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2017), 양우석
종종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질문하는 영화'와 '대답하는 영화'로 구분 지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내 선호는 전자다. 그런데 <강철비>(2017)는 표면적으로는 후자인데도, 139분 내내 대답만 하는 것 같은데도 그것이 무슨 질문에서 비롯된 것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상황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어떻게'와 그것의 '왜'를 놓치지 않는 욕심과, 가상임에도 현실처럼 느껴지게 하는 탄탄함, 그 안에 관객을 던져 넣은 뒤 상업영화의 화법 아래에 뜻한 바를 펼친다.
한반도의 오래도록 첨예한 남북문제를 소재로 다룬다는 것보다 <강철비>의 더 뚜렷한 특징은 두 '철우' 사이의 관계와 거리감의 변화가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이끈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된 공을 세우는 신들은 단지 함께 식사를 하거나 차 안에서 농담을 하는 지점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나오는 유머들은 단지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가 스스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한다. 나아가 '삐딱하게'나 'Missing You' 같은 노래도 단지 삽입곡 이상의 소품으로 기능한다. 게다가 거의 한 명도 빼놓지 않고 훌륭하게 제 몫을 하는 조연들 덕에 <강철비>가 구축한 선전포고 직전의 사회는 고스란히 극장 밖 현재를 스크린 안으로 소환한다.
이 잘 통제되어 있고 사족도 거의 없는 영화에 대해 이념적 판단을 하는 것은 관객 개인의 상상에 맡길 따름이나, <강철비>는 그것을 스스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며 그 여부 자체가 특별히 유의미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영화의 출발에는 아마도 '곁에 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던' 북한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을 상상해보자는 오랜 결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 오랜 단단함으로 <강철비>는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한다. 액션이나 배우들의 연기, 배역의 이름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정도다.
덧붙이자면 영화가 던지려고 하지 않는, 생략된 질문이 대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유추된다는 점을 다시 짚어야겠다. ''우리'는 왜 갈라선 국가가 되었는가?', '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가능한가?', '우리의 삶에 이념과 사상이 어디까지 필요한가?'. <강철비>가 스스로 질문하지 않고도 도출해 낸 대답들은 '남측 철우'(곽도원)과 '북측 철우'(정우성)가 아니라 '아들 하나 딸 하나 둔 철우'와 '여편네와 에미나이 하나 딸린 철우'에게서 나온다. 말하자면 "지디 모르면 간첩" 이야기라든지 '부대찌개', '잔치국수' 같은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극도의 비일상을 다루는 영화에서 두 '동무'의 모습은 정작 친근하고 생활 밀착형의 그것이다. 가족을 위해, 삶을 위해, 같은 것들이 둘의 행동을 더 중히 좌우한다. 서로를 모르던 상태에서의 첫 대면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폭력을 쓰지 않는다.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그들은 진심이다.
영화 속 남북 관계에 위기가 고조될 무렵 CIA 지부장이 담배를 피우며 '철우'에게 말한다. "폭력이 일상화된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강철비>는 우리의 체감보다도 훨씬 가까이에 있는 어떤 가상의 시나리오를 펼쳐든 뒤, 호흡을 가다듬다 불쑥 내뱉는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감독의 뚝심과 제작진과 배우들이 각자 수행한 저마다의 몫이 한국의 대형 상업영화에서 쉽사리 나오기 힘든 '하나'의 결과물을 내보인다. <변호인>(2013)을 보고 "목소리만 크지 않고 무슨 내용인지 알아들을 수 있으며 듣는 사람에게 파고드는 전달력도 갖췄다"라고 적은 바가 있는데, <강철비>는 거기서 한 발 더 딛는다. 우직하고 든든하다. (★ 8/10점.)
<강철비>(Steel Rain, 2017), 양우석
2017년 12월 14일 개봉, 139분, 15세 관람가.
출연: 곽도원, 정우성, 김갑수, 김의성, 이경영, 조우진, 정원중, 장현성, 김명곤, 박은혜, 박선영, 안미나, 김지호, 원진아, 이재용 등.
제공/제작: 와이웍스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 (주)모팩
공동제공/배급: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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