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 관하여
"안녕, 여러분. 난 해나 베이커야. 카세트테이프 안에서 난 아직 살아 있어." 넷플릭스 드라마로 먼저 시작했는데, 아직 겨우 첫 시즌 초반부를 보는 중이었지만 매 회차 거듭 충격적이어서 주저 없이 원작을 구입했다. (이 드라마의 원제는 '13 Reasons Why'이지만, [루머의 루머의 루머]라는 제목은 원작 소설의 국내 출간 제목을 따른 것이다.) 사진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테이프 속 해나의 음성은 작품의 화자인 클레이의 서술과 그 텍스트가 다른 색상으로 구분돼 있다.
내게는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추천해준 이의 코멘트가 꽤 오래 기억에 남아 있고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그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비록 모든 문학과 영화, 드라마에 적용될 법한 말임에도 이 말은 이 드라마에 특히 더 밀접하게 적용할 수 있겠다.
타인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한 게 아니라, 나는 어릴 때부터 자리에 없는 타인을 험담하는 걸 극히 싫어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 (지금도 말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진 않지만) 싫은 소리 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왜 사람들은 늘 남 이야기 하길 좋아할까,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안다고 착각할까, 그런 질문들이 늘 따라다녔다. 말을 아끼는 버릇은 거기서 비롯했다. 선한 진심에서 나온 말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너무 말이 많다고 생각했고, 나는 대신 입을 잘 열지 않기를 택하며 자랐다.
칼이나 총 따위는 자신의 성질이 담고 있는 힘만큼만의 상처를 내지만, 사람의 말은 그 이상의 파급력을 지닌다. 우리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말하기를 주저해야 하고, 말하기에 앞서 먼저 듣고자 노력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의 국내용 제목은 원제와 다르지만 작품의 성격을 아주 정확하게 간파한 제목인 것이다. 드라마는 곧 시즌 3가 공개될 예정이다. 시즌 1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대체로 복잡하게 나쁜 사람"이라고 했던, 신형철의 문장을 다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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