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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Feb 24. 2018

타인의 세계관을 어렴풋이, 끊임없이 접하는 일

장석주&박연준 시인과의 만남

어떤 사람의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의 세계관을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고, 나아가 그 사람의 세계 자체가 궁금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 고유한 방식을 생각하다 보면, 그 세계가 온전히 나의 세계는 아니어도 매력적이거나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문학에 대해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썼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문학의 본질과 가치에 관해, 그 어떤 설명 보다 나는 이 설명에 완전히 동의한다.


(좌측부터) 장석주 시인, 박연준 시인, 그리고 김민정 시인


그리고 오늘 행사를 진행한 김민정 시인은 "문(文)은 문(門)이라서 한 번은 더 열어보고 싶었다"라고 시인의 말에 쓴 바 있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문학동네시인선 084, 문학동네, 2016) 누군가의 세계에 존중과 경의를 담아 그 문을 두드리는 일.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책읽기에 대한 책일기'인 두 사람의 공저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일부 페이지를 시인이 직접 읽어주기도 했다.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생각 등에 관하여 사전에 준비된 질문과 답변 시간을 통하여 깊은 대화의 장도 열렸다.


오늘은 장석주, 박연준 두 시인의 책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난다, 2017)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지만, 나는 두 사람이 전에 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난다, 2015)의 두 구절을 생각했다. 공저한 그 책의 서문에 박연준 시인은 "자기 감정을 아는 것, 사랑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나는 순해졌습니다.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 사랑했거든요.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합니다. 잉걸불 속으로 걸어가는 한 쌍의 단도처럼 용감합니다."라고 적었고, 장석주 시인은 "당신은 지금까지 그랬듯이 거기에 서 있으면 됩니다. 어느 해 여름 우리는 바닷가에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함께 바라봤지요. 그때 당신과 나의 거리,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거리를 유지한 채 남은 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녹음도 하지 않고 필기도 하지 않고 그저 맨 앞자리에 앉아 두 시인의 (정확히는 세 시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말하듯이 쓰며 쓰듯이 말하는 작가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읽기는 "타자와의 접속"이며 글쓰기는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라고 쓴 바 있는 장석주 시인의 글을 고스란히 말로 접할 수 있었던 시간. 말과 글에 대한 온갖 감상들이 떠올랐지만 나는 사인을 받으면서 "책 너무 감사히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라고만 인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인사였던 것 같다. 삶으로 나의 세계관을 정립해나가면서, 타인의 세계관을 어렴풋이, 끊임없이 접하는 일은 이렇게나 중요하고 귀하다.


장석주 시인과 박연준 시인의 사인을 두 사람의 공저인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의 같은 페이지에 받았다.



(2018.02.22, 북티크 서교점, '작가인사이드'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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