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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0. 2015

쉬운 사람과 어려운 사람

기분이나 심리 상태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훤히 드러나는, 자신을 숨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직접 말을 하지 않으면 도통 그의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포커페이스 정도로 표정을 숨기지는 않으나, 감정표현에 솔직한 편이나, 나는 전적으로 후자다. 그리하여 되도록이면 상대가 알 수 있게 표현을 하려 애쓴다. 이것이 명확한 장점이거나 명확한 단점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을 상대하는데 대체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기분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면 참 난감하다. 다만 안정을 해할 어떤 요소에도 흔들리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순기능을 한다.


자신의 기분이 어떻다고 온몸에 써서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상대가 그에 따라 맞춰주기 좋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을 때 애써 어렵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불가피하게 숨겨야 하거나 숨기는 것이 현명한 어떤 상황에서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와 화법 등에 있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는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동안 그 사람이 쌓아온, 혹은 쌓여온 과거와 현재 처한 환경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나 역시 어떤 순간에는 기분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다른 사람들에게 훤히 버튼을 보이고 다녔을 시기도 분명히 있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와 같은 단순해보이는 요소도 이에 영향을 준다. "연애하더니 요새 얼굴이 폈어" 같은 사소한 말도 그걸 뜻한다.


천계영의 만화 <예쁜 남자>에서 일렉선녀가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속에 버튼을 가지고 있다"고. 만화에서의 김보통처럼 온몸에 외장 버튼을 달고 다니는 이가 있는가 하면, 도무지 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버튼은 무엇일까에 관해 상당한 고민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독고마테가 버튼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렉선녀는 이미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들으러 그녀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그것을 터득해왔다.


나는 좀 더 쉬운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다. 나 스스로에게 그렇다 함은, 나 자신의 기분을 내가 몰라서 고민일 때는 없으면 좋겠다는 의미다. 다른 사람에게 그렇다 함은, 상대가 내 기분을 파악하느라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김보통처럼 '너무 쉬워보이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버튼 하나쯤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다만 쉬운 사람으로서, 나를 대하고 내가 대하는 관계는 쉽거나 가볍지 않고 무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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