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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4. 2018

삶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게 만드는 예술의 존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은 우연을 조력자라 여기며, 예술을 '찍는' 게 아니라 삶의 생동하는 순간을 '담고', 그것이 마침내 예술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영화다. 삶과 예술이 서로 친구가 되고, 서로와 교감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탐구하는 영화다. "사람들이 떠난 곳에 얼굴을 붙이고 활력을 넣어 주민들이 돌아오게 하려고 해요"라며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신이 짧게 들어가 있지만, 아녜스와 JR은 그런 걸 위해 카메라를 든 게 아니라, 단지 사람들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 것이다.


감독의 남편인 자크 드미(1931-1990)의 이야기를 포함해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1929), 안나 카리나와 장 뤽 고다르가 출연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단편 <Méfiez-vous des lunettes noires>(1961), 장 뤽 고다르의 <국외자들>(1964) 등 나 역시 잘 알지 못하는 레퍼런스들이 많이 언급되고 등장하지만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이해하는 데 그것들이 필수적이지는 않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두 연출자의 말도 아닌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의 무심한 언어들이다. 일단 찍어보기로 하고 의미는 나중인 것이며, 단지 이것이 삶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순간 영화는 누군가를 놀라게 하며 또 누군가를 울리곤 한다.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예술의 모든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태도와 과정에서 나온다. 독일이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 장벽에 무단으로 그래피티를 그린 누군가에 관한 최근 기사를 떠올렸다. (서울시에 따르면 그 장벽은, 최대한 원래 모습과 비슷하게 재현만 할 수 있을 뿐 복원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복원 비용은 1,000만원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무리 너그럽게 보려 해도, 나는 그런 건 예술로 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진정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서로에게 상상의 기회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상상해도 되는지를 묻는다"라며 스크린 너머에까지 그 존중과 편안함의 에너지를 전달하는 아녜스 바르다와 JR의 모습일 것이다. 의미 이전에 경의와 자연스러움.


어느 대화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게 늘 마지막인 것 같아"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런 말도 했다. "'오래된'이란 말보단 '길게 만난'이 더 좋아." 삶의 태도란 그런 사소한 언어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메모하는 습관을 오래전에 버렸던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도중 노트와 펜을 다시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적으면서 느꼈다. 삶을 살아가듯 삶을 사랑하듯 영화가 삶과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더 사랑해야지. 장 뤽 고다르의 집에 찾아갔지만 그를 만나지 못해 상심한 아녜스에게, JR이 말한다. "우리 호수 볼까요?" 영화가 끝나자, 정말로 호수가 펼쳐졌다. 한 가지 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란 국내 개봉용 제목. 작품의 의미를 조금도 놓치지 않고 살리면서도 원제를 해치지 않으며 동시에 편안히 다가오기까지 하는, 내가 본 가장 완벽한 제목이다. 세상과 공존하는 이 영화의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사랑스럽다. (★ 10/10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국내 메인 포스터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 아녜스 바르다, JR

2018년 6월 14일 개봉, 93분, 전체 관람가.


출연: 아녜스 바르다, JR 등.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작품상 후보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스틸컷

"예술을 사람을 놀라게 만들죠."

"맞아요."

"좋은 하루 되세요."

(영화 속 어느 스쳐가는 대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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