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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5. 2017

사회화된 내 감정을 분해해보는 작업들

<데몰리션>(2015), 장 마크 발레

(2017-06 북티크 무비토크 선정작)

<데몰리션>의 연출 방식은 인물을 관찰하되 거리를 두고 있지만, 크고 작은 상실 한 번 정도 안 겪어본 사람 찾기란 어려울 것이기에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가 내내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를 떠올리듯 관객들 역시 저마다의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볼 만한 작품이다. 인물을 '관찰'하는 태도는 영화에 있어 중요하다. 관찰이 아니라 간접적으로라도 개입하는 순간은 곧 인물의 일상성을 뒤흔드는 행위이며 그 순간 그 인물은 캐릭터가 아니라 장치로 전락한다. <데몰리션>의 카메라는 시종 핸드헬드 기법으로 인물의 시점을 같이하며 닥쳐온 상황 속의 '데이비스'의 심리와 내면을 생생한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데이비스'가 "내 결혼을 분해하겠다"며 냉장고를 시작으로 온 집안을 망치와 불도저로 부순 뒤 남는 건 무엇일까. 그 어떤 가치와 거짓과 위선도 개입되지 않은 본연의 순수한 감정이다. 그가 아내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것은 정상이다. 자신이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그는 일련의 분해 작업의 결과로 자신과 그녀의 관계에 오래전부터 균열이 있었음을 깨닫고, 초콜릿을 뱉어내지 않은 자판기 하나로 인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고 바라볼 기회를 얻는다.



두 명('캐런'(나오미 왓츠)과 '크리스'(유다 르위스))을 제외한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데이비스'의 행동과 감정을 이상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상실을 주제로 한 영화들 가운데서도 '데이비스'는 보기 드문 솔직하고 직설적인 캐릭터다. 영화 밖의 '우리' 역시 얼마나 빈번하게 다른 감정을 진짜 내 것인 양 꺼내야 할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는가. 아픔이 찾아와도 이를 부정하거나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일상에서 감정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감정도 사회화되기 때문에 상황(이를테면 장례식)에 '맞는'(것으로 간주되는) 감정들을 우리는 즉각 필요에 맞게 꺼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종의 진짜 감정은 나를 굳이 포장할 필요 없는 제3자와의 대면에서 더 쉽게 나온다. '데이비스'에게는 자판기 회사의 고객 서비스를 담당하는 '캐런'이 정확히 그런 역할이며 장인 '필'(크리스 쿠퍼)은 사실상 아내의 아버지가 아니라 직장 상사로서 '데이비스'를 아랫사람으로 다룬다. '캐런'의 아들인 '크리스'는 '데이비스'의 억눌린 감정을 해방시킴과 동시에 후반부에 이르러 서로를 동일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어떤 아픈 일을 겪었을 때 흔한 위로는 그걸 딛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아픈 사람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에 오늘만 있다. 보기 좋게 포장된 공적인 감정들을 모두 분해하고 난 뒤 '데이비스'에게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오늘이 찾아오는 것이다. 마음을 교감할 수 있다면 그게 꼭 내일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일상성을 마주하게 된 중대한 경험으로 그는 다시 일상으로 내달릴 수 있게 되었다. (★ 8/10점.)



<데몰리션(Demolition, 2015)>, 장 마크 발레

2016년 7월 13일 (국내) 개봉, 100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크리스 쿠퍼, 헤더 린드, 유다 르위스 등.


수입: (주)메인타이틀 픽쳐스

배급: 리틀빅픽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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