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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07. 2017

뜻과 의지를 세운 곳에서 섬김이 나온다

<대립군>(2017), 정윤철

최근 한국 영화계에서 이제는 수명을 다 한 것처럼 보였던 사극이 실은 아이템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가 <대립군>이라고 할 수 있다. 실상 <대립군>은 좋은 영화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중립외교나 대동법(실제로 대동법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았지만)과 같은 것들로만 대변되던 광해군의 어린 분조 시절을 다룬 것도 그렇고, 이제는 시대극 속에서의 모습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이정재와 여진구와 같은 좋은 배우들의 합도 그러하며 비교적 개봉 시기에 적합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 역시 그렇다.


그간 민중들의 입으로 시대와 세상을 논하는 한국 영화들의 논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이렇게 고생한 걸 사람들이 알아줄까?"와, "우리가 뭘 하든 세상은 바뀌지 않아" 말이다. <대립군>의 방향은 그것과는 정반대에 있는데, "우리가 직접 싸워야 한다"는 주체성이 명확하게 강조되며 이는 "혹시 알아, 성군이 나올지" 같은 희망적 태도로도 반영된다. 아무런 알맹이 없는 "잊지 않겠습니다"보다 이쪽이 훨씬 나을뿐더러, 개인의 서사로서 전개에도 용이하다. 이는 다른 사람을 대신해 군역에 종사하는 '대립군'이라는 소재 자체와도 탄탄한 연관성을 띠는데, '광해'(여진구) 역시 파천을 간 아버지 대신 군주의 역할을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왜란 중 대립군과 광해군이 혹시 실제로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영화의 바탕은 꽤 타당하다. 게다가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도 의욕도 없던 어린 '광해'가 전쟁을 직접 보고 겪으며 변화하는 서사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저 그런 영웅담보다 훨씬 입체적이다.



이 대목이 적어도 한국 상업영화로서는 관객들이 구미가 당길 만한 매력이 약하다는 게 이 작품이 손익분기점을 한참 넘기지 못한 주된 요인인 것으로 보이지만, 작품 자체의 한계점도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를테면 "'덕이'(이솜)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에서 왜 존재해야 하는가?" 같은 물음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다. '토우'(이정재)와 '광해'를 그리는 각본은 뛰어나지만 그 외 조연은 담아둘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 그저 산길을 걸어 올라가는 신에서조차 긴장감을 줄 만큼 시대의 분위기를 담는 능력은 좋지만, 보여주고 싶은 만큼을 따라오지 못하는 우직함과 절제되지 못한 감정이 중반 이후에는 다소 관객을 앞서간다는 점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가령 '광해'가 피난민들 앞에서 '곡수'(김무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신은 자신의 존재가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하는 '광해'의 참담함과 스스로의 존재가 백성들에게 오히려 짐이 되는 무력감을 탁월하게 담고 있는 좋은 장면이다. 다만 편집과 후반작업에 있어 연출자가 의도했을 서사의 결을 살리지 못하다 보니 그 자체의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윤철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든 직배사의 한국 영화에 있어서든 <대립군>은 의미 있는 영화다. 남을 위해 싸웠던 이들이 "이제 대립은 끝났다"는 확고한 단언 후 스스로를 위해 무기를 드는 모습을 통해 진짜 리더는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직접 만들어 나갈 때에만 탄생할 수 있다는 좋은 메시지를 남긴다. 뜻과 의지를 세운 곳에서 섬김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 7/10점.)



<대립군>(2017), 정윤철

2017년 5월 31일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출연: 이정재, 여진구, 김무열, 김명곤, 박원상, 오광록, 배수빈, 이솜, 박지환, 박해준, 한재영, 최병모, 조동인 등.


제공: 폭스 인터내셔널 프로덕션 코리아

배급: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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