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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pr 24. 2017

인정과 감동은 내 일상에서 나온다는 것

<라따뚜이>(2007), 브래드 버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내놓는 작품이 지니는 가장 큰 힘은 이야기의 절정에 있지도, 캐릭터의 매력도에 있지도, 이미지와 영상으로 상상을 구체화하는 능력에 있지도 않은 것 같다. 흔히 '영화적'이라고 하는, 드라마틱한 순간들보다 가장 하찮고 사소히 여겨질 수 있는 순간들에서 일순간 관객들의 잠재의식 속 추억과 경험들을 환기하는 대목에 이르면 그 자연스러움과 보편성에 감탄하게 된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라따뚜이>는 그런 점에서 픽사의 몇 가지 경지 중 하나를 탁월하게 내보인다. 이를테면 '레미'가 처음 자신이 파리 한가운데, 그것도 책에서 본 구스토 식당의 목전에 왔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과 평론가 '이고'가 '라따뚜이'를 한 입 맛보는 순간 별안간 자신의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는 장면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아름답고 감상적인 순간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 '이고'라는 캐릭터 자체의 특성과 비중상 어느 정도 중요도를 띠는 장면이기는 하다.) 동시에 장면 자체로는 비교적 사소한 순간이지만 여기에 상상 속 경이로운 공간을 직접 마주했을 때 누구나 느낄 벅참과, 전혀 기대하고 생각하지 않았던 대목에서 스스로도 깊숙하게 잊고 있었을 한 켠의 경험이 되살아나는 기적을 관객에게까지 전달한다.


<라따뚜이> 속 구스토 식당을 창업한 인물인 '오귀스트 구스토'가 쓴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Anyone Can Cook)라는 책이 불어가 아닌 영어로 쓰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단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작품이어서 영어가 쓰인 것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고정관념이든 실제든 프랑스 사회에서 요리라는 것의 상징성과 그 지위를 생각할 때 "누구나 요리를 할 수는 있지만 쥐는 안 된다" 정도로 <라따뚜이>의 서사가 전제하면서도 스스로 극복의 대상으로 삼을 법한 문장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에는 흔하고 익숙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고, 또 실제로 그런 순간들이 일상에 드물지 않게 깃들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돌이켜서 보게 된다. 작품의 전개상 가장 중요한 요리가 프랑스의 전통 요리이면서도 요리사의 취향과 성향에 따라 그 종류와 결과물이 폭넓게 나타난다는 점과, 극 중 속어와 함께 비교적 시골 요리로 하찮게 묘사된다는 점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다. 요리로 누군가를 감동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대단한 재료와 기술이 담긴 '만찬'이어야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말이다. 혹은, '누구나 뛰어난 예술가일 필요는 없다'는 명제로도 전환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라는 구스토 식당 창업주의 책 제목만으로 거의 ('거의'라고 쓴 이유는 이 작품이 누구나 요리사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압축할 수 있을 정도로 <라따뚜이>는 이야기만으로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러나 픽사 작품 중 <라따뚜이>가 특히 탁월한 건 삶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와 관념의 전복과, 그 전복의 일상성 모두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발상이나 고정관념을 바꾸게 되는 일을 곧 '뒤집는 행위'(전복)라고 보았을 때, 초반부 총격전을 피해 물가로 도망가기에 급급하던, 사람으로부터 피하는 게 일상이던 쥐 '레미'가 자신도 모르게 요리책에서 본 파리의 유명 식당 근처까지 왔다는 대목은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막연히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쥐가...?'라는, 이 작품의 전제이자 이 작품의 서사가 끝내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물음은, 일상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예술가는 특별한 곳(여기서는 사람)에서만 나온다"는 판단을 뒤집는 것에 해당한다.


까다롭고 지명도 높은 평론가 '이고'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인 '레미'의 라따뚜이를 맛 본 것은, 대단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직업적으로 해온 '식당에 가서 메뉴를 맛 보는 일'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생각지 못한 순간들이 삶에서 꽤나 자주 찾아오는데 그것은 일상과 동떨어진 데에서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 대하는 것 중 특히 청결을 요하는 요리에서 특히 그 반대 지점을 가장 상징적으로 현신하는 '쥐'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애써 아티스트가 되려 하기보다는 내 일상을 맛깔나게 가꿀 때 인정과 감동의 순간이 찾아오는 것 아닐까. (★ 9/10점.)



<라따뚜이(Ratatouille, 2007)>, 브래드 버드

2007년 7월 25일 (국내) 개봉, 115분, 전체 관람가.


(목소리) 출연: 패튼 오스왈트, 루 로마노, 브래드 거렛, 재닌 가로팔로, 브라이언 데니히, 이안 홈, 피터 오툴, 존 라첸버거, 제임스 레마, 윌 아넷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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