책이며 영화며 그런 것들로 맺어진 인연들도 각별히 있지만 20대를 온통 길드원들과 PC방에서 밤샘을 하거나 하며 보내왔고 그 뒤에는 영화가 있었다 보니 내게는 정말 저녁에 대뜸 "술 한 잔 하자"며 불러낼 정도의 친구가 없거든. 원래 사교적인 성격이 못 되었기도 하고. 그래서 당신이 나보다 어리다는 생각을 자주 하지 않았고 내게는 그냥 연락할 수 있고 그냥 보고 싶을 수 있는 친구가 바로 당신이었어. 느슨하지 않게 떨어져 있어도 언제나 닿아 있는 것 같은 흔히 소울메이트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는 그런 단짝 말이야.


친구 같다고 해서 마냥 편하게만 생각한 건 물론 아니었어. 같이 있지 않을 때도 어떻게 하면 같이 보내는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골몰하기도 했고 지도 앱에서 동선을 그려본다든지 그 주에 있었던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당신에게 어떻게 이야기해 줄까 하는 즐거운 생각들이 내 일상을 채웠어. 물론 대화는 항상 하는 것이고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 하루 종일 공유하는 것들이 있지만 말이야. 지금처럼 나는 쓰는 게 편하고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보니 단지 표정을 보고 맛있게 저녁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코인노래방에서 걸그룹 노래를 부르는 걸 눈에 담고 가만히 옆머리 주변을 쓰다듬고 하는 일들이 내게는 행복이었어. 이것을 벌써 과거형으로 표현해도 되는 걸까?


여러 경로로 해주던 가족의 이야기들을 아직 기억해. 당신의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다 같이 죽겠다며 집기를 던지거나 부수기도 했고 일을 하다가 사고를 치기도 했어. 부엌칼을 몰래 숨기기도 했던 어머니도 그런 남편을 견디며 수습하며 단지 딸의 앞날만 걱정하며 제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시는 동안 당신은 미래를 악착같이 생각하며 일하고 저축하고 건강도 망가지고 간신히 회복하고 그러다 꿈보다는 돈을 버는 게 먼저인 사람이 되었어. 부모님에 대해서라면 나도 꺼낼 만한 이야기들이 제법 있지만 당신의 그것에 비할 바는 결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어쩌다 부모가 화두에 오를 때면 나는 말을 보태기보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는 편을 택했어.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슬프고 답답했을까, 또 얼마나 미웠을까. 다 가늠할 길이 없었지만 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에게 편안한 기둥이 되어주기를 바랐어.


알다시피 나는 먼저 결정하거나 제안하기보다는 당신의 이리저리 튀는 상상력과 호기심과 아이디어로 충분한 사람이었어. 어디 가자 뭐 먹자 하는 사소한 것들은 물론이고 영화 한 편을 보거나 할 때도 내 취향과는 다르더라도 당신이 꺼내는 이야깃거리들이 내게는 신비로울 때도 있고 끄덕여질 때도 있고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가 같은 문화예술 또는 콘텐츠를 함께 보고 이렇게 공명할 수 있다는 게 사소하게도 소중하게 다가왔어. 쾌활하면서도 순수한 면으로 다가오는 그 끝 모를 엉뚱함과 재치를 배우고 싶기도 했어. 우리는 때가 되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에 함께 갔고, 포토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줬고, 고양이가 있는 동네 카페에서 같이 책을 읽거나 관광청 이벤트로 생긴 항공권으로 짧게 이웃나라에 다녀오기도 했어. '생애 첫'을 접두어로 붙일 수 있는 것들이 당신과 함께인 것들 중에 늘어 가면서 나는 사랑이 곧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어. 크리스마스와 붙어 있는 생일을 지나거나 새해를 맞이하거나 할 때, 평소 연락하는 이 별로 없어도 오직 곁에 당신이 있다는 사실로 충분했어.


나는 그저 행복한 시간들을 다정하게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따름이지만, 당신은 앞서 말한 가정적인 일들 때문에 빠른 독립을 원했던 것 같아. 내 입장에서 전해주는 이직과 경력에 대한 조언들, 생의 앞날을 마주하는 담대하고 담담한 말들 - 당신은 늘 다가오지 않은 일을 불안해하고 많은 상황의 최악을 상정하고는 하는 사람이었어. - 앞에서도 당신은 늘 돈을 모으는 일이라든지 아버지 어머니의 일이라든지 혹은 제 자신의 건강에 대한 여러 걱정들로 가득했고 나는 다 괜찮다고, 우리는 평범한 미래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지금을 희생하지 말고 다만 오늘을 살자고 했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평소와 같이 퇴근길 저녁 시간을 맞춰 식사를 같이하고 이동한 광화문 대로변 카페에서 당신은 처음 '결혼'을 화두로 꺼냈어. 그건 내가 그간 들어왔고 알고 있는 살아온 환경과 여타의 사유들로 가정을 꾸리는 일이 당신에게 곧 안정을 찾는 일과 상통한다는 이야기였지.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없었지. 내 천성 자체가 앞날을 생각하지 않는 편이어서 오로지 현재에 충실한 유형의 사람이었으니까. 늘 곁에 꼭 붙어 있는 다정한 친구로 여겨왔으니까. 사귀게 된 지 100일을 지나고 1년을 지나고 3년을 맞이하면서도 나는 관계의 어떤 국면을 생각하거나 나이 듦을 염두하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을 엿보거나 들추려 하기보다는 오직 우리가 괜찮은 시간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아마도 만족해 왔던 것 같아. 연인인 관계를 넘어 결혼이라는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 자체를 안 한 게 사실이야. 내게는 그 말이 생의 화두로 끌어올려진 적이 없었거든.


그 자리에서 떠오른 그대로 솔직하게 말했어. 이런저런 사정들(당신에게 굳이 다 공유할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로 내게는 총자산을 구성하는 것들 중 마이너스에 해당하는 부채 영역이 아직 좀 남아 있고, 그건 1인분의 삶에서는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이지만 마땅히 혼자 감내할 영역이고 누군가에게 책임 내지 공동의 분담을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이었으며, 아직 생의 테마에 혼인을 놓아본 적 없는 천진한 사람의 물정 모를 이야기일지 모르나, 다른 걸 다 떠나 아직 혼자(자취)의 삶을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느꼈어. 내 환경이 상대의 고민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그건 곧 '충분한 어른이 되었는가?' 하는 말과도 직면해. 이것에 있어 경제적인 것만 작용하지는 않겠지만 예를 들어 지금의 회사에서 5년 가까이 재직하면서 생각한 다음의 커리어는 적어도 이직 후 3년 정도는 필요할 것으로 여겨졌어. 늦은 독립과 공백기 탓에 직장 경력이 나이에 비해 높다고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스스로 지금보다는 덜 흔들리고 더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께하는 상대에게도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어.


그때 가서 내가 갑자기 더 어른이 되어 있고 더 여유로워져 있으며 더 가정을 꾸리기 알맞은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을까? 그건 아닐지도 몰라. 내가 하는 각종 덕질이나 여러 사회적/문화적인 모임들, 이런저런 부업에 해당될 영역들은 어떨까. 전적으로 그중 많은 것들은 혼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몰라. 시간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우선순위에 속하는 것들일까. 사실은 잘 모르겠어. 아마도 나는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아니, 준비를 넘어 그럴 만한 아량을 가진 사람이 아직도 되지 못한 게 아닐까. 단지 이런 말들은 핑계에 불과하고 막연히 나중의 일들은 나중의 일로 미루는 작정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보다... 나는 '결혼할 만큼' 당신을 사랑하는 건 아니었던 것일까? '그 정도의 사랑'이라는 감각이 요 며칠 동안 나를 내내 떠나지 않았어. 사랑할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그저 마음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연인으로 만족할 만큼의 사랑만 원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모든 걸 감내할 용기가 없는 게 아니라 모든 걸 걸어야 하는 정도의 사랑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이 마음이 참 이상해. 감정의 양이나 정도를 따진다기보다는 결혼이라는 문맥에 맞닿을 만큼 나 자신이 온당히 성숙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 말이야. 사랑을 하면서도 정작 그 사랑에 대해서는 더 깊이 성찰하지 않았었구나. 지금에 충실하자는 마음이 어쩌면 막연함에 기대어 어떤 결심이나 용기가 필요한 대화를 계속 유예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몰라.


어쩌면 당신은 더 진작부터 가정을 꾸리고 안정된 환경을 갖기를 원했을 수도 있는데 내가 그러한 마음을 더 일찍 보살지 못한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너무나도 미안했어. 환경도 능력도 마음먹기에 달린 것일지 모르는데 섣불리 가능의 영역으로 회부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든 아니든 이러한 대화를 보다 더 충분히 평소 나누었어야 하는 것 같기도 해. 말을 꺼내기 전까지 숱하게 망설였을 당신의 입꼬리와 속눈썹과 어떤 작은 눈 맞춤을, 다문 입을 열기 직전 양 입술에 가해지는 그 힘을 보다 먼저 헤아렸어야 하는 건 아닐는지. 쾌활함 뒤에 그늘을 감추고 있는 것이기도 한 걸 모르지 않았는데 말이야.


몇 주가 지나면 우리가 각자의 시간을 잘 보내보자고 했던 기한이 도래해. 생각해 보자고 마련한 시간인데 생각이 정리되기는커녕 아직도 사실 잘 모르겠어. 단지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먹기만 하면 되는 걸까? 며칠 전에는 퇴근 후 회사 근처 극장에서 영화 <머티리얼리스트>(2025)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파졌어. 영화의 주인공인 루시는 물질적인 면을 현실적으로 중시하는 사람인데 지난날 연극배우를 꿈꾸던 남자친구 존과 기념일 데이트를 앞두고 주차비 25달러 때문에 싸웠던 날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 레스토랑으로 향하는 뉴욕 맨해튼의 길을 빙빙 돌며 무료로 (불법) 주차할 곳을 찾는 존을 보며 루시는 식당 예약시간에 늦으면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야기로 실랑이를 하다 존에게 이런 얘길 해. 이렇게 도로 한가운데에서 싸우게 만드는 내가 밉겠지만 자신 역시 고작 25달러 때문에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너무 싫다고. 사랑이 현실의 영역이 된다는 건 얼마나 처량할 수 있는 일인 것일까. 루시가 어떤 레스토랑에 가서든 거침없이 계산서를 받아 들고 비싼 아파트에 사는 해리에게 이끌리는 건 그래서였을 거야. 돈의 문제가 아닌데 그 일련의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눈가가 촉촉해졌던 것 같아. 영화 속 해리만큼은 아니더라도 재정적으로 준비가 된 사람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주제에 대해 더 터놓고 대화를 나누어 봤다면. 당신은 빨리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배우자가 주는 든든함을 얻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고 내 계좌와 커리어를 먼저 신경 쓰는 사람인 게 아이러니하게 슬프기도 했어. 내 마음의 크기가 그 정도인 걸까. 그러면서도 독서모임을 하고 영화와 관련한 이런저런 인연을 이어가고 확장하는 게 과연 분수에 맞는 일일까?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답을 찾기 쉽지 않겠지. 우리는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모르는 것들을 마주하게 될까.


예정했던 그날이 되어 만약 당신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시 묻는다면 나는 아직은 못하겠다고, 내게 여전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해야만 할 것 같아. 명쾌한 답은 될 수 없을 거야. 나는 단지 지속하기만 해왔지 뭔가 시작하거나 맺는 일에는 늘 서투른 편이었어. 그럼에도 이 관계가 결혼을 조건으로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제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어야 하겠지. 우리가 각자 조금씩은 더 어릴 때 만났다면 어땠을까. 만약 내가 섣부른 퇴사를 하지 않았고 더 좋은 직장에서 보다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착실하게 미래를 예비하는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작년 홍콩 여행을 함께 갔을 때 일이야. 귀국 전날 늦은 밤 당신이 갑자기 컵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어. 우리는 브이로그를 남기듯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신라면을 사 와서는 뜨거운 물을 부어 먹으며 속에서 끓어오르는 한국인의 맛 같은 것들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어. 그냥 웃고 말았지만 후후 불며 "고향의 맛"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당신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꽤 울컥했던 것 같아. 이렇게 소박한 것들만 우리에게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말이야. 그 이십 초 남짓의 사소하고 짧은 영상을 보면 종종 지금도 가슴이 미어져.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막연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걸 먹게 해주는 일에 대해 생각했어. 그런 시간을 더 자주 함께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지. 홍콩의 신호등 소리, 그리고 그 이전 우리가 함께했던 오사카에서의 낮과 밤들. 이국의 풍경 안에서도 바뀐 계절의 자장 안에서도 평범한 일상의 반복이 길어 올리는 행복을 잊지 않는 일 말이야. 어쩌면 '우리'라는 것에 대해 그 무렵부터 나는 더 근본적으로 생각을 뻗어가 볼 수도 있었는데 그보다는 당장을 행복하게 보내자는 마음일 뿐이었고 그 이상을 돌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


함께 걸어왔던 발자국들에 나는 더 아득해지고 당신의 시간이 덧없는 것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벌써부터 이 여름이 어떻게 가을과 이어지거나 맺어질 것인지에 대해 궁리해보고 있어. 각자의 삶과 그 일상을 존중하고 헤아리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무리하게 다음을 기약하거나 억지로 상대의 뭔가를 바꾸려고 들지 않아도, 적당한 여유를 둘 줄도 아는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나는 생각했었어. 서로의 마음이 점점 더 깊어지고 추억이 느는 만큼 앞으로도 몇 번의 계절들이 더 찾아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지. 처음을 지나 점차 낡거나 변해가는 일들이 있다고 해도 서로의 마음을 잘 살피겠다고 다짐한 날들도 있었어. 그런데 나는 함께하는 지금에 충실한 사이 당신이 오늘을 맞이하기 전의 어제들에 대해 어떠한 마음을 돌이켜 품어왔는지를 더 잘 헤아리지 못했어.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여름을 이제는 당신이 있었기에 단지 여름이라고만 부르지 않게 될 것 같아. 함께 마주한 거리의 능소화들. 이 여름 내내 피고 지고 하면서 맞이한 그 꽃과 잎의 붉음들. 덥지만 따뜻했던 서로를 마주 향한 시간들이 많았어. 더위 너머에 넘실거리던 온갖 초록색의 모양들도 가득이었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장에서 인사 나누었던 반가운 인연들도 떠올라. 내게 여름은 단지 싫어하는 계절일 뿐이었는데 연신 손수건과 선풍기를 꺼내면서도 신록과 푸르름을 한껏 보면서 제법 지낼 만한 계절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기 시작한 것도 당신 덕분이었어.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처음 함께 갔던 카페와 식당들이 온통 있던 백화점이 최근 폐점한 일처럼 당신과의 기억에 맞닿은 것들도 스쳐 지나가고 있어. 기억으로만 남는 과거의 일이 되어가는 장소가 있듯 관계도 한철 잎사귀처럼 저무는 일일까.


어떻게 끝맺어질지 미리 아는 채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없는 것처럼 이 글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리 그날 만나면 어떤 말을 꺼내고 이어가고 정리할 수 있을까. 사실 어느 정도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았어. 그렇지만, 관계는 서로의 시간과 모두 맞닿은 일이니까. 지금의 나는, 지금의 당신에게 걸맞은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내가 아직 생의 다음 관문을 맞이할 채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에게 더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수 없어.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더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더 말할 수는 없어. 당신을 함께한 여름들이 얼마나 눈부신 계절들이었는지는 말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해 준 당신에게 너무나도 고마워져. 사랑하지 않고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날 그때 걸음을 멈춰 온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 이상으로는 더 표현할 단어가 없어. 그러한 사랑을 나는 앞으로도 갚을 수 없을 거야. 길을 가다 핀 능소화 몇 송이만 봐도 나는 온통 이 여름을 떠올릴 거야. 아마도 미안할 것들이 남겠지. 더는 대체할 수 없을 나날들 앞에서 지나가버린 시간들의 뒤 편에서 나는 끝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아마도 나는 한동안 이 열과(裂果)가 주는 땀방울 속에 저릿한 마음의 단어 몇 개를 감추고 있게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서로 어떤 결정을 하든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존중하며 응원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있는 힘껏 잡은 손처럼, 그 손을 놓을 때도 마음을 다해 놓아야 하는 것이겠지. 밤바다를 보며 해변 데크에 쪼그리고 앉아 어깨가 살짝 닿은 채로 있던 3년 전 그날의 기척이 아직도 생각 나. 미리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무어라 맺어야 할지, 이렇게 할 말을 당겨 기록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쓸게.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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