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진 Apr 12. 2018

죽음과 상실의 곁에서, 끝내 인간성을 잃지 않은 인물들

<몬태나>(2017), 스콧 쿠퍼

방랑의 무법자가 아니라 직업에 충실한 군인을 주인공으로,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여인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를 그 군인의 여정을 이끄는 핵심 동인으로, <몬태나>(2017)는 느리고 장엄하게, 죽음의 곁에 상실이 있음을 경험해야만 했던 이들의 연대하는 여정을 그린다. 뉴 멕시코 주와 콜로라도 주에서 촬영된 영화의 배경은 같은 일(각자의 동기는 다르지만, 단순화 시키면 '인디언을 죽이는 일')을 하고도 누군가는 신망을 얻는 장교가 되고 누군가는 사형수가 되며, 명문화된 정의나 도리가 통하지 않고 힘이 곧 주된 가치가 되는 곳이다.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조셉 블로커'는 말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눈빛으로 무언의, 그러나 강렬한 인상을 전하며 영화에서 그가 가장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신(Scene) 역시 그의 음성은 들리지 않는다. 이 고요한 '포효'는 <몬태나>에서 그의 연기가 가장 폭발하는 순간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조셉'은 그 얼굴만으로 인디언을 향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능히 드러낸다. 상사에게 절대 자신이 맡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던 임무를 끝내 수행하게 되는 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아마도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 같다.


<몬태나> 스틸컷


수많은 전우들을 잃고 인디언을 증오하는 '조셉'(크리스찬 베일)과 그 증오의 대상이었던 나이 든 추장 '옐로우 호크'(웨스 스투디)이 함께하는 영화의 여정에서 등장하는 모든 죽음들은 쉽게 잊히거나 가벼이 여겨지지 않는다. 산 자들을 변화시키거나, 행동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저 그 곁에 머무르게 만든다. 누군가가 죽으면 그들은 시신을 바르게 묻고, 여정을 멈추고 그 곁에 캠프를 세운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음을 아는 그 죽음의 곁에 머무르면서 그들은 무엇이 삶을 인간답게 하는지를 알고 언어를 초월한 채 그 가치를 지키고자 한다.


'옐로우 호크'는 '조셉'의 동료를 죽게 한 적이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조셉'은 자신의 적을 1,000마일이 넘는 길을 지나 그 적의 고향 마을이 있는 '몬태나' 지역까지 호송해야 한다. 그러나 임무를 무사히 마친다면, 명예롭게 전역하여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대신 '옐로우 호크' 추장과 그 가족들의 손에 쇠고랑을 채운다.) 떠난 여정의 시작부터 '조셉'은 '로잘리'를 발견한다. 방화로 전체가 타버린 집 안에서. 그녀는 죽은 아이들을 끌어안고 "쉿, 아이들이 자고 있어요"라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조셉'에게 넋 나간 듯 말한다. 영화의 응축된 두 분노가 거대한 여정의 시작을 앞두고 만나는 이 순간. 말하자면 '일생일대의 적이 인디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이, 바로 그 적의 수장 격인 인물과 함께하는 여정의 동반자가 된 이 상황에 대해 얼마든지 더 풀어두고 싶지만, 관객을 위해 내용 설명을 아껴야만 하겠다.


<몬태나> 스틸컷


영화의 도입에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D. H. 로런스의 문장이 인용된다. 원문은 "The essential American soul is hard, isolate, stoic, and a killer.  It has never yet melted." 인데, 오늘날 미국의 역사를 있게 한 그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말이다. 이민자로 척박한 땅에 발 디디며 고독하게 생존한, 그러나 살기 위해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대한 그들의 (남북 전쟁을 거치고도) '아직 변하지 않은' 영혼은 곧 <몬태나>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를 관통한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벤 포스터가 연기한, 과거 '조셉'의 수하였던 것으로 보이는 병장 '찰스'는 바로 이 '미국인의 본성'에 관해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거시적으로는 인간성 그 자체를 탐구하는 작품에 가깝기에 다만 정복자와 원주민 사이의 선악 자체는 영화에서 애써 다루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대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맞서 강인한 여성으로 변화하는 '로잘리'의 캐릭터가 부각된다.


<몬태나> 스틸컷


<몬태나>의 장면 전환의 기법과 카메라 활용은 고스란히 영화의 주제와 조화된다. 큰 상실의 곁에서 강인해진 인물들은 맹목적인 복수나 응징으로서가 아닌, 자신과 소중한 것을 끝내 지켜내려는 마음으로 총을 꺼내든다. 수정주의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세워진 미국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해도 상관없다. 건조하지만 인간성을 끝내 잃지 않는 이 유려한 드라마 앞에 '인간'은 그저 겸허해질 따름이다. 죽음과 상실을 곁에 두고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은 이들의, <몬태나> 이후 다시 시작된 삶. 지금까지와는 많이 다르지만, 쉽지 않겠지만, 그들의 이 삶은 새로이 계속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조셉'과 '로잘리'의 모습은 마치 <쓰리 빌보드>(2017)의 '밀드레드'와 '딕슨'을 닮았다. (★ 8/10점.)



<몬태나> 국내 메인 포스터

<몬태나>(Hostiles, 2017), 스콧 쿠퍼

2018년 4월 19일 (국내) 개봉, 131분, 15세 관람가.


출연: 크리스찬 베일, 로자먼드 파이크, 웨스 스투디, 벤 포스터, 티모시 샬라메, 폴 앤더슨, 제시 플레먼스, 스콧 윌슨, 스티븐 랭 등.


수입/배급: 판씨네마(주)


<몬태나> 국내 스페셜 포스터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2018.04.10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몬태나> 해외 예고편: (링크)



<몬태나> 스틸컷
<몬태나> 스틸컷





*좋아요와 덧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많은 힘이 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