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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와 이 세상
by 김동진 Jul 11. 2017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

<택시운전사>(2016), 장훈

영화 속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 때는 인상적인 순간보다 일상적인 순간의 경우가 더 많다. 이를테면 이번 주 재개봉하는 <다크 나이트>(2008)의 '조커'(히스 레저가)가 '레이첼'(매기 질렌할)에게 칼을 들이대며 위협할 때보다는 <택시운전사>의 '만섭'(송강호)이 순천의 한 식당에서 잔치국수를 욱여넣을 때가 그렇다. 전자의 완벽하고 서늘한 캐릭터도 물론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만 삶의 어디에나 있을 만한 순간, 즉 영화적이지 않은 순간을 드라마로 만드는 모습을 관객에게 선사하는 배우는 귀하다. 격동의 시대 속에 그와 동떨어진 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는 생활밀착형 캐릭터는 흔하디 흔하지만 누가 연기하냐에 따라서 관객에게 주는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만섭'은, 아니 송강호는, 검열되어 실제와 다르게 나온 신문기사를 보며 분개하지 않고 조작된 소문을 사실로 믿는 지역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식당 주인이 내온 떡에 "맛있네요"라며 화답할 때 자신의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분출하지 않고, 터질 듯 말 듯 한 비통함을 애둘러 드러내는 것이다. 바로 그 대목에서 영화는 다시 광주로 향한다.


<택시운전사>는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명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날을 기억하자'는 식의 메시지에 힘쓰는 영화도 당연히 아니다. 시대상보다 인물상에 주안점을 둔 선택은 그래서 탁월하다. 자국민이지만 광주에 가기 전까지는 소시민적 삶을 보내고 있던 '만섭'과, 외국인이지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던 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를 감행한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캐릭터가 대비되는 것 역시 영화의 성취에 많은 공헌을 한다.



인물의 시점과 감정 위주의 흐름이지만 스케일에도 결코 소홀하지는 않다. 금남로의 현장을 새의 눈으로 조망하던 <택시운전사>는 기자와 운전사의 시선에서 아스팔트 바로 위로 곧장 뛰어든다. 비교적 초반부는 그래서 전개가 빠르지 않고 전반적으로는 인물 관계도 평범하다고 할 수 있으며, 배경음악은 조금만 절제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각자의 영어와 한국어에 서툰 두 사람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황에 유머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가운데 점차 '만섭'(김사복)과 '힌츠페터'는 서로의 상황과 심경을 헤아리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의 '바론 본 스트러커'나 <작전명 발키리>(2008)의 예비군 사령관 '에른스트 레머' 소령과 같이 주로 카리스마 짙은 캐릭터로 친숙한 토마스 크레취만이 정의감과 인간미를 갖춘 외신기자 역을 탁월하게 소화한 것은 이처럼 영화의 시점과 화법 면에서 안정감을 갖춘 좋은 연출과 각본에서 그 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는 '광주'에 그 자체로 비장한 상징성과 역사성을 부여하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관객을 스크린 너머의 37년 전으로 잡아끈다. 택시기사와 손님의 관계를 주축으로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작중 여러 차례의 대사를 통해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 감흥을 전한다. 자신이 뜻한 바를 빠짐없이 성취하는 영화도 그렇다. (★ 8/10점.)



<택시운전사>(2016), 장훈

2017년 8월 2일 개봉, 137분, 15세 관람가.


출연: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류준열, 정진영, 박혁권, 최귀화, 엄태구, 전혜진, 고창석 등.


제작: 더램프(주)

배급: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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