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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21. 2017

알을 깨고 나오는 시간 - 출국장으로!

뉴욕이라니, 동진아

3월 11일 토요일


걸으면서 보이는 것들이 앞으로 일주일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하면 모든 것이 새삼 달라보인다. 눈을 뜬 건 오전 4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그래도 잠을 제대로 못 이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정도 잤으면 충분하지. 전날 정리해둔 짐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래봐야 일주일 어디 다녀오는 건데, 다른 나라에 간다는 느낌은 이런 거구나. 새삼 달라보이는 것들에는 새벽 눈 뜬 자리의 이불부터 엘리베이터, 집 앞 편의점, 모퉁이를 도는 순간 눈에 띄는, 하나 튀어나온 보도블럭, 신호등, 그런 것들도 포함된다. 다녀오면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들의 존재가 좀 더 고마울 것임을 안다. 알고 나니까, 알을 하나 더 깨고 앞으로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


[ICN - JFK / 11 MAR 17, 11:00 ~ 11 MAR 17, 11:00]의, 하루를 다시 사는 여정이 여기 눈앞에 있다.


이런 거 찍어줘야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면서요?
내가 탈 항공편, OZ 221

탑승권을 받고 수하물을 부치고, 보안심사와 출국심사를 거쳐 면세구역으로 들어오는 일. 게이트의 위치를 확인한 뒤, 면세점이라는 공간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미주 지역은 자동 수하물 위탁이 안 되고, 출국심사에 앞선 보안심사가 조금 더 까다롭다. 그럴 수 있다. 내게는 모든 게 여행의 일부다.



여객기가 이륙한 후, 이동 중에 승무원이 '세관신고서'라는 걸 나눠줬다. 착륙하기 전에만 쓰면 되지만, 받자마자 작성했다. 한글이 적혀 있기는 한데 한글로 적어도 되는 건가 잠시 고민을 했다. 좌석마다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영화 등의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있었는데,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최신 영화들도 구비되어 있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도 있었는데, '중국어' 자막만 지원되었다!) 나는 팀 버튼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봤다. 리더필름의 앞에 기내용으로 영상변환 및 유통을 담당했을 것으로 보이는 업체의 그것이 추가로 들어가 있었고, 영상은 동일하지만 극장용과 화면 비율이 다르다는 언급이 있었다.



잠을 청하려고 했는데, 길어야 1시간 정도면 깼다. 첫 장거리 비행이라 그런 모양이었는데, 거부감이나 어려움 같은 그런 의미의 것은 아니었다. 가끔 미약한 떨림들이 기내에 전해지곤 했지만 전반적인 비행은 아주 편했다. 지상으로부터 10km가 넘는 고도에서, 시속 1,000km가 넘는 속도로 1만 3천 km를 비행하고 있다는 게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통로 좌석을 택한 나는 마침 옆자리에 아무도 없어서 공간을 더 넓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터미널에 내리자 입국 심사를 위한 줄이 다소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공항 직원들이 나름대로 유연하게 대처해서 긴 줄을 분산시켰는데, 마침내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입국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자연스럽게 'Film Marketer'라고 대답했다. 미국에는 처음인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어디에 머무르는지, 현금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등 형식적인 질문들을 몇 가지 주고받고는, 양손의 지문을 인식하고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담당 직원의 물음들에 즉각 대답을 할 수 있었다. 'Sanchez'라는 이름의 직원은 한층 여유로워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Welcome to the United States and have a good day"라며 도장을 찍어주었다.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마침내 나는 정식으로 미국에 입국을 허가 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멘트 자체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징적인 것이기도 했지만, 그걸 내 귀로 실제로 들었다는 건 꽤나 생경한 경험이 분명하다. 그제서야, 비로소 뉴욕 땅에 나는 온전히 혼자일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의 바퀴가 공항에 닿은 것이 오전 11시 10분 경이었는데, 짐을 찾아 터미널을 나선 시각은 12시였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공항철도 쯤 되는, AirTrain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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