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2015), 이준익
<동주>는 다른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처럼 인물을 바라보는 사려 깊고도 섬세한 시선이 시종 돋보이는 영화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좋은 배우들의 협업과 더불어 인물의 말투나 행동거지 하나까지 굉장히 세부적으로 재현해낸다. 그런 가운데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불필요하게 민족적 의식을 고취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대신 '윤동주'(강하늘)라는 인물이 왜 그토록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는지, 그것에만 집중하면서 동시에 그와 '송몽규'(박정민)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를 생생히 되살린다. 컬러가 아닌 흑백 영화를 만들고자 하면 색상 표현에 있어 제약을 받기 때문에 인물의 동선이나 소품 배치 등 디테일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제작진은 기꺼이 그걸 감수한 것이다. 게다가 흑백이지만 이것이 감상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약한 인간이 동시대를 바라보며 느낀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실은 '윤동주'라는 인물의 삶 자체가 드라마적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감독의 후속작인 <박열>에 비하면 훨씬 단조롭고 평이로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데, 체포된 뒤 형사와의 심문 장면과 과거의 행적을 교차시키고 또 '동주'의 내레이션을 통해 시를 들려줌으로써 드라마적 한계를 잘 극복했다. 게다가 '동주'의 시는 영화의 감정적으로 중요한 대목마다 배치돼 정서를 고양하는 데에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 한데,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지만 정작 그의 삶에 대해서는 과연 우리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주>는 바로 그 '앎'에 관한 영화인 것 같다. 마치 '정지용'(문성근)의 입을 통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듯 무언가를 아는 과정에 대해서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몽규'와 '동주'의 대비는 어느 누군가를 부각하거나 단순히 비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바라보는 뚜렷한 의식과 소명을 가지고 주어진 여건 하에서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사람들의 훌륭한 초상이 된다. 결과를 담는 영화가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영화인 것이다.
흑백보다 어두운 시대를 살다가 쓸쓸히 외국에서 숨을 거둔 시인의 삶과, 그가 바라본 풍경은 <동주>를 통해 담담히 되살아나 71년 후의 관객들에게도 또렷한 이미지를 남긴다. 생전에 시집을 발간하지도 못한 그가 오늘날 '시인'으로 현대사에 크게 알려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럼에도 시를 썼다는 것 자체에 있을 것이다. 글과 문학이 그 자체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라기보다 누군가 한 사람의 마음속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면 그 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 '동주'와 '몽규'가 수업을 듣고 있는 교실 칠판에는 스피노자의 "의지와 지성은 동일한 것이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감독과 제작진이 두 사람을 오늘날로 다시 불러온 이유는 그들이 그 의지와 지성을 모두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은 공교롭게도 '동주'의 표정이 아니라 '몽규'의 얼굴에서 시작된다. '동주'의 관념과 '몽규'의 행동은 다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동주'가 시를 사랑했듯 '몽규'는 세상을 사랑했고 두 사람의 부끄러움과 괴로움은 세기가 바뀐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충분하게 가닿았으니까. <동주>의 개봉일이 윤동주 시인이 사망한 2월 16일의 다음 날인 2월 17일이었다는 건 사소하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가고자 하는 길이 있는 한 삶은 끝내 계속될 것이다. (★ 8/10점.)
<동주>(2015), 이준익
2016년 2월 17일 개봉, 110분, 12세 관람가.
출연: 강하늘, 박정민, 김인우, 최홍일, 김정팔, 최희서, 신윤주 등.
제작: (주)루스이소니도스
배급: 메가박스(주)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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