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Jan 05. 2018

가장 어두웠던 시간, 그러나 그는 희망을 보았다

<다키스트 아워>(2017), 조 라이트

드라마 [더 크라운]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1의 4화 '신의 선택'에는 '그레이트 스모그'라는 이름이 붙었던 1952년 런던의 스모그 현상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공식 가시거리가 1미터에 불과할 정도의 심각한 안개와 매연으로 도시가 마비되었고, 처칠은 곧 지나갈 자연 현상 정도로 가벼이 여겨 정적들의 질타를 받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때 처칠은 한 비서로부터 자신이 젊은 날에 용기와 신념에 관하여 썼던 책의 내용에 대해 상기하게 되고, 당시 정치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시내의 병원을 찾아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던 시민들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고 연설을 통해 정세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다키스트 아워>(2017)의 배경은 그로부터 12년 전이다. 프랑스가 독일에 거의 점령된 암울한 상황, 처칠은 정적들로부터 독일과 평화 협정을 맺을 것을 요구받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영화의 내용은 시점상 <덩케르크>(2017)의 직전이기도 하다. '다이나모 작전'이 개시되기까지 영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과정을 심플하되 세심한 화법으로 재구성한다.


<다키스트 아워> 스틸컷

처칠의 용기는 정치적 계산이나 권력 문제라기보다 바깥의 시민들의 모습에서 깨달은 희망에서 비롯된다. 초반부와 후반부에 각각 나오는 두 장면, 총리 관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바깥의 시민들을 바라보는 처칠의 표정에 주목하게 된다. 앞의 장면에서는 "전시 답지 않다"라고 말하고 지나간다. 뒤의 장면에서는 차에서 내려 웨스트민스터로 향하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에서 확인한 시민들의 모습은 독일에 최후까지 맞서 싸울 것을 선언하는 그의 의회에서의 유명한 연설의 기초가 된다. 처칠이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에 영화가 같이 시선을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고. 우리의 앞에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앞에는 투쟁과 고통으로 점철될 수많은 세월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와 같이 답변하겠습니다. 육, 해, 공을 가리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힘을 가지고, 이제껏 인류가 저질러 온 수많은 범죄 목록 속에서도 유례없었던 극악무도한 폭정에 맞써 싸우는 것이라고. 그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한 단어로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승리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어떠한 공포가 닥쳐와도, 갈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승리 없이는 생존도 없기 때문입니다."...

(윈스턴 처칠, 전시 총리 취임 직후 의회에서, 1940년 5월 13일)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바다와 대양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감과 힘을 길러 하늘에서 싸울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국을 지켜 낼 것입니다.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상륙지점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들판과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언덕에서 싸울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다이나모 작전 종료 직후 의회에서, 1940년 6월 4일)(출처: 구글)


<다키스트 아워> 스틸컷

제목인 '다키스트 아워'는 중서부 유럽이 독일에 거의 넘어간 상황을 지칭하는 말인 동시에, 처칠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시에 총리가 된 그는 자신이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다키스트 아워>는 연설문의 단어 하나를 고심하는 그의 머뭇거림과 더듬거림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윈스턴 처칠'을 영웅화하려 애쓰지 않는다. 단지 비서부터 총리까지, 각자가 제 역할을 할 때 어떤 일이 마침내 일어날 수 있는지, 그 에너지만을 전할 뿐이다. 우리가 '우리'로서 쉽게 굴복하지 않고 어려움의 가능성에 기꺼이 도전하며 분투할 때 어두운 안갯속에서 빛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말하자면 <다키스트 아워>는 한시도 게리 올드만의 존재를 의식하기 어렵다.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어두운 새벽, 그 시간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처칠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용기와 믿음에 관한 영화다. 주요 영화제에서의 게리 올드만의 수상을 미리 기대해 본다. (★ 8/10점.)



<다키스트 아워> 국내 메인 포스터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7), 조 라이트

2018년 1월 17일 (국내) 개봉, 125분, 12세 관람가.


출연: 게리 올드만, 릴리 제임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벤 멘델슨, 스티븐 딜레인, 로널드 픽업 등.


수입/배급: UPI코리아


<다키스트 아워> 스틸컷
<다키스트 아워>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7.01.04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다키스트 아워> 메인 예고편: (링크)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죽음'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공간의 여정(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