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Sep 15. 2015

사랑만 하기에도 오늘은 너무 짧다

<원 데이>(2011), 론 쉐르픽

남녀 간에 이성적 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글자 그대로의 '친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데이비드 니콜스의 동명 원작(2010)을 바탕으로 그가 직접 각본을 쓴 <원 데이>는 그 물음에 대한 여러 답 중의 하나를 제공하는 동시에, 결국 미래가 어떻게 되든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는 익숙한 결론으로 향한다. 청춘 남녀에게 벌어지는 평범한 일상을 매년 7월 15일 하루로 축약한 설정 덕에, 영화의 이야기는 소소한 일상들마저도 런던과 에든버러를 오가는 풍광과 함께, 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때때로 만나는, 극 중 인물 누군가에게 이입하기보다 그저 멀리서 풍경화를 바라보듯 함께 하게 되는 영화 중 한 편이다.


간발의 차이로 전화가 연결되지 못하거나 일이 틀어지는 상황,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는 사건과 사고들. 영화를 보는 관객을 안타깝게 할 그런 불가항력의 일들이 현실에서는 바로 우리 곁에 언제나 도사린다. 게다가 관계에서는 마음과 달리 안팎으로 어긋나는 일이 빈번하다. 우리가 숨 쉬는 순간은 언제나 오늘이고, 지금이고, 여기다. 어제는 오늘이었고,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었으며 내일은 곧 오늘이 된다. 엠마와 덱스터, 덱스터와 엠마가 처음 만난 성 스위딘의 날(7월 15일), 둘은 앞으로의 20년을 함께 하게 될 줄을 결코 몰랐을 것이다.


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임을 직감하는 관계를 믿지 않는다. 마법 같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어떤 우연이나 기적은 그저 뚝 떨어지듯 찾아오지 않고 둘 사이의 노력이 만들어간다. 함께 한 시간과 나눈 마음이 서로를 깊고 귀하게 만든다. 그러면 어떤 오늘은 앞으로의 내일들과 지난 어제를 나눌 특별한 하루였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는다. 다만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귀한 관계인 만큼 신경쓰고 생각할 것들이 분명 많지만, 서로의 마음을 가지고 시험하며 밀고 당기느라 허비하기에 오늘이란 너무나 소중하다. 우리는 매일을 앞으로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선물처럼 특별히 보내야 한다. 여러 차례 감상하면서도 엠마와 덱스터가 서로 멀어지는 순간들은 볼 때마다 안타깝고, 서로가 닿아있는 순간은 언제나 뭉클하고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그런 슬픈 순간도, 그런 기쁜 순간도, 모두 오늘 하루다. 지금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은 짧다. <원 데이>는 한없이 짧은 오늘에 대한, 언젠가 오늘이 될 내일에 대한 영화다. (★ 8/10점.)


<원 데이(One Day, 2011)>, by 론 쉐르픽

2012년 12월 13일 (국내) 개봉, 107분, 15세 관람가.


 출연: 앤 해서웨이, 짐 스터지스, 패트리시아 클락슨, 라프 스펠, 로몰라 가레이 등.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