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 다섯 시즌을 마치고
트레바리 [씀에세이-노트] 클럽의 다섯 번째 시즌을 마쳤다. 스무 권의 책을 읽고 스무 편의 에세이를 썼다. 공교롭게도 지난 네 시즌 동안의 대부분은 지나온 시절을 관조하는 이야기, 과거의 추억을 꺼내거나 어떤 현상을 관찰하는 이야기를 썼다. 반면 최근 다섯 편의 글은 모두 어떤 변화를 겪고 난 이후의 계절을, 각각의 지금 생각하고 느끼고 감각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읽고 쓰는 일을 넘어 개인적으로 조금 더 가까워진 사람들, 모임을 변함없이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시즌에서 처음 알게 된 이들 모두의 존재로 인해 한 시절을 건너온 것 같다. 원래 개인적인 심경, 특히 깊은 이야기에 있어서는 거의 아무에게도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침잠하고 때로는 그저 견디고 난 뒤 내면화 된 마음을 글이라는 형태를 빌어 후일담처럼 풀어냈었다. 요즘은 어디에서, 누구에게의 나름은 있지만 나를 조금 더 터놓고 오픈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언제부터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냥 그렇게 됐다.
사실 글의 제목만 봐도 스스로 느끼기에도 어딘가 달라진 것 같다. '아직 맺지 못한 편지'부터 시작해 '친구가 생기는 기분', '가을의 냄새', '두 번째 이후의 안부', '지나온 사람들과 곁에 남아 있는 사람'까지. 나도 몰랐던 일련의 변화를 “필자로서 하나의 시도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독자들에게 조금 더 내보여도 괜찮을 것 같다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다”라고 해준 이가 있는데 정확하다. 쓰다 보면 계속해서 변해가는 내가 된다. (그 변화가 좋은 의미이도록 하는 건 전적으로 쓰는 본인의 몫이다)
마지막 모임에서는 합평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길 주로 나누었다. 글방이라는 어떤 시공간을 오래 꾸려온 사람의 성실한 기록을 읽고 나서, 우연하고도 찬란하게, 애틋하게 탄식하며. 어깨를 겯는 마음으로. 독자적인 타자들을 존중하고 또 읽어내면서 동시에 성의를 다해 조언하는 마음은 책 속의 글방 이야기와 일면 닮아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더 좋은 어른이 되어 있을 수 있다면 바로 이런 글방을 꾸려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나보다 몇 배는 더 치열하게 살아왔을 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좋은 작가가 되기까지 아직은 몇 걸음은 더 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함께 읽고 쓰는 모임에서 누군가의 글에 대해 코멘트하는 사람은 이상적인 의미에서 글을 본격적으로 고려하면 좋았던 점이든 아쉬운 점이든 가감 없이(단, 정제된 언어로) 펼쳐놓을 수 있다. 피드백을 듣는 이 역시 글에 대한 이야기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필요한 조언을 적절히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이 아닌 이상 읽는 이와 쓰는 이 모두 어떤 선을 고려하면서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열린 대화를 한다. 합평은 필수인가?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반드시 그렇다. 누군가의 글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그 글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잘 쓰는 일의 충분조건 까지는 아니지만 필요조건일 수 있는 건 잘 읽는 일이다. 읽는 훈련은 결국 누군가의 이야길 성실하게 다듬고 헤아려 읽을 줄 알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연마된 실력은 결국 제 쓰는 글을 향하게 돼 있다. 타인의 언어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기 언어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언제나 ’쓸 수 있는 데까지만‘ 쓰자고 가볍게 (에너지를 소진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있는 온 힘을 다해 써내는 사람이 있고 기꺼이 심연의 밑바닥까지 들어갈 용기를 내는 사람이 있다. 내 경우는 어떤 심연을 직면하더라도 문자 언어의 형태로 풀어내기까지 즉 실제 글을 쓰기 전까지 생각을 다듬고 더듬어 숙고하려는 쪽이었다. 언젠가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을 만나기도 할 것이고, 너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쓸 수 없는 마음을 마주하기도 하겠다. 인생살이에 정답이 없듯 글 역시 결국은 더 좋은 것이라 믿어지는 걸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13년을 써도 내 글이 여전히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는 영원한 고민이자 숙제이지만 읽고 쓰는 모임을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 나는 조금 덜 외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에도 당신, 당신들이 있어서 나는 계속 쓸 수 있을 것이다. (2026.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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