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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07. 2017

로라, 이제 그녀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로건>(2017), 제임스 맨골드

배우로서든 캐릭터로서든 휴 잭맨은 <엑스맨> 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휴 잭맨을 오늘의 휴 잭맨으로 만들어준 것은 명백하게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2000)인데, 이후 그는 <울버린> 스핀오프를 포함해 모든 <엑스맨> 프랜차이즈에 한 편도 빠짐 없이 출연한 유일한 배우다. 동일한 캐릭터를 가장 오랜 기간 연기한 배우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도 한 그의 <로건>(2017)은 그래서 더 특별한 작품이다. 18년에 걸쳐 시리즈와 함께하는 동안 그는 멜로와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캐릭터에 안주하지 않았다. 정말로 <로건>이 '울버린'으로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21세기 '수퍼히어로'라는 '장르'의 역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이 시리즈의 가장 상징적인 존재로서 그를 스크린에서 만난다는 건 그 자체로 쉽게 만나기 힘든 경험임이 분명하다. 첫 번째 예고편에서 Johnny Cash의 'Hurt'라는 곡이 사용됐는데, 영화가 배우와 캐릭터를 아주 탁월하게 이해한 경우의 하나로 단연 휴 잭맨과 '울버린'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원작 코믹스와는 다소 다른 모습임에도 전혀 이질감 없었던 그의 한 시대가 이렇게 저무는 것일까.


폭스, 소니, 마블스튜디오(디즈니)의 작품들을 모두 봐왔지만 마블코믹스 원작의 영화가 감성적 터치까지 풍부하게 담았던 경우는 (내게) <엑스맨> 시리즈가 유일한데, (<엑스맨: 데이브 오브 퓨처 패스트>(2014, 브라이언 싱어)의 클라이맥스가 그 절정이었다!) <로건>은 그 위치가 다소 독특하다. 우선 <울버린> 스핀오프의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지만 시퀄로 보기에는 시간적 편차가 크며 <더 울버린>(2013) 이후 내용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 (물론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덕분이다.) 같은 감독임에도 전작과 그 지향점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점. 그래서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지만 그 캐릭터와 세계관의 일부를 공유할 뿐 독립적인 영화로 받아들여도 전혀 무리가 없다는 점은 관객의 진입 장벽을 적절히 낮추는 역할을 한다. 다만 세 번째 '울버린' 영화를 R등급으로 제작하기로 했던 폭스는 <데드풀>(2016)의 성공으로 더욱 자신감과 탄력을 얻었는데, 액션 신의 질과 밀도는 그동안 본 '울버린'(휴 잭맨)의 그것들 중 극강의 결과물을 선보인다.



뮤턴트가 거의 남지 않은 2029년, 이제는 과거의 '울버린'이 아니라 '힐링 팩터'가 쇠약해진 노년의 '로건'으로 살고 있는 남자. 그리고 그의 곁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90대의 '찰스'(패트릭 스튜어트)가 있다. <로건>의 전개의 핵심은 여전히 뮤턴트의 능력을 통제하려는 어두운 사회적 배경에 있다. 아디만티움 총탄을 늘 상징처럼 지니고 다니는 '로건'은 이미 삶의 모든 암연들과 사랑하는 이들의 말로를 지켜봐왔음에도, 또 다시 누군가를 위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예전의 그의 모습은 이제 없지만 <엑스맨> 시리즈가 늘 뿌리를 두어왔던, 소중한 사람을 위한 순수하고 뜨거운 마음과,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인류의 태도를 관통하는 영화의 바탕은 더욱 그 농도가 진하다. 다수의 신들에서 시리즈를 아껴온 관객이라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독자적인 유머 혹은 이스터에그들이 산재해 있는데, 다소 무겁고 어두운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로 갈수록 애잔한 감흥까지 주는 바람에 열성 팬이라면 눈물을 글썽이게 될지도 모른다.


중반 '찰스'와 '로라'가 호텔방에서 TV로 영화를 보는 대목이 있다. 두 사람이 지켜보는 영화는 바로 1953년작 <셰인>이다. <로건>의 얼개 자체가 웨스턴의 양상을 띠는 것과 별개로 이 영화는 <로건>의 줄거리와도 특히 닮아 있는데, 이후의 수많은 웨스턴 영화들에 영향을 준 이 영화에서도 특히 <로건>이 인용하는 장면은 '사람은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요지의 대화다. 이를 <엑스맨> 시리즈에 대입하면 '누군가 내 본성(삶)을 통제하려 든다면 맞서서 지켜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별칭처럼 붙여진 '울버린'이 아닌 주인공의 실제 이름인 '로건'을 제목으로 삼은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로건'은 마침내 자신의 삶을 '로라'와 친구들이 꿈꾼 '에덴'을 지켜내는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코믹북 '언캐니 엑스맨'에서 묘사된 바에 대해 스스로 "허구"라 말하면서도 '로라'가 가야한다고 믿는 길을 지탱해주는 것이다.



단지 스핀오프 3부작의 흔하디 흔한 마무리에 그쳤을지 모르는 이 작품을 <더 울버린>의 연출, 각본, 편집, 음악,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의 촬영 등 시리즈를 함께해 온 제작진은 가장 인상적이면서 탁월한 피날레로 이끌었다. 엔딩크레딧 후 보너스 영상은 없다. 쿨하다. 하지만 완벽한 마무리다. 마지막 신에서 '로라'(다프네 킨)가 보여준 어떤 행동은, 이 영화가 비록 슬프지만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누구에게도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는, 'X23', 그리고 '로라'의 새로운 이야기가 여기 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닐 것이다. (★ 9/10점.)


<로건(Logan, 2017)>, 제임스 맨골드

3월 1일 (국내) 개봉, 138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휴 잭맨, 패트릭 스튜어트, 다프네 킨, 보이드 홀브룩, 스테판 머천트, 리차드 E. 그랜트 등.


수입/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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