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부르는 사람과 함께한 내 시절
내게 몇 개의 시절을 건너가게 해 주고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게 해 준 인생의 아티스트가 쓰고 부르는 이야기들에 곡조와 노랫말에 나는 이미 냉정하고 이성적인 평가나 분석 같은 것을 할 수 없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삶 속에서 오직 확실한 건 당신의 노래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들이 오늘을 향하고 있었구나 하는 감각을, 다정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는 일이 무엇으로 대신될 수 없다는 믿음을, 평범한 미래의 자명할 것들에 기대는 마음을 당신이 있어 발견하거나 지켜낼 수 있었으니까. 그 노래를 듣는 시간은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고 믿게 해 주었고 공연장에서 라이브를 만나는 시간은 '우리'가 함께 생존해 있었음을 확인해 주는 듯했다. 어떤 고통이나 불안을 없애주는 게 아니라 단지 일어날 힘을 주고 판단 대신 누군가에게 능히 닻별이 될 수 있는 사랑을 잃지 않게 해주는 것. 아직 시간이 있다고 내가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가 대신 믿어주는 것. 그게 내게는 지난 몇 년을 함께한 심규선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노래를 쓰고 글을 적었을 그의 무수한 밤들도 다 음악이었으리라.
11월 말에 다녀온 콘서트에서는 유독 눈에서 뭔가가 볼을 타고 뚝둑 내리는 순간들이 더 많이 있었다. "룸메이트가 아닌 룸메이트가 없는 세상에서는 살아가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다 잊어버린 것 같다"며, "여러분에게 저의 생존을 걸고 있다"며 울먹거리는 이의 진심이 저 멀리에서도 보여서. 실망의 순간에도 사랑이 공존할 수 있다고, 다시 발견하고 마치 불처럼 붙잡고 살아 있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부르는 내 인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내내 손수건을 꼭 쥐고 있었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음악들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라는 사람의 말과 음악이 거기 있었고 무대가 끝난 뒤에도 남아 있었다. 살아갈 남은 일들이 그저 하나의 소로에 불과할지라도.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저도 저의 전설이 되겠습니다. 살아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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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스러운 벗에게. 우리를 떠올리면 내 마음이 덥다. 나의 지난날과 오늘 당신의 고독이 마치 거울처럼 닮아 있는 듯해 더욱 애달프고 섧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있다. 길을 잃었다 생각했을 때조차 사실은 길 위에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충분한 만큼 울어도 좋다. 눈물을 가두고 모은들 바다라도 되겠는가? 필요한 만큼 아파해도 좋다. 우리는 부러진 다리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 통증을 느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억지로 일어서기가 아니라 치료와 회복인 것이다. 그리고 당부컨대 너무 오랫동안 두려워하지는 마시라. 길은 걸음 뒤에 자연히 나는 발자취일 뿐, 우리가 긍긍(兢兢)하며 찾아 나서야 할 보물도, 어쩌면 그 무엇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보조(步調)로 살며 정원을 가꾸듯 생에 시간을 들이시라. 작은 씨가 움트는 데도 시간이 필요한데 사람이라고 다를 리 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이시라.
우리는 나사도 부품도 아니고 살아서 꿈을 꾸는 존재이다. 사회가 이어 붙인 통념 혹은 그 부스러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존재의 이유가 될 수 없음을 결코 잊지 마시라. 자신을 안다는 것 자체가 곧 대체될 수 없는 자존감이며 길 잃지 않게 하는 무수한 표지 중에 하나임을, 배우는 대신 이제 깨달으시라. 내다보는 대신 들여다보시라. 자기 안의 자신에게 먼저 묻고 또 물으시라.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세상을 무시하시라. 당신이 거기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의 세상도 있는 것이다.
사위(四圍)가 전부 진창이라면 머무르고 싶은 곳에 이를 때까지 걸맞은 속도로 겸허히 가시라. 다리가 아파 멈춰 쉬는 것을 아까워 마시라. 부끄러워하지 마시라. 자신에게 말을 걸며 그저 묵묵히 가시라. 어느 순간 주변이 고요해지고 세상의 넋두리들도 사라지면, 비로소 자기 안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소리가 끊이지 않는 긴 돌림노래처럼 귓가에 머무르며 계속 들려오게 하시라."
-「소로」, 1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