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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7. 2018

나조차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찾아온 어떤 위로

<오 루시!>(2017), 히라야나기 아츠코

돌아보면 삶의 많은 순간들은, 어쩌면 모든 것은, 생각지 못한 데서 찾아온다. 어쩌다 알게 된 카페, 문득 찾아간 여행지, 우연히 만난 누군가. <오 루시!>의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에게도, 그녀가 영화에서 겪는 일은 그렇게 찾아온다. 자기 대신 영어 학원에 가 달라는 조카의 갑작스러운 부탁. 그곳에서 만난, 영어를 쓰는 낯선 강사 '존'(조쉬 하트넷)과의 만남이 영화의 모든 일을 시작되게 하는 사건이 된다.


<오 루시!> 스틸컷


출근길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투신을 목격한 '세츠코'가 어떤 사람인지는 영화의 초반부 몇 개의 장면만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싫은 소리 잘 하지 못하고, 아주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무던히 직장 생활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럭저럭 원만해 보이지만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는 혼자 산다. 집은 간신히 누울 공간도 마땅치 않아 보일 만큼 어수선하고 정리되지 않은 물건과 살림들로 빼곡하다. 영어를 가르친다기에 '존'의 교육법은 언뜻 보기에도 엉뚱하고 기이한 구석이 있다. 포옹을 좋아하는 그는 'English Only Zone'인 작은 방에서 수강생을 맞이한다. '세츠코'에게 '루시'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주고 원래와 다른 머리카락 색깔의 가발을 쓰게 한다. (영화적으로 생략된 것이지만) 체험 강의에서 '세츠코'가 배우는 것이라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고 상대를 만나서 반갑다는 지극히 기초적인 표현뿐이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관객이 흔히 상상할 법한 '학원'이라는 곳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과연 학원이 맞을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이상한 공간은 아닐까,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체험 강의 이후 '존'은 갑자기 학원을 그만둬버리고, '세츠코'는 후임으로 온 영어 강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존'이 학원을 그만둔 시점에 '세츠코'에게 영어 학원에 다녀줄 것을 부탁했던 조카인 '미카'(쿠츠나 시오리) 역시 연락이 끊기게 되는데, 마침 '미카'의 엄마이자 '세츠코'의 언니인 '아야코'(미나미 카호)가 찾아와 학원비 명목으로 '세츠코'에게 돈을 돌려준다. 그리고 그 돈으로 '세츠코'는 무작정 휴가를 내고 '존'을 찾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 대목에서 짐작하길, '세츠코'에게는 아마 그때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별로 웃을 일이 없었던 일상을 보내오지 않았을까. '존'과의 어색한 만남과, 그가 탁구공을 입에 물렸기 때문에 억지로 크게 벌려야 했던 입과, 뜻을 알지만 딱히 쓸 일이 없었던 기초적인 영어식 인사, 낯선 이와의 포옹, 그런 것들이 그래서 '세츠코'에게는 비루한 일상에 찾아온 하나의 사건이 된 것은 아닐까. 영화 <오 루시!>의 이후 내용을 보면서 그 짐작은 거의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아노말리사> 스틸컷


그러다 찰리 카우프만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아노말리사>(2015)를 떠올렸다. 관계에서 오는 삶의 권태로움과 고독함을 지독하게 파고든 <아노말리사>는 <오 루시!>와 다루는 주제 면에서 많이 닮아 있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쓰는 편지에는 대략 이런 말이 나온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받아들일 게요." 우리는 보편적으로 불안하고, 특별하게 착각한다. 외로움은 언제나 나의 곁을 떠나지 않고, 다만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잠시 그 고독감을 잊을 수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별 의미를 두지 않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잠 못 이루고 생각나게 만드는 어떤 기척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관계 속에서 다치고 실패하기를 거듭할 때, (영화에서 제시되다시피, '세츠코'는 이성에게 관심이 없거나 연애를 하지 않고 산 사람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왔을 짐작하지 못할 일련의 일들이 지금의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은 혼자의 삶을 무겁다고 느낀다.


자신의 삶조차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에 다가오는 타인의 기척은 붙잡고 싶은 동아줄이 되곤 한다. 영어학원에서의 '존'의 포옹은 그런 의미로 '세츠코'에게 다가왔으리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안아준다는 행위 자체의 힘을 떠나서 말이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난 후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세츠코'의 짐작과는 달리 일어나며 그녀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어쩌면, '루시'라는 남이 지어준 이름을 갖고 보내는 미국에서의 모든 일들, 그 자체가 '세츠코'의 삶이 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 루시!>의 장점은 애써 인물의 삶을 영화적으로 뒤바꿔놓으려 하지 않고, 영화가 벌어지고 있는 한에서는 그 인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헤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 루시!> 스틸컷
<오 루시!> 스틸컷


<오 루시!>는 인물 간의 관계나 그 안팎으로 벌어지는 사건들보다는 '세츠코'라는 여성이 매 순간 느끼는 감정을 유심히 따라가는 영화다. 그래서 후반부 어떤 순간에 이르면, '존'이나 '미카'의 존재 자체는 영화에 있어서도, '세츠코'('루시'로 한때 불렸던)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헤아리는 데에도, 필수적이지 않게 된다. '세츠코'라는 캐릭터의 존재와 그녀의 언행 하나하나가 영화의 이야기가 된다. 도대체 이 사람의 삶은 왜 이렇게 쓸쓸하고 고달파질 수밖에 없는 걸까 싶어지던 그 순간, 영화는 생각지 못한 대목에서, 어쩌면 여기는 아닐 거라고 여겼던 지점에서 이상한 위로를 건넨다. 그건 대체로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멀리 있었던, 혹은 멀게만 느꼈지만 정작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던, 내 짐작 밖의 일들이어서 가능한 위로다. 내 삶은 결국 나 혼자 짊어지는 것이지만 정말 드물게도 어떤 누군가의 존재는 그런 힘으로 다가오곤 한다. 내 마음도 내 것 같지 않고 누구의 마음도 알 수 없고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오 루시!>는 마치 그렇게 말하는 작품 같다. 죽지 못해 살아 있더라도, 일단 오늘은 살아남아보자고. 영화가 끝나고도 '세츠코'의 삶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단지 앞으로는 조금 다른 방향이지 않을까 여겨지는 한 가닥의 실타래만 느껴질 뿐이다. 나조차 내 삶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 오히려 삶이 나를 안아주는 그 순간. 당장 찾아오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 8/10점.)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이규리, '특별한 일' 전문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중에서 (문학동네 시인선 054)


만약 가능하다면, '세츠코'에게 이런 시를 전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 루시!> 국내 메인 포스터

<오 루시!>(Oh Lucy!, 2017), 히라야나기 아츠코

2018년 6월 28일 (국내) 개봉, 95분, 15세 관람가.


출연: 테라지마 시노부, 조쉬 하트넷, 쿠츠나 시오리, 미나미 카호, 야쿠쇼 코지 등.


수입/배급: (주)엣나인필름


<오 루시!> 스틸컷

*<오 루시!>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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