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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Nov 18. 2017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대한 빛나도록 아름다운 헤아림

<빛나는>(2017), 가와세 나오미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얼마간 앞뒀을 무렵, 어느 GV 행사를 마치고 모 기자님과 비슷한 방향이어서 함께 지하철을 탔다. 자연스레 영화제 출품작 중 기대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그때 내게 기억된, 칸 국제영화제 최연소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을 만큼의 명성(<수자쿠>(1997))에 비해 내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니었던 한 감독이 있었다. 가와세 나오미. 알고 보니 극장에서 보려다 놓친 <앙: 단팥 인생 이야기>(2015)를 연출했고,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의 일본 프로덕션 부문 제작을 총괄했다. 영화제를 찾아도 일 때문이지 정작 상영작에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던 내게 그 짧은 대화는 꽤 유의미하게 각인되었다.


<빛나는>은 생각 이상으로 '영화를 보는 경험' 자체에 관한 영화다. 배리어프리 영화의 음성 해설을 만드는 작가 '미사코'(미사키 아야메)와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의 이야기는 소재를 훌쩍 뛰어넘는다. 여기서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시각과 청각을 함께 사용하는 매체인 영화는 그렇기에 시각이나 청각에 불편이 있는 이들에게 아주 많은 제약이 있다. '미사코'가 참여하는 영화는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해설을 추가한 영화다.


영화 <빛나는> 스틸컷


<빛나는>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대목은 음성 해설을 만드는 모임에 시각장애인들이 참여해 해설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대략 이런 이야길 한다. "영화를 본다는 건 거대한 세계에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하는 거예요." 이 대사를 곰곰이 돌아보면, 감각에 제약이 있는 이들을 위해 시청각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이가 해설을 가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질문 하나를 던질 수밖에 없다. 장면 자체와, 그 장면에 대한 해설은 동일한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 '나카모리'가 불쑥 끼어든다. "당신의 해설은 방해 밖에 안 돼요." 유망한 사진작가였으나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된 그의 이야기는 '미사코'를 각성하게 한다. 여기서 '나카모리'의 사연과 '미사코'의 가족에 얽힌 이야기가 조금씩 개입하면서 <빛나는>의 드라마가 결국 닿는 곳은 석양이 내리는 어느 해변이다. 다시 생각해도 <빛나는>은 인공의 조명과 자극들로 넘쳐나는 세상에서 모처럼 만나는 자연적인 영화였는데, 이는 연출과 각본 자체도 물론이지만 <빛나는>의 촬영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에 거의 확신을 갖게 만든다.


영화 <빛나는> 스틸컷


좀 더 이야기하자면, '미사코'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던 <빛나는>은 '나카모리'의 시력이 점차 악화돼 가는 과정을 영화의 촬영 방식에서도 고스란히 반영함으로써 관객이 느끼는 체험도를 강화한다. (상당히 클로즈업 된 쇼트가 많기 때문에 다소 피로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점점 볼 수 없게 되어가는 '나카모리'의 모습에 덩달아 아찔해질 지경. 아름다움을 본다는 건 그것의 무엇을 보기 때문에 그렇게 본다고 하는 것일까. 어떤 장면이 끝나도 그 잔상은 남는다. 이미지가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 초반부 해설에 대해 질문을 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영화 속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비장애인'인 '나'는 오히려 스스로가 감각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배리어 프리'라는 말에는 '장벽'이란 의미의 단어가 포함돼 있지만 청각에만 의지한 채 "거대한 세계를 경험한다"라는 건 정작 영화라는 세계에 '시청각을 모두 감각하는 것'보다 더욱 온전하고 깊이 빠져드는 행위다. '미사코'의 음성 해설은 주관이 개입되면 시각장애인의 감상과 몰입을 방해하게 되고, 반대로 관객의 상상력에 의지한 열린 해설은 정보를 누락시킨다. 그녀가 자신의 해설에 있어 스스로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데에는 비장애인이었으나 점차 시각장애인이 되어가는 '나카모리'라는 인물의 사연과 그것에 공감하는 과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화 <빛나는> 스틸컷


이제 <빛나는>이라는 제목을 다시 생각할 차례다. 눈을 감아도 그곳에 빛이 있다는 것은 얼굴에 전해져 오는 빛의 에너지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 사진작가가 시력을 잃게 된다는 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이다. 무기력하게 지내던 '나카모리'는 '미사코'와의 만남을 계기로 보이진 않지만 또 다른 빛을 찾게 된다. (두 사람의 육교에서의 대화는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아직은 초보 작가였던 '미사코'는 '나카모리'의 뼈 있는 일침을 통해 점차 자신이 바라보는 빛(석양)과 다른 사람의 그것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게 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다소 기계적으로 거리의 사람들에 대해 독백하는 '미사코'의 모습을 대비해 보자.)


사적으로 <빛나는>의 가장 빛나는 두 개의 신을 꼽자면 하나는, '나카모리'의 전화로 온 다른 사람들의 음성 메시지를 읽어주는 것과 달리 '미사코'의 문자 메시지 내용은 (비록 그 직전 신을 통해 내용이 제시되지만) 들려주지 않는다는 것. 적절한 순간에 여백을 둘 줄 아는 영화다. 다른 하나는 음성 해설이 완성된 영화를 상영할 때 관객석의 반응을 비추는 신이다. 통상적인 영화에서였다면 영화를 보면서 눈물짓는 사람들의 표정 같은 건 감정을 조성하기 위해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빛나는>에서의 그것은 전혀 다른 경지에 이른다. 관객석을 바라보는 영화의 이 장면에서 나는 그들이 보고 있는 영화 속 장면을 느낀다. 그것은 눈을 감은 채 영화의 음성만을 듣는 행위와 같은 것이었다. (키키 키린이라는 대배우의 존재감은 여기서 목소리 출연만으로 그 진가를 발한다.)


영화 <빛나는> 스틸컷


<빛나는>이 굳이 무슨 내용인지 언뜻 파악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 (음성 해설의 대상이 되는) 영화 속 장면들을 풀 스크린으로 여러 차례 보여주는 것은 불필요해 보이지만 전적으로 관객을 위한 것이다. '(한글 자막이 필요치 않은 일본 관객이라면 더욱) 한 번쯤 눈을 감고 영상 대신 음성에만 귀와 마음을 기울여 보시길'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엔드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내게 눈에 들어온 짤막한 문장 하나, '자막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그렇게 사람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다. 어느 한 문장, 어느 한 쇼트, 그런 것만으로도 말이다. <빛나는>은 영화의 감각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인 동시에,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힘을 에둘러 예찬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분명 올해 하반기의 강렬한 영화적 체험의 하나다. (★ 9/10점.)



<빛나는> 국내 메인 포스터

<빛나는>(光, Hikari, 2017), 가와세 나오미

2017년 11월 23일 (국내) 개봉, 102분, 12세 관람가.


출연: 미사키 아야메, 나가세 마사토시, 후지 타츠야, 코이치 만타로, 시라카와 카즈코, (목소리) 키키 키린 등.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주)


<빛나는> 국내 티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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