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스토리>(2017), 데이빗 로워리
어느 날 갑자기, 정말 예고 없이 교통사고로 죽게 된 'C'(케이시 애플렉)는 병원 시체안치실에서 벌떡 일어난다. 물론 실제로 살아난 게 아니다. 흰 천을 뒤집어쓰고 병원 복도를 걸어 다니던 'C'는 마치 천국의 문이 열리듯 벽 너머의 빛을 보지만 그것을 따라가지 않는다. 빛은 닫히고, '고스트'(C)는 이 세상을 좀 더 돌아보기로 한다. '돌아보기로 했다'라기보다는 '떠날 수 없었다'라고 하는 게 좀 더 적합한 표현이겠다. 연인인 'M'(루니 마라)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 '고스트'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본다. 집 주인이 가져다준 파이를 먹고, 바닥에 누워 'C'의 음악을 듣고, 그러다 어디론가 길을 나서는 'M'을 '고스트'는 그저 지켜본다. 침대에 홀로 누운 'M'의 곁에서 그녀를 쓰다듬으려고도 하지만 '고스트'는 마치 <사랑과 영혼>(1990)의 '샘'(故패트릭 스웨이지)처럼 스스로의 '존재'를 애써 알리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머무른다.
<고스트 스토리>(2017)의 진짜 이야기는 'C'와 'M' 밖에 있다. '고스트'의 존재는 처음부터 있었으며, 'M'이 집을 떠나 이사를 가고 나서도 그대로다. 흔히 유령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고스트'는 어느 순간 'C'의 영혼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집 밖의 또 다른 고스트(들)와 무언의 대화를 하기 시작할 때면, '고스트'의 존재는 그 자체로 모순처럼 다가온다.
'죽음'이 '존재한다'라는 관념에 대해 생각한다. <고스트 스토리>의 화면비는 고전적인 1.33대 1인데, 요즘의 일반적인 극장 환경에서 관객은 계속해서 좌우의 검은 배경을 보게 된다. 비율의 차이로 인하여 영화에는 존재하지 않는, 다시 말해 '없는' 영역이다. 관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없는데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없지만 그 '없음'을 알 수 있게 되는 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흰 천을 쓴 '고스트'의 눈 부분이 뚫려 있어 텅 빈 것처럼 보이지만 그 두 개의 검은 구멍을 눈이라고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고스트'의 모습을 통해 보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안에서 살아 있는 인물이 단 한차례도 '고스트'의 몸을 통과하지 않고 그가 피아노를 깔고 앉아 소리를 내거나 식탁 위의 컵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위가 실제의 물리적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 역시 작품의 숨은 의도를 자의적으로 추측하게 한다. (참조: <사랑과 영혼>에서 '샘'은 중반 이전까지 물건을 만지거나 움직일 수 없다.)
*영화의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언급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스트'가 된 'C'가 'M'의 곁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가 이사 전 집안 어딘가에 놓아둔 메모를 찾고자 함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영화에서 직접 언급되거나 밝혀지지 않는다. 'M'이 이사를 가고 나서 집에 살게 된 다른 사람들에게 '고스트'가 하는 행동을 보면 그 까닭은 다르게 다가온다. '고스트'는 'M'과 자신의 추억이 깃든 집을 쉽게 떠날 수 없었고, 동시에 그 공간에 다른 사람들의 흔적이 쌓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사람들 역시 집을 떠난다. 다시 화면비와 죽음이라는 관념에 대해 생각하면, 영화의 화면은 좌우의 '검은색의 없음' 사이에 놓여 있다. 1) '고스트'는 'C'와 'M'이 살다 떠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떠난 이후에도 계속 남는다. 2) '고스트'가 된 'C'는 시간을 비선형적으로 넘나들 수 있는 미지의 초월적인 능력을 얻게 되었다.
'2)'의 경우는, 'C'가 자신이 죽은 후 이 세상을 떠나기 전, 'M'과의 추억들을 돌이키고 (영화의 플래시백에 해당되는 부분들이 'C' 자신의 회상이라고 가정) 그녀가 이사를 가기 전에 보물처럼 남긴 쪽지를 찾게 된다. 그러는 동안 얻게 되었을 어떤 힘으로 인해 인류의 과거의 모습들과 자신과 'M'이 떠난 후의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미래의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다. 그런데 '고스트'가 폐허가 된 집의 잔해 위에 남아 있는 지점에서 시점을 이동한 이후부터 펼쳐지는 일련의 장면들 - 고층 건물 옥상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신부터 초원의 죽은 소녀의 시신이 해골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신까지 - 을 돌이켜보면 '1)'의 생각에 사적으로 좀 더 무게를 실어보게 된다.
'1)'의 경우에는 'C'와 'M'이 아닌 '죽음' 자체가 <고스트 스토리>의 실질적 주인공이라는 나의 결론과 좀 더 부합한다. 말하자면 삶은 언제나 죽음의 사이에 있다. '유령의 집'에서 파티를 벌이는 사람들 중 (그들은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남자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훗날의 기억 혹은 기록을 위해 책을 쓰거나 음악을 짓는 등의 인류의 행위가 결국은 수십억 년 후 태양의 팽창으로 사라지게 될 지구의 운명 앞에서 얼마나 부질없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자손에게 무언가를 남긴들 그 자손도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잊지 않는다.
'무(無)'의 세계에 어느 순간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우주가 만들어지고 팽창과 확장을 거듭하다 또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기도 한다. 삶 이전에는 '삶의 부재'가 있었지만 삶의 이후에는 다시 '삶의 부재' 혹은 '죽음의 존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죽음이라는 관념 내지는 '고스트' 자체라면, 어느 시대인지 모를 초원의 어느 유목민 가족이든, 'C'와 'M' 커플이든, 어느 회의실의 사람들이든, 잠시 삶을 거쳐가는 짧은 존재들일 뿐이다. 'C'와 'M'이 이사를 와서 함께 살며 추억을 만들다 떠나는 그 집 역시 마치 죽음이 잠시 지어놓은 (언젠가 사라질) 집인 것이며, '고스트'라는 존재는 추상적이며 관념적이지만, 비록 우리가 실제로 보거나 느낄 수 없는 상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에서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일종의 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고스트 스토리>는 그렇게 몽롱한 영화다. (★ 8/10점.)
<고스트 스토리>(A Ghost Story, 2017), 데이빗 로워리
2017년 12월 28일 (국내) 개봉, 92분, 12세 관람가.
출연: 케이시 애플렉, 루니 마라 등.
수입: (주)더쿱
배급: (주)리틀빅픽처스
*이전 글: '죽음' 자체를 주인공으로 한, 공간의 여정(1)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