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독서모임으로부터 지금까지
논현역 8번 출구에는 지금은 사라진 시공간의 추억이 아직 있다. 가야 할 이유도 가지 않을 이유도 뚜렷하지 않았지만 우연에 기대어 걸음한 곳. 여기서 이 날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하는데 동진 씨도 오면 재밌어할 것 같아요! 책과 관련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타고 알며 교류하게 된, 아직은 만난 적 없던 지인이 메시지를 보내 와인과 다과를 곁들인 일회성 네트워킹 모임이 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독립서점이 많지 않았고 강남구는 더더욱 독립서점이 없을 것 같은 곳이었기에 흥미가 생겼다.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음엔 안 가면 되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렇게 B 서점을 만났다. 2015년 봄에.
지하에 자리한 그곳은 계단식으로 좌석이 구성된 넓은 홀과 투명 미닫이 문이 있어 소규모 모임을 하기 적합한 별실, 계단 뒤편에 숨어 있는 조금 층고가 높은 모임 공간까지 갖춘 그야말로 아지트였다. 곁들인 와인 때문인지 서점 공간도 처음 만난 사람들도 마음에 들었고 서점 창업 초기였기에 대표님과 직원들과도 제법 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다. 서점에 처음 다녀온 다음날 그곳에서 모집 중인 평일 저녁 지정도서 모임과 토요일 오전 자율도서 모임을 각각 신청했다. 지금 알고 느끼는 의미에서의 독서모임을 십 년 전 그때 처음 경험했다.
모임에서 하는 일은 크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듣는 것이다. 자율책이라면 내가 읽은 책에 대해 말해주고 다른 사람이 가져온 책에 대해 들으며, 지정책이라면 진행이나 발제에 따라 서로 그 책에 관한 의견을 나눈다. 물론 좋은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내게 각별한 책이나 작가에 대해 누군가는 시큰둥하게 받아들일 수 있고 나 역시 어떤 책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비판점을 얼마든지 보다 건설적인 모임 대화를 위해 말할 수 있다. 열 명이 한 책을 읽으면 그건 열 권의 책이 된다.
중요한 건 혼자의 시간을 깊게 할애해 어떤 책이나 저자를 탐구하고 정리하는 것만큼이나 모임의 형태로서만 가능한 배움과 통찰의 영역이 있음을 깨달아갔다는 점이다. 언제나 떠드는 것보단 읽고 쓰는 게 편했던 내게는 그래서 저 공동의 시간들이 조금이나마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체득한 시간이기도 했다. 말을 하려면 잘 읽어야 하고, 잘 말하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오래 숙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 말하고 싶은 생각도 나를 자랑하듯 드러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적어도 읽고 생각한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유할 것을 (시간과 돈을 들여 모임에 온 타인을 위해) 만들고자 어떻게든 모임 전까지 책을 다 읽었고 누가 추천해 주는 작가나 책은 닥치는 대로 손에 들었다.
책 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고 책도 항상 거기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대체로 멀어지거나 뜸해졌다. 님에서 형 친구 누나 동생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해도 누군가의 경조사를 함께해도 희미해지는 건 제법 순간이었다. 짧거나 가볍게 스쳐가는 인연들 중 누가 남거나 가까워질 것인지(꼭 가까워져야만 할 필요는 없지만)에 대한 것은 언제나 물음표를 남겼다. 모임에 언젠가부터 뜸해지다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 서로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사람들, 내가 알지 못하는 지점이 있었는지 모르나 누적된 불편 같은 게 있었는지 스스로 나를 판단하며 연을 끊어낸 사람들도 있었다. 그 무렵 서울 각지에 여러 독립서점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므로 자연스럽게 다른 서점으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고 서점의 어떤 기획력이나 콘텐츠는 비교되거나 그 수명이 한정되기 마련이며 구성원들도 모임과 책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으니 그렇게 멀어지는 일도 각자 우선순위와 상황의 몫이었다.
처음으로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임의 호스트를 B 서점에서 맡게 되면서 가까워진 사람도 있었다. 다음 주 영화 모임에 오신다고 하셨죠? 성함 말씀해 주시면 기억해 둘게요. 그런 말들로 모임 바깥에서 친밀해진 사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이 각자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것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채 취향이 먼저이고 이름이 나중이었던 순서. 지나고 보니 모르는 사이 덜컥 다가와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천천히 스미는 인연이 있었다. 그들을 통과하면서 서른을 맞이했다. B 서점을 알게 된 그 해 말 입사한 내 첫 회사는 (지나고 나서 알게 됐지만) 동종 업계에서 처우가 아주 안 좋기로 정말 유명한 곳이었다. 고객사 앞에서는 세상 상냥하다가도 직원들끼리 있으면 막말을 쏟아내던 대표가 있던 회사에서 그 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던 유일한 바탕은 책이나 영화를 가지고 나누는 몇 사람과의 대화의 시간이었다.
B 서점이 논현동에서 출발해 서교동으로도 확장했다가 한동안 새 지역으로의 이전을 준비하며 오프라인 공간 운영을 중단했을 무렵이 있었다. 대화와 관계, 취향들로 추억을 만든 공간이 사라지게 되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일 수 있는지를 그때 느꼈다. 무르고 서투른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곳을 꾸준히 찾고 거기 오래 머무는 일뿐이었다. 사람에게도 공간에게도. 오래 마음을 머물러두고 싶은 곳을 섣불리 찾지는 않지만 한 번 그리하고 나면 가능한 온 마음으로 거기에 정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만들어 쌓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미 멀어진 사람들도 많았고 물리적 공간만이 만들어내는 온기와 다정이 있었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서점에 걸음 하게 됐다. 연남동에 자리한 L 서점. 계기는 독일에 살던 좋아하는 시인이 돌아가신 후 열린 추모 성격의 시 낭독 모임이었다. 좋아하는 작가가 운영하시는 그 서점이 있어 나는 홍대에 갈 일이 있어도 합정역에 내려 걸어가는 사람이었는데 홍대입구역 3번 출구를 나서 연남동 경의선숲길을 따라 걷는 이십여 분의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 그 무렵에는 공간에게 거기 있어줘서 고마워요, 같은 말을 걸기도 했다. 한 달에 세 번 보는 평일 저녁 자율책 독서 모임은 늘 이야기가 길어져 자정이 넘어서 끝나기도 했다. 그 서점에서는 모임 진행을 하게 되기도 하고 짧게 서점지기로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B 서점을 이십 대 후반 봄에 처음 찾았다면 L 서점을 만난 건 서른에 접어든 가을이었으니 스스로가 생각하고 느끼는 일들의 변화도 조금씩은 계절처럼 체감된 것 같다. 결국 강물처럼 흘러가고 꽃잎처럼 지는 것, 해마다 오월이면 따스했던 봄날의 환영을 기억*하다가도 시월이 되면 오래전 나에게서 떠나간 표정**이 아프게 보였다. 전에는 어떤 만남이 영원일 것이라 덮어놓고 믿었다면 이제는 나와 당신 어느 쪽이든 언젠가는 떠날 결심을 하거나 자릴 내어줄 수 있고 관계라는 건 이전과 항상 같은 모습일 수는 없다는 걸 문신처럼 새겨두고 있게 됐다. 그 외에도 퇴사 후 다음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공백기에 영화 모임을 진행했던 화양동의 H 서점도, 글쓰기 강의라는 걸 처음으로 하게 된 봉천동의 T 서점도, 늘 포트 와인을 마시며 원고 마감을 하러 가던 합정동의 M 서점도. 공간의 시작부터 함께하며 월 단위 테마로 영화 모임을 이끌었던 서초동의 대관 공간 C도. 저마다의 의미로 각별히 소중한 공간들이었다. 다가오는 것들만큼이나 사라지거나 지나가는 것들이 있음을 확인하게 해 준 게 저 카페이거나 바이기도 했던 자리들이었다. 서점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내 일신상의 변화로 모임 운영을 못하게 되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 서점이나 공간을 꾸려온 분들 대부분과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연을 뜸하게라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공간들이 아니었다면, 가지 않을 이유에 가야 할 이유가 밀렸더라면 일어나지 않았거나 다소 다른 방식으로 오늘이 펼쳐졌을 것이다. 똑같은 선택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해도 기꺼이 지금이 아닌 것들을 택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고 믿을 수 있는 건 어떤 사람들과 함께였던 저 공간들에서, 진행하거나 참여한 모임들에서, 스쳐간 수 백 명의 사람들 각자가 내게 어떤 조각을 전해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부정하거나 지우고 싶다고 말하는 건 결국은 나를 부인해 버리는 일일 테니까.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었지만 떠나간 사람들이나 잊힌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내가 그걸 다 알 날이 오지는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안다.
눈을 감으면 생생히 보이는 얼굴들이 많다. 윤곽도 흐릿하고 목소리도 잘 떠오르지 않는 이들도 물론 있다. 드물게 다시 연결되는 사람도 있다. (트레바리에서 연이 닿은 누군가가 알고 보니 몇 해 전 내가 진행했던 모임의 한 참가자였다는 걸 얼마 전 책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 지나온 사람들은 어떤 형태와 비중으로든 내게 경험과 추억, 배움을 주었다. 몇 다리를 건너면 다시 안부를 닿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도, 소셜미디어 계정에서 서로 팔로잉을 유지하고 있지만 굳이 만날 일 같은 건 없는 사람도, 이제는 영영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도. 그들을 다 기억해 낼 재간은 없다. 내 기억과 정신의 가용량은 그렇게 한계를 지녔다. 매 순간 성의를 다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거나 단지 타이밍이나 마음이 맞지 않았을 것처럼.
모임은 조금 다른 양상으로도 펼쳐진다. 최근에 어느 공간 기획자가 꾸린 한 공유 서재에서 열린 이른바 '서재 소개팅'을 우연히 알게 돼 다소 충동적으로 다녀오게 됐다. 각자의 인생책 또는 가져오고 싶은 책을 지참해 오면 여섯 명의 남녀가 사각 테이블에 나란히 섞어 앉아 서로를 소개하고 이성의 책을 고르고 질문 카드를 골라 질문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거나 하면서 와인 등을 곁들이며 대화를 잇는다. 세 이성과 돌아가면서 10분 남짓 따로 일대일 대화를 나눌 시간도 주어진다. 이성을 만나는 자리라고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안하고 유쾌한 진행과 잘 꾸려진 공간, 그리고 입 안을 가득 감싸던 레드 와인 몇 모금이 몸 안에 스며드는 동안 두 시간은 꽤 빨리 지나갔다. 정해진 프로그램이 끝나면, 각자 무슨 책을 가져왔는지 공개하고 그 책에 대해 잠시 소개한다. 내가 고른 책을 가져온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책 추천 감사합니다'라는 카드 대신 '책 빌려주세요'라고 적힌 카드에 자기 연락처를 적어 그에게 돌려준다.
책이나 영화를 매개로 한 커뮤니티 모임들은 흔히 말하는 '자만추'의 장인 것 같다. 단기간에 상대가 내게 맞는 사람인지와 내가 상대의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인지를 동시에 판별하고 당하는 소개팅보다 이쪽은 콘텐츠나 작품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다수의 틈에 섞여 시간을 보내기 용이하므로, 이성을 만난다는 목적성을 띠고 있지 않더라도 모임을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누군가의 취향과 성품을 탐색하기 좋은 경로가 된다. 이 서재 소개팅은 한 라이프스타일 뉴미디어 채널의 게시물을 통해 제법 바이럴 되어서 기획자 분의 저녁이 없어질 만큼 성황리에 많은 회차가 열리고 있다. 어쨌든 프로그램 이름에 소개팅이 들어가 있으니 결과는?
6명의 카카오톡 그룹 채팅방이 생겼다. 회화를 전공한 이의 개인전을 곧 함께 보러 간다. 조금 뒤에 한 번 더 쓰겠지만, 지금의 나는 새로운 누구와 인연을 맺는 일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물론 프로그램이 흥미로워 보여서 조금 고민하다 신청했던 것에 걸맞게 재미있는 저녁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학력이나 직업, 나이 같은 게 아닌 정말 자신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하고 상기한 시간. 그렇지만 적어도 현재의 내게는 새로운 사람보다 이미 유대감을 형성한 이들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 사회인으로서의 예의나 배려에서 비롯하는 언행과 별개로 나는 아무에게나 마음을 터놓지 않으니까. 시간이 필요하고 거리를 쉽게 좁히는 편이 되지 못하니까. 어떤 자리에서는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야 하기도 하겠지만 그건 내 어쩔 수 없는 단면인 것 같다.
지나온 사람들이 내게 남긴 것과 어쩌다 새롭게 만난 이들이 준 유쾌한 자극은 결국 옆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더 생각하도록 마음을 이끈다. 자리나 시간을 만들어 생각해야만 몇 개의 장면이나 풍경, 이미지 또는 잔영이 뇌리의 영사실에서 재생되는 사람들과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곁에 두고 떠오르는 사람들의 어떤 차이. 나는 지금 후자에 더욱 기대고 있다. 고민을 전부 터놓고 글의 초안을 보여줄 수 있으며 대뜸 술 마시자고 불러내거나 부름에 달려갈 수 있고 그들의 삶의 법정에 내 증언을 보탤 사람들이 있다. 나는 마음이 맞는 사람을 생각보다 더 편애한다.
모임에서 연이 출발했지만 모임의 유무와 관계 없이 언제나 안부를 전할 사람들. 이렇게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구나 싶을 만큼 자주 떠올린다. 아마도 이 기록을 쓰는 오늘의 내게는 논현역 8번 출구보다는 강남역 11번 출구나 문래역 1번 출구 같은 곳이 주로 어떤 시공간의 추억으로 이끄는 입구이겠다. 그 몇 사람의 존재면 아주 충분하다. 이 시린 계절이 춥지 않을 만큼 소주나 쇼추를 곁에서 기울일 얼굴들. 내가 끝내 기댈 이들이자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내어줄 존재들. 물론 언젠가는 이 의지의 마음이 옅어지거나 누군가 마음의 이사를 떠나게 될 날이 오게 될지는 몰라도. 또다시 빈자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눈가가 아파오게 될지는 몰라도. 없어지는 이름이 되더라도, 볼 수 없는 얼굴이 되더라도.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하지만 끝내 오고야 말더라도, 나는 내게 남아 있는 당신을 절대 먼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십 년의 시간을 다시 경유해보니 살아 있는 지금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이들의 존재와 그 인연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말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언제나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걸 알겠다.
*랄라스윗, 「오월」에서
**허수경,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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