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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Oct 20. 2017

그의 삶에서는 청춘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아이 앰 히스 레저>(2017)

고백하자면, 히스 레저의 출연작 중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고 할 수 있는 영화는 딱 두 편이다.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2005)과 <다크 나이트>(2008). 그러니 나는 히스 레저의 연기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렵고, 그의 삶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죽은 후 온갖 루머들이 쏟아졌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에 너무 심취해서 빠져나오지 못하여 자살을 했다는 등.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거나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하기 좋아하니까. 연예인에 대해서는 특히 매우 그렇다. 어쩐지 나는 그런 일련의 루머들이 사실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열정이 느껴졌고, 그의 미소에서는 세상을 평정해버릴 것만 같은 선하고 강렬한 기운이 느껴졌다. 삶의 어떤 고난이나 고민과 시련들도 기꺼이 감내하고 이겨낼 것 같은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런 사람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본 영화 <본 투 비 블루>(2016)의 국내용 시놉시스에는 "그의 음악에서는 청춘의 냄새가 난다"(무라카미 하루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쳇 베이커'를 연기한 에단 호크는 청년 시절의 <죽은 시인의 사회><비포 선라이즈> 등을 거쳐 지금까지도 시대의 어떤 아이콘이 되어 있다. 히스 레저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21세기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상징과 같은 인물이 되어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영화는 물론 음악과 사람,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했던 사람. 그러나 세상이 미처 품어주지 못했던 사람. 그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의 테마는 자연스럽게 '청춘'일 수밖에 없다. 신기하게도 <아이 앰 히스 레저>는 히스 레저가 스스로 연출한 작품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의 삶이 남긴 궤적들을 차근차근 밟아간다. 초기작부터 <다크 나이트>와, 테리 길리엄 감독과 다시 만난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그와 함께 연기를 하거나 그의 연기를 지도하고 또 그의 일상을 함께했던 이들은 '히스 레저'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에 대한 것들이 녹아 들며 그의 이름이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그래서 나오미 왓츠, 이안, 미셸 윌리엄스, 멜 깁슨 등 이미 친숙한 이름들보다도 영화 속에서 더 기억에 남는 건 N. 포스터 존스, 크리스티나 카우치, 벤 하퍼, 맷 아마토, 그레이스 우드루페 등 미처 알지 못했던 다른 이름들이다. <아이 앰 히스 레저> 속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과거형이지만 이 영화는 그의 죽음에 관심을 갖는 영화가 아니다. 필모그래피와 삶을 정리하거나 요약하는 전기 혹은 평전의 성격도 아니다. 순전히 히스 레저가 어떤 꿈을 꾸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그것만으로 이 영화는 꽉 차 있다. 그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만든 다큐멘터리이지만, 그래서 한없이 감성적이고 배우의 팬이라면 눈물을 지을 수밖에 없어지지만,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마저 훌륭하게 수행한다. 가족과 지인, 영화계의 수많은 인사들의 인터뷰가 바로 그런 기능을 한다. 이를테면 출연작 속 그의 연기를 보여주고 그 영화를 함께 작업했던 배우의 인터뷰가 이어지는 등 단조로워 보이는 구성을 보완하는 건 히스 레저가 직접 찍은 무수한 영상들이다. 2017년에 만들어져 개봉한 영화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상당수의 컷들이 특유의 자글거림과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건 십수 년 전부터 그가 찍고 담아온 기록들이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배우이자 감독이자 형제였던, 잠시라도 안주하지 않았던 청년의 이야기에 애정 어린 시선이 만나자,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뛰어넘어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 8/10점.)



<아이 앰 히스 레저>(I Am Heath Ledger, 2017), 아드리안 부이텐후이스, 데릭 머레이

2017년 10월 19일 (국내) 개봉, 91분, 12세 관람가.


출연: 히스 레저, 나오미 왓츠, 이안, 벤 멘델슨, 디몬 하운수, 에밀 허쉬, 캐서린 하드윅 등.


수입/배급: 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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