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2025)
그 시절의 당신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었던 지난 나를 스스로는 끝내 용서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직 시간만이. 그리고 그 시간 모두를 겨우 통과한 뒤의 이제는 닿을 수 없을 당신이. 충분히 사랑받았고 그 시절 나는 당신의 집이었다고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고 보듬어주어서 고마웠다고 들을 수 없는 내게 어디선가 말해준다. 심장을 떼어주지는 못했지만, 뭐든 다 해주고 다 떼어줄 마음이었을 것처럼 다 받았다고. 당신이 있어 손바닥보다도 작은 한 줌 빛도 내게는 온 세상이었다고.
머리로는 중국 원작을 이 리메이크가 따라갈 수 없을 거라며 끊임없이 둘 사이를 경유하며 비교하고 있었지만. 흑백의 현재, 공원에서 거듭 만약의 만약을 되뇌는 은호와 거기 조금씩 다르게 답하는 정원을 보는 동안 그 장면에서만큼은 눈가가 계속해서 뜨거웠고, 양 볼을 타고 내리는 무언가가 멈추지 않았다. 가정에 또 가정을 반복하는 일이, 오히려 그조차 한 시절의 종언으로 귀결될 것이었고 그때는 아무것도 알 리 없었으며 인생에 그런 문법이란 없다는 걸 겨우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과정일 테니까.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나를 자책하는 대신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나아가야 하니까.
지나온 모든 것이 결국 관계의 운명이었을지 모르고 사랑 받았던 마음으로 살아갈 내 일생에 보다 책임을 다하는 일이 한때 내 심장을 뛰게 했던 사람에게 최선의 안녕을 빌어줄 방법일지도 모르니까. 도망치거나 놓친 게 아니라 그때는 놓을 수밖에 없었고 놓은 힘으로 우리는 각자 잘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만약에 우리>(2025)는 묻고 싶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말을 품은 채 터널을 건너온 사람에게, 눈앞에 두고도 붙잡지 못했던 이가 있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책망하느라 여전히 거기 엎드려 있는 사람에게 잠시의 햇살을 허락한다. <먼 훗날 우리>(2018)가 치밀하고 세밀하게 담고 있었던, 상경한 청춘이 사회의 장벽에 부딪히는 동안 시들어갔던 심신 대신 이 영화가 시대의 공기보다 인물의 얼굴을 더 가까이에서 비추기를 택한 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관객 각자의 몫에 달려 있겠다. (2026.02.03.)
(2025년 12월 31일 개봉, 115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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