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이야기 되는 이야기
음악계 소식에 재빠르지 못한 나는 정말로 깊이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아니면 신보가 나온 직후에 찾아듣게 되는 일이 드물다. 이번 자우림 앨범은 예외라면 예외인데, 계기는 영화 <허스토리> 덕분이었다. 내가 관람한 본편과 달리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자우림의 노래 '영원히 영원히'가 새로 들어갔고 마침 그게 새로 나온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이라는 것. 내게는 목적성을 띠고 찾아 들은 노래보다 우연히 알게 된 노래가 더 좋았던 경우가 훨씬 많았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10곡이 담긴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좋은데, 표현하자면 노래가 나오고 있지 않은 순간에도 음악이 들리는 듯한 기분인 거다. 자우림 정규 10집 앨범의 제목은 '자우림'이다. 명료하고 강력하다. 와중에 앨범 자켓도 이렇게 잘 만들 수가 없는 것이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개봉 시기 탓에 우려를 많이 했는데, 걱정했던 대로 <허스토리>는 박스오피스에서 큰 장악력을 발휘할 만한 영화가 아니었고 예매나 현장 발권 모두에서 관객들의 최우선 순위에는 들기 어려운 영화다. 그 특성상 이런 영화는 힘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극장이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다. 7월에는 6월보다 큰 영화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허스토리>는 작 중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꺼내기 전에는 영화가 먼저 나서서 말하지 않는 영화다. 이 말은 곧, 잘 듣는 방법을 아는 영화라는 이야기도 되는데, "여성의 '말하기'가 가진 힘을 믿고, 뚝심 있게 전진"이라고 쓴 씨네21 임수연 기자님의 코멘트대로다. 그렇게 보면 영화의 제목은 단지 '히스토리'에서 획 하나를 바꾼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재연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오로지 그녀들의 눈빛과 눈물과 목소리에 온 마음을 기울이는 영화란, 오로지 정면을 보는 영화다. (그러니 '정숙'(김희애)의 남편이 어디로 갔는지, 와 같은 건 처음부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영화를 나도 다시 봐야겠다. 개봉하고는 처음 보게 될 것인데 횟수로는 이미 3차가 된다. 이번엔 더 잘 들어야겠다. 크레딧에 들어간 내 이름을 더 또렷하게 담으려는 것이기도 하고, 극장에서는 아직 듣지 못했던 자우림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허스토리'들을 더 귀를 열고 듣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청자가 있는 한, 이야기는 계속 이야기가 될 수 있다. 좋은 이야기라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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