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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16. 2017

'경계의 남자'가 배운 "그럴 수 있다"의 인생철학

<인 디 에어>(2009), 제이슨 라이트먼

<인 디 에어>는 내레이션을 비롯, '라이언'(조지 클루니)을 화자로 설정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삶이 확실하고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가 명확하다고 믿고 있던 그가 '나탈리'(안나 켄드릭)와 '알렉스'(베라 파미가)를 만난 후 어떻게 변화하게 되는지 제3의 입장에서 관찰하는 쪽에 가깝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 그의 가치관에는 일련의 변화가 찾아온 상태이나 여전히 어디든 '여기'(Up in the Air)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는 오늘도 비행을 계속하는, 영화의 시작에서와 적어도 물리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보낸다.


'좋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최근 여러 차례 있었는데, 그 중 하나의 사적인 기준은 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애써 바꿔버리려 들지 않는 영화다. 실은 다른 영화 하나를 소개하면서도 썼던 표현인데, 이 영화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뜻한 바를 위하여 인물에게 특정한 상황을 부여하거나 사건을 겪게 만들지만 그 이상의 변화를 강요하지 않는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는 영화가 끝나도 우리들 관객은 물론 영화 속 그 인물의 삶 역시 그 안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 디 에어>는 사실상 아무것도 제대로 정해진 바가 없는 우리의 삶에서 어디로 가야만 할 것인지 삶의 방향성과 지향성을 돌아보게 한다. 밖에서는 동기 부여 강연을 하지만 직장에서는 타인의 동기를 꺾어놓는 일을 하던 '라이언'이, 자신의 동생과 결혼할 '짐'(대니 맥브라이드)에게 결혼에 대한 설득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이쯤되면 '좋은 영화'의 사적 기준이 하나 더 나온다. 삶을 애써 바꿔버리려 들지 않는다는 건 쉽게 답을 내려버리지 않는 영화라는 것과 동일한 의미다. 단지 질문 하나를 던지고 관객이 답을 직접 찾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원작 소설에는 없는 두 인물('나탈리'와 '알렉스')을 추가함으로써 던지는 질문의 전달력을 강화한 것. 앞서 화자의 이야기가 아닌 관찰자의 이야기라 한 것은 <인 디 에어>가 인물의 성장담을 만들고 그에게 관객들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데에 관심이 없고 바로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영화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실은 이 대목에서 원작 소설의 적절한 문단 하나를 인용하려고 했는데, 소설엔 '나탈리'와 '알렉스'라는 인물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이언'은 무엇으로 사는가. 영화 초반 그는 '재활용 공기'나 '싸구려 초밥', '디지털 주스 공급기' 같은 이야길 하며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비행기 여행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고 전한다. 1년 중 300일도 넘게 비행기를 타는 그가 "여기 산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Everyone needs a co-pilot" 같은 대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나는 <인 디 에어>가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만 보진 않는다. 말하자면 '라이언'은 무엇이든 간에 경계에 있는 남자다.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긴 하지만 소원하며 집이 있지만 비행기에 살고 사무실이 있지만 다른 이들의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결혼과 자녀 생각도 없던 그가 영화의 이야기를 거치며 가치관의 변화를 겪기는 하나 이것은 근본적인 전환점이 되지 못한다. 말하자면 <인 디 에어>는 관계의 소중함을 장려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극과 극을 모두 체험해본 주인공이 자신은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사이'의 인간이라는 걸 재확인한 후 다시 '인 디 에어'로 돌아간 이야기라는 얘기. 적어도 '라이언'과 '알렉스'의 관계로 국한하자면 여기서 '극'이라 함은 관계 가운데서도 상대의 고유한 성정을 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부조종사는 부조종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의 시작 전과, 끝 이후의 이야기를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는 완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밖의 이야기는 어쩌면 무의미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하자면 '라이언'은 스스로의 삶에서 버겁고 무겁다 여기는 것들을 거침없이 (그게 가족이라 할지라도) 솎아내는 사람이었다. 달리 말하면 삶의 모든 것들에 확실함과 명확함이라는 것을 두는 인물이었던 것. 그는 '나탈리'의 패기 넘치는 신입사원의 당돌함 대신 전에 없던 황망히 흔들리는 모습을 만나고, '알렉스'로 인해 스스로의 흔들림을 경험한다. 그의 'What's in your Bag?' 강연은 영화의 서사가 진행될수록 점차 청중이 늘어가지만 말과 말 사이의 멈춤은 길어진다. '삶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최대한 가방을 가볍게 하라'던 자신의 이야기에 스스로 의문이 제기되며 자신이 지켜왔던 선 하나를 넘게 된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라이언'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신의 규칙과 철학에 어긋나지 않는 빈틈없이 계산된 것들을 신봉하던 그는 무엇이든 간에 '그럴 수 있음'을 경험한 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쩌면 허무하지만 그를 수용하는 주인공의 태도처럼 <인 디 에어>의 중심 태도는 가만히 지켜보던 인물에 깊이 이입하지 않고 그의 변화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관계나 온기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선택과 수용에 대한 이야기로서 대단히 훌륭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가방만 가벼운 게 아니라는, 혹은 무거운 것이 짐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새로 하게 되었다. 영화를 다시 본 나는 그제야 소설의 대목 하나를 가져와서 본다. (★ 9/10점.)


우리에게는 우리 각자가 누군지 분명하게 말해주는, 그래서 우리를 분명하게 구분 지어주는 경계가 있다. 타협하지 않음으로, 또 어떤 순간에는 굳이 변명하지 않음으로써 누구도 쉽게 넘어올 수 없는 경계선이 있다. 샐리는 합성섬유의 옷을 입지 않는다. 그게 샐리다. 빌리는 계란에 손도 대지 않는다. 그게 빌리다. 당신이 개인적으로 고수하는 절대적인 경계선, 그러니까 샌디 핀터가 '핵심적인 집착(Core Attachment)'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변명하거나 해명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내 마일리지는 내 거야."

(<업 인 디 에어>, 월터 컨 지음, 김환 옮김, 2010, 도서출판 예문, 68쪽.)

<인 디 에어(Up in the Air, 2009)>, 제이슨 라이트먼

2010년 3월 11일 (국내) 개봉, 108분, 15세 관람가.


출연: 조지 클루니, 베라 파미가, 안나 켄드릭, 제이슨 베이트먼, 에이미 모튼, J.K. 시몬스, 멜라니 린스키 등.


수입/배급: CJ엔터테인먼트


<인 디 에어> 해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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