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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an 31. 2018

무난함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지 못한 기병대 실화

<12 솔져스>(2018), 니콜라이 퓰시

<덩케르크>(2017)의 국내 개봉 당시 예고편 등에 사용된 문구 중 하나가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였다. 실제 감독의 말이기도 했고 영화와도 아주 잘 들어맞는 서술이었다. 여기서의 '전쟁'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피와 화력으로 범벅이 된 참혹한 현장 혹은 그것을 보여주는 양식 자체다. <덩케르크>는 거의 피 한 방울, 적군 한 명 보여주지 않고도 어떻게 하면 전쟁의 체험을 관객에게 극대화할 수 있는지의 용례다.


<12 솔져스>(2018)의 제작진인 제리 브룩하이머는 100편이 넘는 영화와 TV 시리즈를 제작하며 <아마게돈>(1998), <진주만>(1999), <블랙 호크 다운>(2001)부터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2003~2017)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블록버스터를 탄생시켰다.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12 솔져스>는 이질감 없이 그가 내놓을 법한 전쟁영화로 보인다. 여기에 이 영화를 연출한 니콜라이 퓰시 감독의 이력을 보면 나름대로 독특한 작품이 되기에 충분한 영화로도 여겨진다.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종군 기자로 코소보 사태 등의 현장을 누볐고 소니 브라비아 TV 등 광고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12 솔져스> 스틸컷
<12 솔져스> 스틸컷

관람 전의 우려와 달리 <12 솔져스>는 의외로 국가(미국)적 정서를 그다지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애국심'은 595 분견대 소속 대원들이 작전에 나서는 계기를 제공하는 지점까지만 활용될 뿐이다. 작품 전반의 정서는 생존 혹은 생환 그 자체이며, 비인간적인 테러에 대한 응징이 곧장 애국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12 솔져스>는 감정적인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건조한 영화에 속한다. 비공개 작전이었던 탓에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이 영화는 2005년 발간된 더그 스탠튼의 논픽션 'Horse Soldiers'를 원작으로 한다. 국내 미출간.)를 영상으로 구현하려는 목적에 충실하다.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One World Trade Center)와 9/11 메모리얼(9/11 Memorial), 뉴욕 맨해튼 소재


우리에게는 십수 년 전의 테러가 체감적으로 크게 와닿지는 않으나 9/11 테러는 21세기 미국 사회 전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줬던 게 분명하다. 중학교 때 뉴스로 접하고 멍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남의 나라 일에 대한 감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기억을 뒤로하고, 작년 뉴욕을 찾았을 때 귀국 전날 들렀던 곳이 바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였다. 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 옆에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다시 들어섰고, 과거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는 9/11 메모리얼 공원이 되었다. 이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2 솔져스>의 주인공들이 투영된 실제 인물들(영화 속 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실제 인물들의 것과 다르게 설정돼 있다)의 공적을 기리는 기병대 동상이 근처에 있었다.


<12 솔져스>의 실제 인물들의 공적을 기린 기병대 동상(정식 명칭은 'America's Response Monument'). 뉴욕 맨해튼 소재


<12 솔져스> 스틸컷


말을 탄 군인의 이미지는 현대전에 이르러 그 자체로 신선하다. 첨단 기계화된 병기들부터 방사능과 생화학 무기까지 즐비한 오늘날의 전쟁에서 말을 타고 싸운다는 것은 과거 남미 대륙을 침략한 유럽인들을 맞았던 원주민들의 모습처럼 구시대적인 이미지를 풍기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관객이 떠올릴 법한 흔한 전쟁 영화의 모습을 전복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나아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험준한 아프간 산악 지대를 이동할 수 있는 필수적인 운송 수단이기도 한 기병대는 작품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할 수 있다. 다만 <12 솔져스>는 말을 처음 타 본 일부 대원들끼리 주고받는 농담들 외에는 기병대의 비주얼 이상의 것을 활용하지 못한다.


이는 <12 솔져스>가 자신의 모티브가 된 실화를 텍스트에서 영상으로 옮긴다는 것 외의, 영화로서의 방향성을 스스로 명확히 구축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 차라리 국가적 정서를 노골적으로 부각했다면 오히려 좀 더 뚜렷하고 경우에 따라 통쾌한 장르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이 단순히 선악 구도가 아님을 의식한 탓인지 '넬슨'(크리스 헴스워스)과 '도스툼'(네이비드 네가반)의 관계를 통해 중동 지역의 복잡한 정치적, 군사적 지형도를 반영하려 하지만 이 역시 두 사람의 개인적인 관계로 한정된다. 예상 가능한 무용담으로 흐르는 것을 일정 부분 방지하고 나름의 긴장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나마 두 사람의 캐릭터가 함께 존재하는 의의다.


<12 솔져스> 스틸컷


잠시 영화의 초반부를 돌이키면, 휴가에서 돌아온 '넬슨'과 '스펜서'(마이클 섀넌)를 비롯한 대원들이 아프간으로 떠나기 전 보여주는 가족과의 짧은 일상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영화적 기능을 하지 못하더라도 주인공들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각오와 비장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용인할 수 있다. 특히 '넬슨'은 아내와 딸의 곁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영화 내내 반복적으로 새긴다. 그러나 이런 인물 설정은 '넬슨'과 '도스툼' 간의 관계에서 제시되는 아프간 북부 동맹과 탈레반의 대립 구도를 단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나선 아버지들의 전쟁으로 한정시켜버린다. 그 과정에서 '도스툼'의 개인사와 성격에 관한 대목 역시 불필요하게 부각된다. 이는 자신을 리더로 믿고 따르는 대원들을 통솔해야 하는 동시에 '도스툼'의 세력과 일종의 외교적 교섭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넬슨'의 지휘관으로서의 고뇌까지도 퇴색시킨다.


이 대목에서 영화의 1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과연 필요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말하자면 다소 낭비적이다. 평소에 이 정도의 러닝타임을 그다지 길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에게도 <12 솔져스>의 시간은 과분하다. 원작이 된 논픽션에서 취사선택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거나 혹은 무엇 하나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살리려고 애썼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된 영화는 아니나 큰 화면에서 관람하기에 부족함은 없는 영화다. 아쉽게 느낀 대목들을 실컷 언급했지만 상업영화로서의 일반적인 만듦새를 평하자면 그렇다. 다만 (공중 지원과 아프간 군벌의 도움을 받은) 12명 대원들의 탈레반 세력에 맞선 반격 과정이 관객에게 주는 평균적인 수준의 스케일과 긴장감 외에, 전쟁을 대하는 그 이상의 깊이와 미학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미 미국의 대테러전을 다룬 영화들이 여러 편 존재하는 가운데 <12 솔져스>는 그다지 스스로의 존재감과 영화적 필요를 드러내지 못한다. (★ 5/10점.)



<12 솔져스> 국내 메인 포스터

<12 솔져스>(12 Strong, 2018), 니콜라이 퓰시

2018년 1월 31일 (국내)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마이클 섀넌, 마이클 페나, 트래반트 로즈, 윌리암 피츠너, 엘사 파타키, 테일러 쉐리던 등.


수입: 조이앤시네마

배급: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12 솔져스> 스틸컷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7.01.29 @CGV용산아이파크몰)

*<12 솔져스> 예고편: (링크)

*여러모로 비슷한 설정과 배경의 영화들 가운데서는, 피터 버그의 <론 서바이버>(2013)가 좀 더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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