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빙 MR. 뱅크스>(2013), 존 리 핸콕
'P.L. 트래버스'의 [메리 포핀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세이빙 MR. 뱅크스'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메리 포핀스]를 몰라도 좋다. '월트 디즈니'(톰 행크스)가 [메리 포핀스]를 영화화하기 위해 원작자 'P.L. 트래버스'(엠마 톰슨)를 설득한 지 2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시선은 '트래버스'가 왜 그토록 <메리 포핀스>(1964)의 세부사항 하나하나에 집착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캐릭터를 단계적 서사의 과정을 밟아 구축하지 않는다. '트래버스'가 어찌하여 [메리 포핀스]를 쓰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유추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메리 포핀스>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통해 우회적으로 작품과 작가 사이의 관계에 대해 관객이 되짚을 수 있게 만든다.
<세이빙 MR. 뱅크스> 속 두 '피터팬'의 만남은 단지 원작자와 제작자의 그것만은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와 같지 않은 타인에게서 삶의 공통분모를 헤아릴 수 있는 비결은 명백히도 그 관계 자체에 있다. [메리 포핀스]를 내놓고도 오랜 시간 '트래버스'는 아버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늘 불안해 했고, 두려워 했다. 타인에게 차갑고 방어적으로 대하는 것 역시 그녀의 성품이라기보단 스스로 아버지가 남긴 삶의 무게를 감내하기를 택한 결과일 것이다. 작품은 작가를 따르지만 작가가 작품을 따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무엇에서 비롯되는가. 삶을 뒤흔들 사건과 경험이 훗날 여러 형태로 축적되고 또 체화되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되살아난다. '월트 디즈니'가 [메리 포핀스]를 영화화하고자 했던 것은 딸과의 약속 때문이었으며, 작품 속 '뱅크스'로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디즈니'라는 성 대신 '월트'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으며, 반대로 '헬렌 고프'는 본명 대신 아버지의 이름을 따 'Mrs. 트래버스'로 불리길 원했다. 둘은 서로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마침내 헤아렸고, 끝내 자신을 채찍질하고 책망하기 보다 가상의 이야기를 통해 '뱅크스'를 구원해 주려 했다.
여기서의 이야기의 역할은 단순히 허황된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가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며, 이 세상에 가능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걸 끊임없이 심어주는 것에 있다. '실제가 아니'라고 해서 그것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삶에 지쳐 있을 뿐"이라며 아버지를 떠올린다. '엘리' 이모 앞에서 "다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라며 책망한 것은 결국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소녀는 아버지를 잃은 것이 자신 탓인 것만 같았다. 꽁꽁 닫혀 있던 그녀의 마음에 '월트 디즈니'는 공감과 진심을 전했다. 그러자 [메리 포핀스]의 '메리 포핀스'는 책 밖으로 나와 우산을 펴고 마법의 가방을 꺼냈다. 슬픈 동화를 끝마친 자리에서, 희망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어리고 연약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이만하면 됐다"며 다독일 수 있는, 용서라는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동화나 애니메이션이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소녀는 아버지를 끔찍이도 사랑했다, 어머니가 "넌 아빠를 더 사랑하는구나"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아버지의 나약하게 무너지는 모습은 소녀에게 상처나 충격으로 자리 잡았다고 하기보다 애증과 회한으로 남았다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소녀는 슬퍼했고, 소녀는 아파했으며 또 후회했다. 타인에게 제대로 속내를 털어놓는 대신 스스로를 채찍질 했고, 아버지를 위한 동화를 만들었다. 세상 모든 이야기의 이면에는 그것을 만들어야만 했던 작가이자 개인의 고백이 담겨 있다. (★ 8/10점.)
<세이빙 MR. 뱅크스(Saving Mr. Banks, 2013)>, 존 리 핸콕
2014년 4월 3일 (국내) 개봉, 125분 12세 관람가.
출연: 엠마 톰슨, 톰 행크스, 콜린 파렐, 애니 로즈 버클리, 폴 지아마티, 제이슨 슈워츠맨, 비제이 노박, 루스 윌슨, 레이첼 그리피스, 브래들리 휘트포드 등.
수입/배급: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북티크 '무비톡클럽' 8월 두 번째 상영작.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