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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0. 2017

사랑에 있어 '실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그녀>(2013), 스파이크 존즈

숱한 장르적 도상들과 캐릭터의 특성, 서사적 전개들을 고려하더라도 영화를 통틀어 '사랑'이라는 테마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영화 속 인물은 영화의 시작에서 끝으로 가면서 성장하게 된다'는 (실제로 그렇지만) 일반적 결론이 아니라 과연 사랑은 모든 이야기와 사건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것. 멜로, 로맨스로 분류되는 영화가 아니어도 그 안에는 크든 작든 사랑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손편지 닷컴'의 우수 사원인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고객의 의뢰에 따라서 손편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컴퓨터로 작성된)를 지어주는 일을 한다. 발신인이 보낸 사진들과 사연 등을 기반으로 해 '테오도르'는 출판사 편집자도 울릴 만큼 명문장을 만들어낸다. 수신인의 얼굴에 난 잡티라든가 치아의 모양 같은 사소한 특징을 섬세하고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편지를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테오도르'가 쓰는 편지를 보면 그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상대의 마음까지 능히 헤아리는 뛰어난 '작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내와 1년 정도 별거 중으로서 정작 자신의 결혼에는 실패한 상태인 '테오도르'는 새로운 관계를 더 이상 만들어가지 못하던 중 우연히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운영체제'라고 하는 'OS1'을 구입한다. <그녀>의 발단이다. 자신의 욕구만 채우고 사라져 버린 상대 앞에서 당황했던 음성 채팅과, 마음에 드는 상대이긴 했지만 진지한 관계를 시작할 자신은 없어 실패했던 소개팅에 이어 그가 만난 'OS1'은 (시간적으로는 소개팅을 한 것보다 OS1을 구입한 것이 먼저다.) 스스로의 이름을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라 '짓는'다. 여기까지 적어도 '테오도르'가 '사만다'와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른 쪽으로 향한다. 사랑의 방식과 양상이 달라지더라도 그 사랑의 본질 자체가 바뀔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그녀>는 멜로라기보다는 차라리 SF에 더 가깝다. 미래를 그리고 바라보는 방식과 소재 자체에 대한 접근 모두에서 그렇다. <그녀>가 '사만다'라는 이름의 운영체제를 내놓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정도를 돌아보게 만든다. 하나는 사람이 아닌 가상의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소위 '씨버 러버'라 해서 그건 사랑이 아닌 건가? 다른 하나는 스스로 환경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진화하는 인공지능은 사람보다 훌쩍 멀리, 저만치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리기라도 하진 않을까?


전자는 OS 일 뿐 사실상 인격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만다'의 모습에서 비롯한다. '사만다'는 자신의 몸이 없다는 것 때문에 '테오도르'가 공허함을 느끼진 않을지 우려해 잠시 대역을 데려오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대역이기 때문에 발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후자는 '테오도르'가 '사만다'로부터 어떤 새로운 사실을 전해 들은 후 지하철역 출구 계단에 앉아서 보이는 반응에 따른 것이다. 그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며 '사만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의 경험을 토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여도 쉽사리 용인할 만한 내용은 아니긴 하지만, 실상 '사만다'의 말은 인간의 가능 영역훌쩍 초월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테오도르'가 '사만다'를 '개봉'하기 직전 장면을 돌아보면 OS는 자신을 사용자에게 맞추겠다며 사용자에게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땠냐"며 질문을 던진다. OS가 사용자를 파악하는 핵심은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테오도르'는 어릴 적부터 함께했던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 외의 새로운 '관계 맺기'에 늘 실패해왔다. 직장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고 친구 '에이미'(에이미 아담스)가 그나마 속내를 교감하는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사만다'는 그에게 관계의 진실이 아닌 진정에 대해 가르쳐줬다.


사랑의 물리적 실체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 이 순간이 좋아서, 너무나 좋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만큼 좋은 순간이 과연 또 찾아올 수 있을까. 그것이 닳아서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그 불안의 감정은 분명 단지 내면을 다스리는 것만으로 해결된다기 보다 경우에 따라 일종의 증거(그/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것)를 체감할 때에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마음은 상자처럼 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작중 대사처럼 실체는 전부일 수 없다.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 감정이 진정이었다면 이 삶에 반드시 손편지처럼 남을 것이다. '테오도르'는 마음으로 배웠을 것이다. 사랑은 나에게 맞춰진 누군가가 있고 그 존재가 내 곁에 계속 있어줘야만 하는 게 아니라 관계의 동등한 두 주인공으로서, 작가인 동시에 독자로서 상호 작용이 필요한 것임을 말이다.



<그녀>가 그리는 미래는 사회적인 외면은 지극히 평화롭고 안락해 보이나 개인은 고립돼 있다. 친한 친구와도 굳이 직접 연락하지 않고 이메일을 통해 대화하고 모두가 각자 저마다의 맞춤 OS와 일상을 함께하는 사회에서 영화 속 사람들은 OS에 의존적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한 디지털 사회에서도 여전히 손편지가 마음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는 모습을 볼 때 <그녀>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는 유보적이다. 사랑의 속성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은 언제나 변화를 겪는다. 다만 사랑의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다.




<그녀(Her, 2013)>, 스파이크 존즈

2014년 5월 22일 (국내) 개봉, 126분, 청소년 관람 불가.


출연: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목소리) 스칼렛 요한슨, 루니 마라, 크리스 프랫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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