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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28. 2018

어쩌면 과거는 조금 다르게 쓰일 수 있을지도 몰라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버지가 애인이 생겨 가출을 하고 이듬해 어머니도 재혼을 해서 집을 떠난 후 14년, 남겨진 세 자매가 아버지와 애인 사이에 태어난 이복동생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살게 되는 이야기. 어떤 영화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경우가 있지만,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를 비롯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는 명백하게 그렇지 않은 경우다. 그의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누구'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와 '왜'다. 코다 가의 '사치'(아야세 하루카), '요시노'(나가사와 마사미), '치카'(카호) 세 자매와 함께 네 번째 식구가 된 '스즈'(히로세 스즈)는 새롭게 터전이 된 가마쿠라의 집, 학교, 마을, 그리고 바다를 거치며 성장한다.



여름에서 시작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계절을 돌아 다시 여름이 될 때까지, '네 자매'의 일상을 차분하고 섬세하게 관찰한다. 인물이 아닌 풍경을 다루듯 미디엄 쇼트에서 롱 쇼트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명암을 적극 활용한 촬영. 피아노와 현악기 위주이되 중요한 순간에는 인물에 귀 기울이게 하는 음악. 원작에 충실하되 배우를 돋보이게 하며 캐릭터 사이의 균형에 각별히 신경 쓴 각본. 그리고 무엇보다, 소박한 것들에서 인물 간의 관계와 작품 전체의 함의를 놓치지 않고 모두 아우르는 연출까지. 128분을 가득 채운 사람의 이야기는 공간을 주인공으로 만들며 그 안팎에서 안팎으로의 흐름에 주목한다.


방송 다큐멘터리로 먼저 스토리텔링을 시작한 감독답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연출자로서 작품의 모든 것에 빠짐없이 생각과 마음을 치열히 담는다. 그러니까 흔하고 비슷한 '가족 드라마'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를 눙치는 건 채색되어야 할 그림의 일부분에만 색을 입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계절과 세 번의 장례식 혹은 추도식 사이에는 단 한 번의 플래시백 없이도 상실과 상흔 이후의 현재만이 담겨 있는데, 자신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스즈'는 점차 그것이 상처가 아니라 각별한 보물로 새로이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로 인해 세 자매 역시 자신들을 떠났던 부모를 향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주목하는 건 '무엇이 가족을 가족일 수 있게 만드는가'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스즈'에서부터 어머니와 같은 날에 태어나 어머니가 떠난 후에도 자매와 집의 역사를 함께한 '매화나무', 그리고 바다고양이식당 주인만의 '전갱이 튀김'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딸에서 누군가의 언니이자 부모가 되는 것처럼 여기서의 가족은 혈연이라기보다 식구이며, 사소한 생활을 공유하며 서로를 채워주는 존재다. 즉, 시간의 흐름을 같이하거나 사라져버린 것들을 이어주는 이들의 공동체다. 영화 속 세 번의 상징적 죽음 중 세 번째를 마주하는 대상이 사실상 마을 구성원 전체라는 점에서,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제목은 시공간 자체가 실질적 주인공인 영화의 주제 의식을 탁월하게 반영한다.


자신의 저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작가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부자유를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체념적인 태도. 그리고 그런 부자유스러움을 재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감각. 이것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으로 보인다고 나 스스로는 분석한다."라고 다큐멘터리와 자신의 영화 세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걷는 듯 천천히](2015), 이영희 옮김, 문학동네, 34쪽 중에서) 이 영화의 히로세 스즈를 비롯, 그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인터뷰와 같은 경로를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이 많다. '배우'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의 모습들에서 최상의 캐릭터를 이끌어낼 줄 아는 것이다. 좋은 영화는 스스로 힘주거나 내세우지 않아도 자신의 '보편적 특수성'을 능히 관객에게 전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지나간 과거도 다른 공간, 다른 사람으로 인해 어쩌면 조금 달리 쓰일 수 있다는 성숙한 관찰의 기록이다. (★ 8/10점.)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2015),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5년 12월 17일 (국내) 개봉, 128분, 12세 관람가.


출연: 아야세 하루카, 나가사와 마사미, 카호, 히로세 스즈, 키키 키린, 카세 료, 스즈키 료헤이, 이케다 다카후미, 릴리 프랭키, 후부키 준 등.


수입/배급: 티캐스트


*북티크 논현점 무비톡클럽 열두 번째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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