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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y 17. 2017

한국영화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케미스트리의 가능성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 변성현

바닷가에 대충 자리를 펴고 앉아 생선을 왜 좋아하고 왜 좋아하지 않는지 시덥잖아 보이는 이야기들을 안주 삼아 나누던 그때, 갑작스런 총성이 들려온다. "수고했다"는 러시아어 대사가 나오고 조직원으로 보이는 인물들 여럿이 잠시 나와 현장을 수습한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오프닝이다. 이 작품의 힘은 '청소년 관람불가'를 단순히 자극을 위해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서 적절한 수준으로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급하는 데에서 발현된다. 맥 없이 잔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컷과 컷에 캐릭터가 담겨 있고 그 캐릭터들의 합이 지금껏 보기 쉽지 않았던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다수의 작품에서 익숙하게 소비되던 조연진도 이 영화에서는 허투루 낭비되지 않는다.



액션 신들은 호흡을 적절히 안배한 촬영과 더해져 평범하지만 강약이 있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도 서사의 흐름은 욕심 없이 점층적으로 갈등을 고조시켜 나간다. 과시와 과욕이 아닌 '조화'로서의 연출이 지니는 가치를 모처럼 실감하게 하는데, 한편으로는 캐릭터 간의 조화 이상의, 기억에 남을 만한 더 큰 감흥을 주지는 못한다. 다만 최근 개봉작 중에선 보여주고 싶은 캐릭터와 실제로 보여주는 캐릭터조차 제대로 일치되지 못했던 <프리즌>에 비하면 스크린에서 다시 감상할 만한 용의와 가치가 충분하다. (게다가 길지도 않은 상영시간 하에 유머도 잃지 않았다!) 모든 장르에 걸쳐 흥행작을 배출해 온 설경구가 제반을 단단히 지탱하는 가운데 그간 흥행 면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던 임시완은 이번 영화로 배우로서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발휘한다.



불한당(不汗黨):
[명사] 1.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재물을 마구 빼앗는 사람들의 무리.
2. 남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들의 무리.



영화 속 감옥은 범죄의 공간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장소다. 무리 지어 구경꾼이 모여앉은 싸움의 현장에서 '현수'(임시완)가 짧게 주먹을 쥐는 신, '현수'와 '재호'(설경구)가 담배 거래를 두고 보안계장을 겁박하는 신은 암시적 복선처럼 작용하면서도 캐릭터의 특성을 보여주며 서사에서도 필요한 대목에 해당한다. 과거가 캐릭터를 형성하고 현재가 내러티브를 이끈다. 그 중심에서 믿음과 의심이 오가며 화면을 장악한다.


그간 한국 상업영화에서 '범죄+액션'은 기본 스펙처럼 여겨져 왔다. 시장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멀티 캐스팅을 통해 나름대로 '판'이 커 보이면서도 시각적 자극을 담기 좋은 장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만나왔던 한국 영화들은 단발적 흥행만을 노린 기획 기성품의 성찰 없는 양산으로 일관했는데, (게다가 "판 한 번 벌여보자"며 위세를 부리지만 정작 처음 시작한 것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행히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보며 올해 국내 개봉작 중에도 과연 희망이 없진 않다는 걸 발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전적이고 익숙한 설정들의 집합체지만 편집과 연출이 단조로움을 극복해내는 모양새다. 클리셰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에서의 '불한당'이 엔딩 크레딧에 앞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바뀌는 대목을 한 번 되짚어본다. 이 영화는 인물보다는 세상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게 나쁜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 당하는 게 나쁜 것"이란 요지의 '인숙'(전혜진)의 대사가 짧게 지나가는 신이 있다. 출소 전의 '재호'가 자신은 감옥 안에서 건드려도 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스스로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는 대목을 함께 상기하면 이는 묘한 의미를 남긴다. 땀 흘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끊임없이 맞서고 또 스러지며 무언가를 잃는 사람들. 위치와 역할을 막론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각축을 벌이는 이 영화 속 세상의 모습은 제목을 그대로 대변한다. 이렇게 감각적이면서도 실속을 갖춘 연출이 장르적 다양성까지 갖출 때, 정말 힘 있는 영화가 나올 것이다. (★ 7/10점.)




<불한당(The Merciless, 2016)>, 변성현

2017년 5월 17일 개봉, 120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설경구, 임시완, 김희원, 전혜진, 이경영, 문지윤, 장인섭, 김지훈, 박수영, 남기애, 진선규, 허준호 등.


제작: CJ엔터테인먼트, 폴룩스(주)바른손

제공/배급: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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