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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Mar 18. 2018

그녀는 왜, 아무도 찾지 않는 세 개의 빌보드를 보았나

<쓰리 빌보드>(2017), 마틴 맥도나

(내용 전개에 중대한 실마리가 되는 부분들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은 피했으나, 글의 요지를 부연하기 위해 일부 장면이나 대사에 관한 서술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01.

'밀드레드'와 '딕슨', '윌러비'의 캐릭터는 어떤 양상으로 등장하는가


한 중년의 여인이 차를 몰고 한적한 길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생기가 없어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는 길가의 오래된 광고판을, 차를 멈춰 선 채 얼마간 응시한다. 세 개의 광고판 중 그녀가 시선을 향한 곳은 두 번째 광고판 옆이다. 버려진 도로변에 찾는 이 없는 낡디낡은 광고판. 관리도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그것을 보며 그녀는 아마도 "여기에 뭔가를 적으면 좋겠군"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다음 신에서 그녀는 직전 신의 광고판을 운영하는 광고 회사 사무실로 들어선다. 두 번째 신에서 그녀의 이름이 '밀드레드 헤이스'라는 게 밝혀진다. 그보다 먼저 언급되는 사실은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안젤라 헤이스'의 어머니라는 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은 그녀의 딸에 대해 뭔가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게 뭔지는 모를 것이다. 세 개의 광고판에 무슨 내용을 적는지 역시 이 대목에서는 밝혀지지 않으며, 다만 비속어만 안 넣었지 뭔가 의미심장한 문구가 들어갈 것임을 가늠할 따름이다.


이처럼 <쓰리 빌보드>(2017)는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에 있어 처음부터 아주 치밀하다. 대사량이 그리 많지 않은 이 영화의 각본은 순간마다 인물의 표정을 세밀히 보여준다. 처음의 단 두 개의 신만으로도 '밀드레드'가 광고판을 통해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1년을 임대하겠다는 것에서부터 그 어떤 결연함을 느낄 수 있다) 울분 내지는 전하지 못했던 메시지를 공표하고자 함을 짐작할 수 있다. 세 번째 신에 이르러 영화의 또 한 명의 중요 캐릭터를 통해 마침내 광고판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드러난다. (두 번째 신에서 세 번째 신으로 넘어가기 직전, '밀드레드'는 광고를 게재할 적절한 시점을 이야기하며 바로 건너편의 경찰서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광고판을 처음 '발견'하는 인물은 바로 '딕슨'(샘 록웰)이라는 경찰관이다. 광고를 벽에 설치하고 있는 라틴계와 흑인 노동자에게 말하는 '딕슨'의 태도는 어딘지 전형적이고 익숙한 캐릭터다. 적어도 중반부까지는 나태하고 인종과 성차별적 가치관을 확고히 지닌 예상 가능한 백인 경찰로 보이는 그의 캐릭터는 바로 이 세 번째, 단 한 개의 신만으로도 이미 구축되는 것이다. '딕슨'이 세 번째 광고판에 이어 나머지 두 개의 내용까지 연이어 발견하고 나서 거는 한 통의 전화. 수화기 너머의 또 다른 인물이 <쓰리 빌보드>에 등장하는 '세 번째' 축이다. 직전의 그 세 번째 광고판에 (내용상으로는 세 번째, 목격 순서로는 가장 먼저) 등장한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의 바로 그 '윌러비'(우디 해럴슨)다. '윌러비'가 '딕슨'의 전화를 가족과의 식사 중 받는 것이 불과 영화의 다섯 번째 신이다. 목적의식이 뚜렷한 영화라면 주요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키는 방식과 그 시점에 대해 심사숙고하게 되는데, <쓰리 빌보드>의 세 인물은 영화가 시작한 지 불과 다섯 개의 신(Scene)만에 모두 등장한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밀드레드', '딕슨', '윌러비' 세 캐릭터의 등장 시점에 주목해보기로 한다. 만약 <쓰리 빌보드>가 비극적 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와, 제대로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하거나 부패한 공권력의 대결 구도를 서사의 동력으로 삼을 작정이었다면, 분명 상기에 서술한 일련의 흐름보다 '윌러비' 서장이 에빙 사람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는 인물이란 점이 먼저 언급되거나 다뤄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이어지는 몇 개의 신을 통해, 광고 회사를 찾아가 광고주('밀드레드')에 대해 추궁하는 '윌러비', 광고 회사의 실무자 '웰비'(케일럽 랜드리 존스)를 과격하게 대하는 '딕슨', 그리고 지역 언론사를 통해 광고판을 세운 경위에 대해 인터뷰하는 '밀드레드'를 각각 보여준다.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이 그 등장만으로 충분히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게끔 하는 것과 동시에, 이 세 인물의 관계가 단지 '피해자 엄마'과 '경찰'의 대결 구도로 구축되지 않는다는 점은 여기서 이미 드러나 있다.


'밀드레드'의 (근면하고 성실한 '윌러비' 서장을 겨냥한) 광고를 불편히 여기는, 혹은 '윌러비' 서장을 지지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 타인의 대사로만 언급되게끔 하는 <쓰리 빌보드>는 오히려 마을 사람들이 'Mildred Hayes thing'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역정을 내는 '윌러비', 그리고 자신을 향한 불성실하고 혐오스런 태도를 보이는 치과의사에게 격한 방식으로 경고하는 '밀드레드'를 병치하며 이들이 선악 혹은 진영 그 이상의 관계가 될 것임을 확고히 한다. 여기서 '밀드레드'는 치과의사에게 "윌러비한테 가서 일 좀 똑바로 하라고 전해"라고 이야기한다. 치과의사가 바로 직전 경찰서 신에서 '딕슨'과 '윌러비' 사이에 언급되는, 광고판에 대한 불만을 제기한 두 사람 중 하나임을 '밀드레드'가 알고 있었는지 여부 자체는 중요하진 않지만 이는 그만큼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에빙이 한적한 소도시인 데다 '밀드레드'가 타인의 행동과 태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임을 보여준다.


비로소 <쓰리 빌보드>의 서사가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지 드러나기 시작하는 신은 앞선 치과의사와의 일로 경찰서에 오게 된 '밀드레드'와 '윌러비'가 대화하는 대목이다. ('밀드레드'와 '딕슨'의 대화 포함)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밀드레드'의 딸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자체는 영화의 핵심 단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가 광고판을 설치하고 나서 '윌러비'와 '딕슨'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어떤 반응과 행동을 보이는지, 거기에 주목해야 마땅하다. 여기에 '밀드레드'의 전 남편 '찰리'(존 호키스)와 아들 '로비'(루카스 헤지스) 등 직, 간접적으로 얽힌 인물들의 관계는 광고판의 내용이 셋으로 나뉜 것처럼 여러 층위에서 이 '사건 이후의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사건 자체보다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변화, 그로 인해 지역 사회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말이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02.

더 이상은, 이제는,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한 '밀드레드'

'밀드레드'가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한 '윌러비'

타인에 의해서만 행동하다가 마침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 '딕슨'


먼저 '밀드레드'를 살펴보자. 그녀가 세운 광고판의 내용을 상기하자면 "Raped While Dying", "And Still No Arrests?", "How Come, Chief Willoughby?"다. 각각 '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어떻게 된 건가, 윌러비 서장?'이다. 간단히 보면 첫 번째는 죽은 딸에 대하여, 두 번째는 범죄의 심판에 대하여, 그리고 세 번째는 책임에 관하여 적시하고 있다. 단순히 영화의 분량상 한계와 캐릭터의 특성 탓이 아니라 '밀드레드'는 각본상 의도적으로 삶의 일상성이 제거되어 있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딸이 비극적인 일로 죽은 후 더 이상 평온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차를 몰고 맨 처음 등장하는 대목에서 '밀드레드'는 에빙의 바깥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광고판에 담긴 내용 역시 외부에서 에빙으로 들어오면서 순서대로 인지하게 된다. '밀드레드'는 영화의 시작부터 이미 그 제목처럼 에빙에 없었다. (물리적으로는 단지 그녀가 어딘가로 떠난 외출로부터 돌아오는 것이었겠지만) 원래 에빙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어야 할 인물이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에빙에 들어오면서, <쓰리 빌보드>의 서사는 흐르기 시작한다. 딸이 죽은 지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제서야.


'밀드레드'를 표면상의 주인공이라 한다면 '윌러비'는 그 주인공과 처음에는 갈등을 빚게 되다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밀드레드'의 여정에 결과적으로 도움을 주게 되는 인물이다. 대외적인 평판과 달리 실상은 타락한 공권력의 대리자처럼 보였던 경찰서장 '윌러비'는 실은 '안젤라 헤이스' 사건에 무관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가정적이고 인간적인 면모까지 지녔음이 밝혀지게 된다. 그에게도 아내와 두 딸이 있으며, 심지어 췌장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는 설정까지 추가된다. 이는 '윌러비'를 '선한 백인 남성'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물론 아니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신부에게 '밀드레드'는 1980년대 갱스터들을 소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범죄에 대해 알든 모르든 그 갱단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을 몇 개월 동안 잡지 못한 경찰 전체를 향한 책임론이 내포되어 있으며, '밀드레드'는 '미국의 8세 이상 모든 남성의 피를 검사하라'고 말할 만큼 증오에 휩싸여 있다. '윌러비'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전반부에 거론된 '밀드레드'의 책임론과 심판론에 질문을 던진다. 가령, 과연 모든 경찰에게 책임이 있는가? 경찰은 부패하고 무능한가? 사건의 범인이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모든 심판을 허용할 수 있는가?


<쓰리 빌보드> 스틸컷


그렇다면 '딕슨'은 그 위치상 '밀드레드'와 '윌러비'의 중간에 있다. '누가 감히 우리 서장님을 모욕해!' 정도로 표현할 법한 반감에서 출발한 이 인물은 본인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장 많은 변화를 직접적으로 겪는다. 신변의 변화와, 생각의 변화 모두 말이다. 따지고 보면 '딕슨'은 '윌러비' 서장을 거의 유일하게 존경하는 멘토 삼는 것 빼고는 그 자체로 나쁜 사람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정체성의 혼란을 폭력적으로 체화한 인물이다. 미국 남부에서 평생을 보냈고 보수적이며 '딸이 죽는 영화'를 좋아하는 '딕슨'의 엄마는 '밀드레드'의 주변인을 괴롭혀 볼 것을 종용하기까지 하고, '웰비'를 폭행하지만 '밀드레드'에게는 뚜렷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단지 마을 사람들이 '딕슨'을 경찰관으로서 그다지 존경하거나 존중하지 않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딕슨'은 정작 광고판에 언급된 '윌러비'보다도 훨씬 더 직접적이고 밀접하게 '밀드레드'를 둘러싼 일에 연루되고 이는 이를테면 'How Come, Chief Willoughby?'에서 'How Come, Dixon?'으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의 중대한 변화에 해당한다. 맹목적인 폭력과 증오보다 사랑, 침착함, 생각의 가치를 대변하는 이 영화에서 '딕슨'은 '윌러비'가 '밀드레드'에게 남긴 질문을 본인에게 직접 대입하고 스스로의 답을 찾는 인물이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03.

아웃사이드 에빙, 미주리


세 캐릭터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조합하자면 '밀드레드'는 본인만 제외하고 일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던 에빙에 (물리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서사적 의미에서) '돌아와' 모두에게 지난 일을 상기시킨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섰다기보다 광고를 통해 사람들이 잊고 있었던 점을 각자의 방식으로 상기하게 만든다. '윌러비'는 그녀의 메시지를 받아 고민 끝에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질문의 형태로 정리한다. '딕슨'은 '윌러비'의 질문을 곧장 자신에게 투영한다. 그러고는 감정보다 차츰 이성을 되찾아간다. 마침내 '딕슨'은 '밀드레드'의, 영화가 끝날 무렵에야 시작되는 어떤 여정에 가장 밀접한 동반자가 된다. <쓰리 빌보드>의 115분이 흐르고 나서도 이른바 '안젤라 헤이스' 사건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다지 '스포일러'라고 할 만한 것도 이런 성격의 영화에서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딸을 잃은 '밀드레드'가 경찰서장에게 책임을 묻는 광고판을 설치하고 나서, 이 영화 속 세상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는지를 확인하는 건 물론 관객 각자의 몫일 테다. '딸을 잃은 엄마, 세상과의 전쟁을 선포하다'라는 국내 포스터에 적힌 문구는 이런 면에서는 정확하다.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전쟁을 선포했을 뿐. 진짜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다.


안톤 후쿠아 감독의 <더 이퀄라이저>(2014)에서 '로버트'(덴젤 워싱턴)는 법이 범죄를 제대로 심판하지 못하는 모습에 분개해 자신이 직접 그것을 행하기 시작한다.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테리'(클로이 모레츠)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직접 목격하고 나서의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범죄들이 뉴스를 장식하지만, 자신이 그 당사자가 되기보다는 다른 누군가의 가해와 피해를 우리는 주로 전해 듣게 된다.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이, 그 범죄를 직접 겪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능한'이라는 의미는 그것이 모두에게 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일종의 비관을 내포한다. 수십억 인류가 사는 이 땅 어딘가에서는 내가 편히 앉아서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누군가가 피와 눈물을 흘리고 있을 테니까. '밀드레드 헤이스'의 이야기는 그래서 에빙, 미주리 어딘가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 바깥의 사람들, 관객에게까지 그 파장을 남긴다.


그러나 바라본다. "우리는 영원히 이 장르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를."(이다혜, [아무튼, 스릴러](코난북스, 2018) 뒤표지에서 인용) <쓰리 빌보드>는 스릴러가 아니다. 그러나 범죄에 관해 다루는 영화다. 범죄로 인해 삶이 피폐해진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직접 나서서 범죄를 심판하고 단죄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심판이 어떤 식으로 가능한지, 그것은 옳은지, 관객에게 질문하는 영화다. 장르적 요소로 보면 코미디로 분류할 법한 대사, 상황, 신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영화다.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할 뿐이다"라는 영화의 중요한 대사 역시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인물이 던지는 코믹한 상황 속에서 던져진다. 증오보다 사랑, 침착함, 생각, 그런 것들의 가치를 편지로 역설한 '윌러비'의 말은 결코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주리라는 낙관이 아니다. '윌러비'의 질문을 전해 받은 '딕슨'이 말한다. 어쩌면 희망보다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결정하고 가는 게 아니라 가면서 결정하기로 한 인물들의 결말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그것을 가장한 시작이다.


<쓰리 빌보드> 스틸컷


그녀는, '밀드레드'는 왜 비싼 돈을 들여가며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을 광고판 세 개에 나누어 적어야만 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이 세상은 결코, 옳고 그름을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타인보다 자신의 가치를 더 정당화하고 우선시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타인의 감정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백 명이 움직이면 거기에는 그 사람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보다 그들 각자의 백 가지 이유가 있음을 헤아리는 게 마땅하니까. 단순히 책임과 비난의 대상을 찾음으로써 모든 게 해결된다면야, 이 세상의 수많은 감정 소모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쓰리 빌보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지독하게 보여준다. 나는 <쓰리 빌보드>의 장르적 구분을 블랙 코미디라기보다 차라리 웨스턴에서 찾고자 한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담고 있는 그 뚜렷한 비장함으로부터 말이다. 첫 장면에서 에빙 바깥에서부터 차를 타고 등장했던 '밀드레드'는 다시 차를 타고 에빙의 바깥 어딘가로 향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인 에빙. 이제는 '밀드레드'가 다시 아웃사이드가 아닌 인사이드 에빙에 머무를 수 있게 되기를 막연히 되뇌면서, 나는 <쓰리 빌보드>가 제목 따라 적어도 세 번은 봐야 할 영화라고 글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적어본다. 실은 처음부터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그냥 "세 번 보세요!!!" 하면 간편하겠지만 '이야기'라는 것의 가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믿기에 이렇게 멀리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해보려고. 딸의 엄마이기 이전에, '밀드레드'라는 여성을 그래서 응원한다. 창틀에 누운 누군가는 하찮게 여길 수 있는 벌레도 제 길을 가게 해주는, 자신의 슬픔과 응어리를 담아 표출한 누군가에게도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 않은, 과오를 후회할 줄도 아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내되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그녀를. 그리하여 끝내, 영화의 끝에서 시작된 '밀드레드'의 여정이 도달한 곳에서는, 그녀의 잃어버린 일상이 되찾아지기를. (★ 10/10점.)


<쓰리 빌보드> 국내 메인 포스터


*<쓰리 빌보드> 리뷰 '여정이 미처 시작되기도 전에, 모든 감정이 집약된 걸작': (링크)



<쓰리 빌보드> 스틸컷
<쓰리 빌보드> 스틸컷
<쓰리 빌보드>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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