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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Aug 19. 2017

귀국 전날, 뉴욕에서 또 다른 희망을 발견했다.

뉴욕이라니, 동진아

3월 16일 목요일


집 안 계단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주방에서 작게 들리는 라디오 소리 같은 것들에 익숙해졌고, 시차로 인한 고생이나 의식주의 불편함 같은 것도 겪지 않았다. 주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일정상 Shelley와의 많은 교류를 매일같이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내 집처럼 편안한 여정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녀 덕분이었다. 그녀가 추천해준 집 앞 카페에서 먹는 치킨 샌드위치는 황홀했고, 오래되고 깨끗하지 않은 지하철마저 정감 있었다. 길을 가면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건네는 눈인사나 가벼운 인사말 같은 것들이 좋았고, 영화에서나 보던 색색의 계단식 벽돌집들을 바라보는 내내 현실이 아닌 것처럼 뭉클했다.


맨해튼의 끝을 모르는 빌딩숲과 깨끗한 하늘, 때로는 신호에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의 모습과, 한국보다 훨씬 저렴하고 다양한 커피와 간식을 즐길 수 있었던 스타벅스, 지금껏 가본 서점 중 최상위권에 들어갈 스트랜드 서점, 한국과 별 다를 바 없었던 맥도날드, 아기자기하면서 예뻤던 헨리 벤델 백화점, (곧 오픈하겠지만)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며 외쳤던, 고객 응대와 제품 구색에 있어 완벽 그 자체의 애플 스토어, 위치를 자세히 몰라도 주소만 알고 있으면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편리하게 정비된 도시.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것을 고루 헤아리다가 나는 매일 여기가 더욱 좋아졌다. 돌아갈 곳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에 대한 자각은 마지막 날의 여정을 마지막답게 장식해주었다. 모든 여정에는 목적지는 없어도 좋으나 돌아갈 방향은 있어야 할 것이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비행거리 1만 3천 km의 뉴욕은 낭만과 문화가 사람의 일상에 스며 있었으며, 도시 안의 모든 것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어우러지는 일체감이 있는 곳이었다.


많은 곳들을 그저 방문만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관광객처럼 사진만 찍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단지 시민의 한 사람처럼 천천히 머물렀고, 잠시 코트 깃을 움켜쥐고 찬바람을 가만히 서서 얼굴로 맞았으며, 식사는 셀프 서비스인 곳을 최대한 피했다. 맨해튼 안에서는 항상 걸어다녔다.


예상대로 좋았고, 생각 이상으로 아름다웠으며, 24시간 생생했다. 감각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신기해하거나 새롭게 여길 줄 알았고 시선을 좀 더 오래 머물 줄 알았으며, 또 생동할 줄 알았던 일주일이었다.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다면 황홀한 경험을 더 많이 했겠지만 분명 방향감각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시간이 있었고 그만큼만을 보냈기에 이곳은 최고의 여행지이자 삶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어디서든 나의 길을 지켜낼 것이라는 희망을 발견했다. 그 기억을 남기고 담은 채 나는 서울로 복귀할 것이다. 거기에는 당신이 있고, 알을 한껍질 깨고 나온 내가 있으며, 내가 살아갈 몸과 마음의 터전이 있다.


낯섦에는 대체로 호기심과 함께 두려움이 공존하기 마련인데, 이제 내게 저곳은 더이상 미지의 공간만이 아니게 되었으므로 뉴욕이라는 곳을 떠올릴 때는 오로지 경험과 설렘만이 남게 될 것이다. 무언가 대단하고 압도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그런 것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영화 역사상 가장 빈번하게 공간적 배경으로 다뤄진, 전 세계의 문화가 만나는, 그 역동성 자체를 동경하며 갔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단지 사랑스러운 것들의 가치 뿐 아니라,


이땅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희망들을 발견했다. HOPE는 여기 있는데 LOVE는 대체 어딨는 거냐며 사거리가 떠나갈 정도로 왁자지껄 웃으며 셀카를 찍던 관광객 일행이 주는 에너지에서, 지하철역 안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악사의 표정에서, 맨해튼 한가운데에서 내게 길을 물었던 어느 시민의 정중하면서도 인간적인 모습에서, 언제고 또 찾아오라는 Shelley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JFK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건넸던 기사의 억양에서, 인천공항에서 나를 맞아준 당신의 온기에서, 이 세상 저편에 내 세상이 하나 만들어졌다는 체감에서, 그래도 여기가 내가 현재 있는 곳이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말이다.


서울을 여행하듯 살기는 어렵겠지만, 낯선 땅에서의 일주일처럼 나는 어디서든 잘 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구름 너머 희망을 보게 되었다. 뉴욕의 하늘은 매일이 깨끗했다.


귀국 전날 오전, 맨해튼의 어느 스타벅스
월스트리트에 있는 Fearless Girl 동상, 지금도 서 있으려나.
9/11 테러 희생자 중 생일인 사람에게는 꽃이 꽂혀 있다.
9/11 메모리얼 -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
맨해튼의 하늘은 깨끗했다.
타임스스퀘어에 있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CGV 쯤 되는 멀티플렉스인 AMC 극장. (정작 시간표가 안 맞아 영화는 Regal 극장에서 봤다.)
귀국 전날이 <미녀와 야수> 프리뷰 이벤트 날이었다. Regal 극장에서 'RX3D'로 영화를 봤다. 티켓값은 33.45달러. (일반 2D 상영이 13달러 정도 한다.)
폭설이 내린 날 집 안에서 본 바깥. 지극히 브루클린 다운 곳이었다.
폭설이 내렸던 날,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맞이한 브런치. 흔한 치킨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이 그렇게 맛있었다. @Qathra Cafe
5번가 인근에 있는 블루밍데일 백화점 앞에서의 밤
맨해튼 중심가에 설치된 'Hope' 조형물
맨해튼에 온 첫 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콜럼버스 서클에 있는 타임 워너 센터. 타임 워너 그룹의 본사 건물이기도 하며, 지상 일부층과 지하층에는 쇼핑몰이 있다.
맨해튼에서의 마지막 밤. 힐튼 호텔 앞, 신호등을 가운데 놓고 찍었다.
휘황찬란한 타임스스퀘어 거리의 전광판
5번가 애플스토어
타임스스퀘어의 디즈니 샵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블루보틀 커피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하우스 오브 스몰 원더'
덤보에서의 늦은 오후
브루클린 하면 딱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인 거기. 덤보
플랫부시 애비뉴, 숙소 근처
숙소의 오래된 계단
뉴욕행 비행기 안에서
숙소 앞. 뉴욕에 첫 발을 딛은 순간이었다. 여전히 이곳의 주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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