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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11. 2017

언어와 시간의 만남은 어떻게든 당신을 향해

<컨택트>(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이 광활한 우주에서, 당신의 언어와 나의 언어가 만날 수 있었다는 하나의 대사건. 당신을 만나기 위해, 혹은 당신을 만날 줄 모르고, 멀고 먼 과거를 돌아 미래의 이곳에 도달했습니다. 그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 간에, 난 당신을 기꺼이 사랑할 것입니다."


<컨택트>의 감상과 느낌을 생각하며, 대략 이런 정도의 문장을 적어보았다. <컨택트>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의 공간은 같다. 다만 와인 잔이 놓여 있는 위치와 같은 세부 설정이 미세하게 다른데 영화에는 그 디테일이 돋보이는 장면이 아주 많다. 이런 장르의 영화가 대체로 조명 받기 힘든, 배우의 연기마저도 여기서는 생생하다.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아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당신 인생의 이야기>, 2016, 엘리, 210쪽 중에서)


대단히 탁월한 각색과 유려한 음악, 정확한 전달력으로 외적 요소와 내적 요소를 모두 만족시키는 영화. 아마도 작품의 시발점은 이 대목이었을 것 같다. 영화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아는 것은 감상에 있어 중요하다. 헵타포드가 지구에 왜 왔는지는 소설과 영화 모두에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그다지 중요한 요소도 되지 못한다. <컨택트>의 발단은 인간이 미래를 알 수 있어'지'는 것, 혹은 미래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어떤 체험을 하게 되는 것에 있다. 시간의 선형성에 주목한 작가는 언어학자와 이론 물리학자를 등장인물로 설정하는 한편 그 선형성을 뒤틀 수 있는 미지의 초월적 존재를 SF 스릴러라는 장르로서 등장시켜 외양을 갖췄다. 단순한 장르가 아니라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의 심리를 대변하는 요소로 완벽히 기능한다.


게다가 처음부터 범상치 않았던 드니 빌뇌브는 감독으로서 이미 전작들을 뛰어넘은 경지에 올랐다. 이렇게 독창적인 방식으로 지적이고 감수성 짙은 Sci-Fi 영화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인데, 영화가 끝날 때면 어느새 예정된 길을 향해 확고한 발을 내딛는 주인공에게 동참하고 동화되기에 이른다. 당연하다고 인지되어 온 방식으로 삶을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Contact) 누군가 한 사람으로 인해 나의 시야와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면, 먼 우주를 돌아 찾아왔을 그 만남(Arrival)은 곧 나의 세상의 전부가 된다. <컨택트>는 그 각자의 언어들이 자유롭고 일관된 하나의 방식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영화를 다시 봤으니 원작도 다시 읽고, 이 작품의 비전에 대해 원 없이 길게 적어보고 싶다. (★ 9/10점.)


<컨택트>(Arrival, 2016), 드니 빌뇌브

2017년 2월 2일 (국내) 개봉, 116분, 12세 관람가.


출연: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마이클 스털버그, 마크 오브라이언, 티지 마, 줄리아 스칼렛 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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