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 전 만난 이야기들
말과활아카데미에서 양선형 작가의 토크 프로그램을 통해 작가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더 자세한 이야기 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올해가 그의 출생 100주년이었다고. 도쿄에 가기로 한 일이 우연히 이 책을 만나게 해 한 작가와 그 작가에 대해 성실히 기행하고 탐구한 다른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한 경험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면서 만약 언젠가 한 작가, 작품, 또는 인물에 대해 무언가를 쓴다면 바로 이런 정도여야 할 것이라고 끄덕였다. 몇 개의 키워드로 압축할 수 없을 누군가의 삶에 대해 단면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각도와 방향에서 조명하고 이해하려는 시도가 언제나 필요하다.
"모든 작가는 나름대로의 생애사를 가진다. 하지만 미시마만큼 독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나아가 해괴한 충격에 빠뜨리는 이도 드물다. 누구나에게 쉽게 받아들여진다면, 즉 쉽게 상찬하거나 비판할 수 있다면 그의 문학에 대해 더는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반면 미시마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쏭달쏭한 미로 같은, 동의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생각의 미로 속으로 들어서야 하는 난처함이 동반된다. 작품에 매혹된 독자라면 그 매혹에 상응하는 사유의 값을 치러야 하는 법이다." (18쪽)
"그는 결핍의 빈자리를 탐미적인 상상력으로 채웠다. 현실의 육체로 달성하지 못할 미와 비극을 언어를 통해 가공하는 일을 자신의 타고난 고통스러운 <개성>의 결과라고 여겼다. 소외가 아름다움을 분명히 알아볼 문학적 시선을, 매번 상처를 주었던 아름다움이라는 열병을 선물했던 것이다. 자신의 육체적 현실로는 <미>를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언어를 빌어 정교하고 내밀한 <미>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망의 원천이었다." (76쪽)
-양선형, 『미시마의 도쿄』, 소전서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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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의 짙은 남색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나지막하게 뭉게구름이 서렸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실은 메꽃 꽃잎이 벌어지듯 아주 조용히 벌어져서 조금씩 조금씩 모양이 변해갔다. 그 뒤에는 약간 빛바랜 쾌청한 파란 하늘이 있고, 구름은 아직 노을에 물들기에는 이르지만 내부에서 퍼지는 빛으로 은은한 살구색 그늘을 새기고 있었다."
-「바다와 저녁노을」에서 (343쪽)
"만기쿠는 방금까지 그런 장대한 감정을 살아냈던 것이다. 무대에서의 감정은 어떤 관객의 감정도 능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대 위의 만기쿠의 모습은 그야발로 빛을 발했다. 무대에 선 모든 인물이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 배우 중에 만기쿠처럼 일상과는 동떨어진 무대 위의 그러한 감정을 실제로 진솔하게 살아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온나가타」에서 (439쪽)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 세계문학 단편선 41』,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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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가게 된 뒤 의식의 흐름처럼 도쿄와 관련한 책 들을 탐독하다 미시마 유키오의 지독한 문장 들을 만나고 있다. 흔히 탐미주의라는 키워드로 그리고 특이하다 못해 기괴한 말로로 기억된 작가이지만 그의 문장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언어가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향한 탐닉과 천착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한번 그의 글을 만난 이상, 그 세계가 주는 '매혹'과 '난처함' 속에서 헤매며 어떻게든 그 미로의 끝을 찾아야 한다. 그의 언어와 사유에 분명 그 고통스러운 힘이 있어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기거나 멈추게 만든다.
"미시마는 무엇보다 죽음을 사랑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삶을 사랑하는 일과 동일했다. 그에게 삶이란 도시에서 영위되는 현대인의 삶, <무기적이고 공허하며, 중성적인 중간색의, 유복하며 빈틈이 없는, 어느 극동의 경제대국>(『문화방위론』)에서의 안락한 일상을, 평범하고 무기력한 나날에의 체념과 투항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에게 진정한 삶이란 비극으로 승화될 <미적 형식>을 갖추었을 때만이,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할 실존적인 가능성 속에서 성취되는 극상의 경험이었다. 그는 삶이란 동경의 대상이자 미의 완성인 죽음과의 팽팽한 긴장을 통해 진정한 가치와 실재성을 갖는다고 믿었고, 그것은 그의 소설 전반에 나타나는 <죽음의 미학>으로 확인된다." (22쪽)
"문학은 내면의 투쟁이 솔직하고 집요하게 기록된 노트이며, 『가면의 고백』이 증명하듯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도 있다. 물론 미시마가 서문에서 <고백의 본질은 불가능>이라고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고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자각한 작가가 시도하는 고백이란 대체 어떤 성격을 띠고 있을까? (...)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구하려고 지독하게 투쟁하는 인간 앞에서 느껴지는 집요하며 고독한 위안. 나도 그런 위안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여전히 문학만이 선사할 수 있는 위안일 것이다." (29쪽)
-양선형, 앞의 책
한 작가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어떻게든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해 독자는 '극우' 같은 단순한 키워드를 내려놓고 그가 왜 그러한 문장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열여섯 살에 쓴 단편 「꽃이 한창인 숲」(1941)부터 죽기 2년 전에 쓴 『목숨을 팝니다』(1968)까지 모든 저작을 다 살필 재간은 없지만 이번 현대문학에서 출간된 세계문학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양윤옥 옮김, 2025)가 일단 충분하고도 훌륭한 가이드로 다가온다. 내게는 유명한 「우국」이나 「한여름의 죽음」보다는 「바다와 저녁노을」 같이 짧지만 풍광에 대한 곡진한 묘사가 담긴 단편이나 (최근 <국보>를 관람해서 그렇겠지만) 「온나가타」 속 만기쿠의 외모와 복장, 행동에 대한 바로 곁에서 본 듯한 생생한 묘사가 빛나는 단편 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미시마 유키오는 죽음을 각오하기도 했지만 두려워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과격은 죽음과 미를 그 자체로 탐닉하는 동물적인 에로스의 영역이었음을 간파하는 독자라면, 이 단편을 읽고 나면 세상 어떤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실제보다 그것을 표현한 언어가 더 아릿하고 정확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될 것이다.
번외: 영화 <국보>(2025)를 보고
이상일 감독의 신작 영화로 이미 일본 현지 개봉 시 자국 실사 영화 중 역대 흥행 기록 2위에 오른 <국보>(2025)는 감독이 이미 약 15년 전부터 염두해왔던 기획이다. 그간 <분노>(2016), <유랑의 달>(2022) 등의 작품에서 이미 인물의 감정을 영화 언어로 섬세하게 포착하는, 다시 말해 배우의 연기를 최상급으로 이끌어내는 연출력을 보여온 바 있고 특히 요시다 슈이치 작가의 소설을 여러 차례 영화로 각색한 이력도 있어 <국보>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일찍이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예매 인기가 높았던 작품 중 하나.)
먼저 당겨 말하자면 <국보> 역시 이상일 감독 영화의 인장이 꽤 좋은 의미로 명확한 작품이다. 이미 협업한 적 있는 작곡가 하라 마리히코의 스코어는 <국보>에서도 매 장면 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키쿠오와 슌스케 삶 자체를 스크린 바깥에서도 그대로 살아낸 듯 보이는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의 연기를 보는 관객으로서의 즐거움과 여운이 상당하다. 특히 작중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등장하는 가부키 공연인 '소네자키 심중'(소네자키 신조, 소네자키 동반자살)을 연기하는 키쿠오(하나이 한지로), 슌스케(하나이 한야)의 모습은 보는 관객의 마음까지도 찌른다.
나를 찌르는 복수 같기도, 도망칠 수 없었던 과거의 거울 같기도,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기하고 동경하게 되고야 마는 그 모든 것들. 예술이 주는 순수한 의미의 매혹(그것이 어떻게 인생을 바꿀 수 있는지)과 그와 동시에 일상을 괴사시키는 질병과도 같은 양면적 속성까지도 고루 담고 있다. 나아가 전통의 의미와 혈통의 장벽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국보>가 가부키 세계를 묘사하는 방식은 입체감과 압도감이 훌륭하다. 다만 소설 원작의 한계 또는 연출상 선택의 문제인지 대부분의 여성 인물들은 캐릭터로서의 인장을 뚜렷이 하지 못하고, 빈번하게 건너뛰는 시간과 사건 흐름은 종종 몰입을 흩트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공연을 담는 촬영, 편집의 기교가 그 미장센에 고스란히 부합할 만큼 완성도 높고 무엇보다 키쿠오와 슌스케를 스크린 너머에서도 온전히 살아낸 듯한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가 동반하는 모든 장면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언어로 차마 설명해내지 못할 어떤 풍경들이 주는 실감 그 자체가 이 영화의 어떤 순간들에 담겨 있었다. 그 장엄함에는 필연적으로 고통과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2025.11.08.,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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