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May 21. 2017

우리의 세상은 이렇게나 폐허다

<유령의 도시>(City of Ghost), GFFIS2017

[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GFFIS 2017) 개막작]


<유령의 도시>는 ISIS가 왜 이 세상에 해악을 주는 집단인지에 대해 가장 명확한 두 가지 방식으로 고발한다. 시리아 '라카'를 배경으로 하나는 파괴와 죽음들로 얼룩진 도시의 폐허를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향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의 삶의 현장으로 고스란히 뛰어드는 것이다. [라카는 소리 없이 도살당하고 있다(Raqqa is Being Slaughtered Silently)]라는 민간단체의 활동을 좇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1인 미디어 시대에 '나'가 '우리'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유의미한 메시지를 준다.


"Our words are stronger than their weapons"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근거지가 되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된 도시 '라카'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일어선 소수의 사람들. <유령의 도시>의 시선은 단순히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테러 조직조차 미디어를 수단과 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신랄하고 충격적인 다큐멘터리의 방향은 단순히 진상을 고발하거나 보는 이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만을 향해 있지 않다. 베를린 경찰의 보호까지 거부한 RBSS의 설립자. 고향에서 목숨을 걸고 글귀 한 줄 사진 한 장을 업로드하고 있는 동지를 생각해 특권을 스스로 포기한 그가 담배를 쥐고 손을 파르르 떠는 모습,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든 모습은 오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가 ISIS의 공허한 이념을 빼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유령의 도시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 실은 누구보다 고향을 그리고 가족을 그리는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범한 지도자이거나 각성자가 아니라 그도 우리처럼 봄이 있었던 사람이라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 역시 그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사명만으로 들끓지 않는, 환경 앞에 누구보다 용감해질 수도 또한 더없이 무력해질 수도 있는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극장이란 공간에서 편히 이 작품을 감상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이곳의 가치를 한 번 더 실감했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를 환경으로 인식하고 돌아보는 아주 탁월한 다큐멘터리다. (★ 9/10점.)



<유령의 도시(City of Ghost, 2017)>, 매튜 하이네만


국내 미개봉(제14회 서울환경영화제 개막작), 90분, 다큐멘터리.


<유령의 도시> 해외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hzghC6qlYrs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영화에서 쉽사리 보기 힘든 케미스트리의 가능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