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쉰다, 마신다, 뱉는다'
-심규선, 「밤의 정원」
땀이 절은 소금기를 풍기는 옆좌석 남자와 동행하는 귀성 열차 안에서의 시간은 고역이다. 단순한 땀 냄새가 아닌가. 거의 비위가 뒤집히기 직전의 자극적인 산내를 장착한 듯한 그는 내 공기를 칸칸이 거칠게 침입하며 알 수 없는 혼잣말을 계속하면서 누군가와 스피커폰으로 통화까지 한다. 용문에서 내려서 밥을 먹고 1시 40분 차를 탈 거야. 내 자리는 5호차 4D. (갑자기 나와 내 폰을 번갈아 보더니) 이거 삼성 갤럭시 제트 폴드 7세대인 것 같은데 맞죠? (네?) 하고는 통화를 마친 뒤 종이승차권을 구길 듯이 만지작거린다. 영화 <기생충>(2019)에서 동익이 자기 집 지하에 있던 근세를 처음 마주쳤을 때 코를 감싸 쥐며 짓던 표정 비슷한 것을 지으려다가 나는 겨우 이어폰의 노이즈캔슬링 기능에 의지해 J에게 추천받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 황제' 2악장을 반복해서 들으며 몸을 통로 쪽으로 접는다. 차분함을 주는 지휘자의 표정, 이윽고 들리는 피아노의 첫 음, 피아노 연주자의 몰입된 얼굴과 악기들이 만드는 곡의 정교하고 잔잔한 고요가 그나마 자리를 뛰쳐나가지 않게 붙잡아준다. 추천해 준 대로 평온과 서정과 아름다움을 모두 갖춘 곡이 틀림없다. '비창' 2악장도 듣고 내가 추천해 준 심규선의 '밤의 정원'도 이어서 같이 들어야지. (사실 이미 하고 있지만) J가 알려주는 음악이라면 앞으로 뭐든 다 들을 결심이라도 하게 된다. 열차에서 한두 시간 스쳐갈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대신 스스로 안정을 되찾는 쪽을 택한다. 어딘가로 배낭여행 같은 걸 하는 중인데 요 며칠 씻을 시간도 없을 고행을 했고 마침 늦잠을 잔 탓에 못 씻고 청량리역에 겨우 도착해 커피맛 서울우유 하나 사서 탔을 그런 사정인 모양이지. 향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진다는데 아이폰 16 프로를 쓰는 그에게서 새어 나오는 티타늄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살냄새는 도무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일부러 퍼퓸 오일을 스포이트 한 방울 더 찍어 손목에 대어 문지르고는 핸드크림도 손등에 새끼손톱 크기만큼 더 비빈다. 그래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열차는 항상 통로 자리를 택한다. 옆자리에서 선을 뚫고 나오는 무엇을 참기 어려울 땐 잠시 칸과 칸 사이 화장실 같은 곳에라도 몸을 피할 수 있으니까. 창 측 자리는 어딘지 답답함을 주고 한 번 등이라도 가렵기 시작하면 옷을 겹겹이 입은 날에는 견딜 재간이 없다. 게다가 나는 창 밖 풍경에 별 관심이 없을 때가 많다. "우리 진이는 예민해가지고..."라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아주 어릴 땐 잘 와닿지 않았다. 내가 예민한 건가. 10대를 통과하며 점차 머리가 크면서 그렇구나, 주억거린 것 같다. 형과는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기 전까지 계속 한 방을 썼는데 베개에 머리를 갖다 댄 지 1분도 채 안 되어 코를 골기 시작하는 형과 달리 나는 30분이고 1시간이고 가만히 눈만 감고 누워 있었다. 멀뚱멀뚱한 채 형의 규칙적인 코골이를 뒤로 하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라디오 진행자의 나긋한 멘트라든가 128MB 용량 MP3플레이어 속 열댓 곡의 에이브릴 라빈, 윤하의 노래에 의지했다. 그러다 보면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아예 잠을 늦게, 최소한으로 자는 편을 택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1분 만에 곯아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잠이라도 잤겠지. 정작 잠에 빠져든 건 옆좌석 남자였다. 스피커폰 통화에서 자기 목적지를 두어 번 강조하고는 몇 분도 채 안 지나서. 그는 정말로 용문역에서 반사적으로 깨어나 주섬주섬 내린다. 청량리에서 영주까지 내내 같이 앉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한다면 휴... 길고 길었던 1시간 만에 겨우 평화를 되찾는다. 그다음에 누가 옆자리에 앉으면 분명 그 잔향이 남아 있을 텐데, 혹시 나한테서 나는 냄새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내게는 대니 멕켄지 퍼퓸 오일과 록시땅 핸드크림이 있다. 여차하면 생로랑 향수도 꺼내버릴 테다.
예민함은 선택적으로 타고났다. 예를 들어 봄철 미세먼지라든가 담배연기는 싫어하는 것과 별개로 끄떡없지만 냄새의 경우 스스로에게서 불가피하게 나는 땀 냄새도 짜증이 날 때가 있어 잘 씻고 잘 빨래하려고 노력한다. 유제품 같은 걸 먹은 뒤의 단내도 텁텁할 때가 있어 가글 제품과 마우스 스프레이, 민트향 캔디류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첼시 부츠를 신을 땐 혹시 발등이 가려우면 어쩌지 하고 잠시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땐 떠들거나 스마트폰 불빛을 밝히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아마도 특정한 감각 자체에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의도하든 않든 누군가에게 피해나 불편을 주는 일을 극도로 기피하는 데서 비롯한 경계심인 듯하다. 영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향의 경계를 체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근 한두 달 사이 사람에 대한 경계를 더 선연하고 선명하게 정립해가고 있게 되었음을 상기했다. 곁에 스며드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숙고해야만 하겠다는 것,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는 게 아니라 내게는 내면의 이유로 용납하기 힘든 누군가의 가치관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지금을 해치고 싶지 않아 그것들을 차분히 체화하고 흘려 넘겼다는 것도. 코끝에 맴도는 향이 어느 곳에선가 입자와 입자를 타고 내 앞에 당도했을 것처럼 인생의 질문, 관계의 정의, 사랑이나 우정의 일들도 그렇게 스며들면서 내 안에 만년필 병잉크가 쏟긴 듯한 늦여름이었다. 그러다 보니 몇 주 전부터 가을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외투를 입을까 말까 고민하고 뿌리던 향수를 계절에 맞게 달리 꺼내게도 만드는, 푸르렀던 생명들이 머지않아 지고 떨어지고 아직 피어 있는 골목의 능소화 잎 색상도 활기를 잃어 보이는. 해가 짧아지고 흐린 하늘을 보면 괜히 비가 내리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빗소리를 떠올리게 되는. 그런 공기를 우두커니 마시며 분리수거를 하다 말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헤어짐의 대화를 맺는 일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한 차분한 쪽으로 움직이려 했다. 어떤 말이 상처의 깊이를 얕게 만들 수 있을지 입술에 조금 더 오래 머금으면서. 얼마의 시간 동안 마음에서는 이미 돌이켜 돌이켜 결심했지만 함께인 시절에 종장이 도래해야 할 것임을 직접, 눈앞에서 똑바로 선고하는 일이었다. 스스로의 심장이 말하는 진심에 귀 기울이며 우리였던 시간에 예의와 배려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게 곧 상대의 마음에도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Y가 해준 말도 기억했다. 나는 여하한 사유로 지금 결혼을 인생의 물음으로 끌고 갈 생각이 없으며, 나아가 어떤 사람을 생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것인가 하는 일에 관하여 기준을 정립해 보았을 때 우리에게는 장차 맞지 않게 될 것들도 선연히 보이게 되었다는 것. 나의 시간과 당신의 시간은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각자 마주하고 있는 삶의 단계와 화두가 같은 상태와 방향에 있지 아니하다면 이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 그렇게 한 달 여 동안 담아왔던 생각을 간신히 풀어놓았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아니다. 뒷모습에 울컥했지만 왼손 약지의 자국이 더 희미해지고 며칠이 지나자 나는 (술이 좀 늘었지만) 다시 웃을 수 있었다. 홍콩식 요리주점에서 소주잔을 탁 내려놓은 뒤 이 이야길 J와 H에게 처음으로 꺼냈다.
어쩐지 빈곤한 표현이지만 외롭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함께였던 시간을 떼어 보내자 나 자신과의 대화의 시간, 내면에 귀 기울이고 침잠하는 나날이 필요하고도 귀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쉽지 않은 이야기도 기꺼이 꺼내놓을 수 있는 친구의 존재도 물론이다. 그런 친구가 전에는 있다고 여겨 본 적이 없는데 요즘은 내 글의 초안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생각만으로 각별히 든든한 이가 있다. 내가 입은 고마운 다정의 온도처럼 나 역시 그의 무슨 이야기든 잘 다듬은 마음으로 귀를 열고 언제까지나 들을 것이다. 맨 앞에 이름이 떠오르는 이들 덕분에 이제껏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었던 관계의 기준을 세워보게 됐다. 예를 들어 내향적인 결이 맞고 대화의 불충분한 여백도 말하기도 전에 같이 채울 수 있는 사람, 거의 뇌를 공유할 만큼 세상과 사람을 보는 가치관과 글을 읽고 문화를 향유하는 방식이 비슷한 사람. 그런 이와의 대화는 자음 몇 개만 꺼내도 모음을 같이 발화해 준다. 비슷한 농담을 할 수 있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안전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 간추리자면 마음을 조금 뭉툭하게 만들어주는 기질의 사람이자 소주잔을 비운 뒤 테이블에 내려놓을 때 나는 소리의 크기로 미세한 감정을 알아차릴 법한 사람이다. 대화의 조도와 음량을 알아서 함께 조절할 수 있는. 그런 이에게는 이런 모습까지 내보여도 되나 하는 걱정 같은 걸 별로 할 필요 없다. 일부러 의식해서 마음과 말이 열리는 게 아니라 저절로 그런 상태로 만들어주고 곧 내가 가진 예민의 울타리를 낮추도록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 (편하게 함부로 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잔뜩 적었는데 막상 구체적인 건 별로 없다. 다른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스크리닝 하면서 타인을 내 기준에 부합하는지 가늠하자며 거름망에 넣고 싶지는 않다. 마음이란 건 그렇게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런 태도라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스크리닝 되고 있을 테니까. 다만 어떤 기척이 다가오면 그게 일생에 몇 번 없을 것인지도 모른다며 성큼 손을 내밀어버리기보다 조금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한 번 더 걸음을 떼기 전 그 디딜 자리가 괜찮은지 되살피는 건 물론 그 사람에게 내가 얼마나 알맞은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마음을 다해 멈춰 생각하고 싶다. 사람이 올 때 그에게서 나는 발향을 그 번짐을 계량하고 증명하듯 경계할 수는 없겠고 그러다 또 어느 틈엔가 누군가에게 이끌리고야 말고는 '망했다' 싶어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영주에서는 청탁 지면 원고를 하나 마감했고 가족들의 점 100원 고스톱 판을 할 줄 몰라서 구경했다. 유명하다는 분식집이 명절이라 안 열어 간장쫄면을 못 먹은 걸 제외하면 별일 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서울로 돌아올 시간이 됐다. 사실 본가에 다녀오는 건 그리 편치 않은 일이다. 쌈에 싸 욱여넣은 고기는 유독 소화가 잘 되지 않았고 우리 아들 얼른 장가가야 하는데, 같은 엄마의 말은 한 귀로 흘려 넘겼다. 뇌를 비운 사람처럼 이틀을 보냈다. 소화제를 먹었고 다음날도 계속 더부룩했다. 밥은 조금만 먹으려 했지만 떡이며 과일이며 주는 걸 억지로 먹다 보니 체하기 직전이었다. 비가 와서 성묘를 가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요즘 볼 영화 뭐 있냐는 엄마 아빠에게 <어쩔수가없다>도 보여드렸다. 명절다운 아들 노릇을 의무적으로 하고는 서울에 가서 할 일이나 혼자 쉴 작정이나 기분, 영화, 음악 같은 걸 공유할 몇 사람의 안녕을 생각했다. 지도 앱에서도 영주가 아니라 서울을 기웃했다.
다행히 귀경 열차에서는 산만하지 않고 좋은 향이 맴도는 옆자리 승객과 함께였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 대신 공기전도 이어폰을 귀에 걸고 배가 조금 아팠지만 평화로운 마음으로 시집을 펼쳤다. 청량리역에 도착 후 교통카드를 찍자 익숙한 특유의 1호선 지하철 냄새가 밀려왔는데 이상하게도 기분이 조금 차분해졌다. 마치 돌아오기 싫었던 해외여행에서 복귀 후 고향 공기를 며칠 만에 마주하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처럼. 오래된 고무와 금속 따위가 타는 듯한 냄새와 송풍기의 축축한 필터 냄새가 덧입혀져 나는 퀴퀴한 인천행 열차 내음이 다시 서울에 돌아왔음을 감각케 한다. 바람과 함께 퍼져 오는 미지근한 물 냄새가 핸드크림 향을 덮어버린다. 본가가 아닌 집을 향하고 있으니 이곳에서 맡고 있는 다양한 향들을 떠올린다. 집의 냄새는 물론 친구들과 같이 거닌 장소의 분위기, 서점 디퓨저 향, 위스키 맛, 며칠도 더 전에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 말이나 메신저에 주워 담았어야 할 건 없었나 하는 생각들도.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자세히 다 표현 못해도 특유의 향취가 있다. 통유리로 된 간판 없는 바에 들어선다. 코에 닿는 게 인센스 스틱을 태운 향인가 싶다가 칵테일 메뉴에 맞춰 나오는 작은 안주의 향미인 것도 같다. 아니면 자리 잡고 시간이 조금 지나 옆자리에 앉은 일행과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온 내 향수의 뉘앙스라든지 바텐더가 앞에 내민 와인 보틀에서 공기결에 감도는 향 몇 가지가 섞인 듯하다. 혹은 어떤 조향사가 이 공간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향훈일까. 공간 주인의 선곡이 좋으면 코끝을 감는 향은 귀를 경유해 더 좋아진다. 그것들이 만드는 조합이 괜찮다. 위스키와 칵테일을 함께 취급하는 바에서라면 오크 향과 시트러스 향이 섞인 질감이 전해지겠다. 와인 위주인 곳에서는 좀 더 달큰한 과일향일까. '드라이한 레드와인을 부드러운 위스키 사워 위에 올린 입체적인 칵테일.' 주문한 메뉴에 적힌 설명을 곱씹으면서 마시고 있는 것의 풍미를 가늠한다. 여러 메뉴 설명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부드러운, 입체적인, 다채로운, 스파이시함. 이곳에 또 오게 되면 바텐더에게 향에 대해 물어봐야지. 저 단어들은 모두 느낌이다. 언어 너머의 인간의 일, 곧 마음과 닮았다.
향수를 애용하지만 정작 탑-미들-베이스에 이르는 각 노트의 세부는 잘 모른다. 기껏 내가 한다는 표현은 '안정감을 주는 숲향' 같은 것이다. 공통점은 처음 향을 맡았을 때와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났을 때 발향과 잔향이 점차 다르다는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느끼는 사람의 내향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클린 어코드와 베르가못 뒤에 숨어 있는 앰버우드와 파출리 향(내 향수의 제품 소개 페이지에서 설명을 읽어 보았다)처럼, 가만히 엷게 웃는 사람에게 혹시 모를 어떤 망설임이나 회한이 있음을 궁금해한다. 어딘지 눈물보다도 더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하는 미소가 있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할 때 문득 눈에 띄는 뒷모습이 있다. 사람에게도 첫 느낌이란 게 있지만 겪을수록 알게 되는 것들이 중요하다. 처음의 직감이 유지된 채로 잔향까지도 좋은 사람이 있다. 거친 마가리타를 부드럽게 재해석했다는 칵테일 맛처럼 향은 사람과 닮아 평면이 아니라 입체임을 생각한다. 나는 그것들을 잘 헤아리고 있을까? 다면을 더 예민하게 잘 읽어내는 사람이고 싶다고 여기며 요즘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거나 나누는 순간이 그저 소중하다. 혼자서도 좋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함께면 더 좋고. 지나온 것들을 너무 오래 떠올리지 않고 지금 곁에 있거나 스치는 여운을 마음에 소홀하지 않게 취향(冣香)할 수 있는 순간들 말이다.
초가을의 발향은 고맙게도 순조롭다. 연휴가 본격 시작되기 전에 보려고 예매했던 영화를 취소한 덕에 몇 권의 시와 소설을 꺼낼 수 있었다. 보려던 그 영화는 듬뿍 기대하고 있지만 며칠 기다려도 좋다. 보지 않은 영화가 거기 있을 것처럼 지나가버린 일들도 시절로 남겨두어도 좋겠다. 오감을 보다 생생히 감각하고 다시 일어서면서 바지의 얼룩을 털고 젖은 손을 닦아낼 차례일지도. 앞날 생각할 겨를은 없고 그저 읽고 쓰고 보고 나누는 시간으로 일과를 채운다. 최근에는 몇몇 J-Pop 아티스트들과 몇 곡의 클래식과 올드팝에 빠져 있다. 음악과 길고양이가 있는 종로구 바에서 싱글몰트를 마실까 버번을 마실까 고민하면서 가 본 뉴욕과 가고 싶은 도쿄 지도를 훑는 일이나, 글에 담긴 생각을 공유하고 가만히 새벽 거리를 산책하거나 하는 나날이 가을에 내려앉는다. 그래서 어느 날 가만히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기도 하겠다. 오늘은 잘 쉬었는지, 아니면 바빴는지, 이 노래 가사가 참 좋은데 혹시 기호에 맞을는지, 이번 주 개봉한 이 영화 보았는지 그런 말들. 매일 묻는 건 번잡하니까 문득 어느 저녁날 산책하듯이. 그러다 가끔 시간이 맞고, 또 우연한 대화를 만나는 순간이 참으로 반가울 것이다. 취향(趣向)은 사전적으로는 '마음이 쏠리는 방향'을 뜻한다. 마음이 대상이나 사람 쪽으로 기울면서 내는 향이기도 하겠고 그게 곧 살아가는 일의 총체일 것이다. 어디로 쏠릴지는 일단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꽤 무디고 느린 사람이라 오늘도 타인의 취향과 그의 선(線)을 꼼꼼하게 헤아리려 노력하고 매일을 친구에게서 새로 배우고 담아둔다. 그러다 보면 순간을 오래 기억해 곁에 두려 하는 마음이 된다. 다다랐을 때 어떤 잔향을 맞을지 모를 이 모퉁이에서의 끼적임은 다시 하나씩 천천히 쓰여갈 것이다. 내게서는 좋은 향이 나기를 바라면서, 결 맞는 사람에게 서로의 향이 스미는 알맞게 즐거울 순간이 언젠가 다시 있을 것을 기대해보기도 하면서.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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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ould never fall in love again until I found her
I said, "I would never fall unless it's you I fall into"
-Steven Sanchez, Em Beihold, 「Until I Foun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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