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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6. 2017

배우에 기댄 과시적 기획이 빚어낸 총체적 폐해

<리얼>(2016), 이사랑

모든 영화는 직접 보고 판단해야 하는 법이다. (온라인에는 그저 까고 싶어서 까는 이들이 적지 않다.) <리얼>의 단면들을 보면 반드시 망작으로 규정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어, 그렇게까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큼의 참혹한 결과물은 아니다. 연출이 처참해서 그렇지 김수현과 최진리를 포함한 주, 조연 배우들의 연기도 구멍은 없는 편이다.


그녀의 연기도 꽤 괜찮은 편이다. 다만 이 영화가 '송유화'의 캐릭터를 만들고자 하는 의욕과 능력이 없을 뿐이다.

단면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서술한 이유는 단면만 그렇기 때문이다. 과장 좀 보태면 1분짜리 단편 영화 137개를 본 기분이다. 몇몇 신들에서 표현된 액션이나 프레임 설정 자체는 곳곳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하는데, 정작 하나의 작품으로 헤아리자니 줄기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존재'에 대한 유명 심리학자의 경구로 시작해 뚜렷한 주제의식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관객에게 납득시키려는 의지와 능력 없이 의욕만 과다하다.


이 장면에서조차 껌을 씹고 있었어도 자연스러울 정도(137분 짜리 껌 광고랄까.)


세 개의 챕터 - 탄생, 대결, 리얼 - 구분 역시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각 장의 시작과 끝 모두에 타이틀을 넣어주는 행위는 의도가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뭔가 대단한 걸 하고 있다는) 과시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거의 모든 공간적 배경은 실내외를 막론하고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정도로 비현실적이냐면, 워쇼스키 자매의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 속 '네오 서울'이 <리얼>의 서울보다 훨씬 더 디테일과 현실적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다.) 영화의 결말까지 확인한 입장에서야 '수트 장태영'(김수현)이든 '뿔태 장태영'(김수현)이든 일종의 의식의 흐름을 초현실적으로 넘나드는 인물의 시점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영화가 신인 감독이든 기성 감독이든 누군가의 뚜렷한 아이디어로 시작해 일정하고 상업영화적인 제작 과정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다. 그러나 말하기 없는 보여주기로 일관한 <리얼>은 과시와 도취로 점철된 연출과 후반 작업, 그리고 낭비에 가까운 자극이 총체적 난국으로 향해 관객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준다. 적어도 40~50분 정도는 통째로 잘라내도 내러티브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다. <007 스카이폴>(2012)을 꿈꾼 오프닝과 <매트릭스>(1999)를 꿈꾼 클로징 사이에 사실상 '장태영' 외에는 제대로 생기를 발휘하는 캐릭터가 없고 인물과 사건을 극단적으로 낭비하는 이 영화를 보며 감상은 몇 가지로 정리할 만하다.



1) 어쩌면 <리얼>은 존재 자체가 맥거핀이거나 메타포일 것이다. 2) 2100년 경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아마도 느낌이 다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3) 김수현이 아니었다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물론 결과물 자체가 꽤나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제작과 투자에도 그의 출연이 상당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4) 외화 중에서도 동시기의 상업영화적 문법을 거스르는 영화들은 많다. 그러나 그들은 최소한 명확한 철학과 소신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리얼>에는 그게 정말 없다는 이야기다. 5) 영화는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미지만 가지고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 3/10점.)



<리얼>(2016), 이사랑

2017년 6월 28일 개봉, 137분, 청소년 관람불가.


출연: 김수현, 이성민, 최진리, 성동일, 조우진, 김홍파, 정인겸, 한지은, 최권, 김선아 등.


제작: 코브픽쳐스

배급: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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