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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7. 2017

영화가 수퍼히어로를 다루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

<로건>(2017), 제임스 맨골드

<로건>을 보면서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이 적지 않았지만 특별히 언급해두고 싶은 한 장면이 있다. 바로 리무진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는 '로건'(휴 잭맨)이 (아마도 일을 마치고) 자신의 은신처로 돌아왔을 때, 영화 속에서 '찰스'(패트릭 스튜어트)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목이다.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퇴행성 질환을 알고 있는 '찰스'는 더 이상 자비에 영재 학교의 교장일 때의 카리스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로건'과 '칼리반'(스테판 머천트)가 주는 약물 없이는 평정을 유지하기도 힘들 정도로 위태로워보인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2014)에서도 '찰스'는 '행크'(니콜라스 홀트)가 조제한 약물을 통해 간신히 일상을 유지한다. 이 경우의 그는 과거의 사건들로 인한 정신적인 상처로 인해 약물이 필요한 것인데, <로건>에서는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자체가 '찰스'의 변화를 야기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모든 영화에서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키는 방식과 그 양상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데, '로건'은 그간 스크린에서 봤던 '울버린'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어느 정도냐면, "'울버린'을 닮은 남자가 엘파소에서 운전기사를 하고 있다"고 회자되며, 그가 술을 마시는 공동묘지에는 '퀵실버'의 이름인 '피터'가 적힌 묘비가 눈에 띈다. 과거는 더 이상 여기 남아있지 않음을 뜻한다. '찰스'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그 존재만으로 <로건>이 내포하는 정서를 생생히 대변하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흔히 '수퍼히어로'는 이상적이지만 뜬구름 잡는 비현실적인 존재로 회자되곤 하는데, <엑스맨> 시리즈를 통틀어 그려지는 이런 방식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들은 늙고 병들며,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팍팍한 삶에 찌든다. 그리고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단지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 반면 대중적 영웅의 이미지는 'Superhero Landing'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멋짐'과 '강함', 혹은 '쿨함' 같은 것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로건>을 필두로 모든 <엑스맨> 시리즈와 세계관에 속한 이들은 각자 특별한 능력을 지니기는 했지만 '우월한'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질서를 해치는 위험한 존재이거나, 사회적 약자에 훨씬 더 가까운 존재다.



'로라'(다프네 킨)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시하려는 '로건'에게 '찰스'는 "아직 (그녀를 지킬) 시간이 있다"며 "자네와 꼭 닮은 존재"라 말한다. 여기서 '찰스-로건'의 관계와, '로건-로라'의 관계는 대단히 유사하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처럼 형성되어 있다. 시리즈를 통틀어 '찰스'가 뮤턴트들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고 '로건'은 그의 손에서 일종의 보살핌을 받은 존재 중의 하나였다면, <로건>은 드디어 그가 '찰스'가 했던 것과 같은 역할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수행하게 되는 영화다. <엑스맨>(2000)에서 그가 '로그'(안나 파킨)를 보호하는 모습이 다뤄지긴 했지만, 자발성과 절박함의 정도에서 차이를 띤다. 게다가 지금의 '로건'은 '로라' 뿐 아니라 '찰스'의 실질적인 보호자이기도 하지 않은가. 새삼 '모든 것을 걸었다'라는 국내용 포스터의 카피가 캐릭터의 상황과 특성을 대단히 훌륭하게 압축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영화를 접할 때 나는 상업 영화라고 순전히 소비적이고 피상적인 이미지로 관객을 매혹시키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에 더욱 확신을 품는다. 그러니까, 상업성과 오락성을 가지고도 예술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인간적인 함의를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영화로 단연 '엑스맨'을 언급하는 것에는 분명 사심이 담겨 있지만, 단지 사심만이 아닌 까닭이다. 이렇게나 오랜 기간에 걸쳐 이야기를 멋지고 뭉클한 방식으로 이어주고 마무리까지 해주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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