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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n 21. 2018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


모임에서 다룰 영화는 보통 이미 블루레이를 소장하고 있거나 아니면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영화를 고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은 그런 선정 규칙을 벗어나 '보고 싶어서' 고른 영화였다. 평소대로라면 이미 몇 번은 본 영화를 모임 준비를 위해 몇 번을 더 보고 국내외 리뷰와 비평을 찾아 읽고 원작이 있는 경우 그 원작을 찾아서 읽으며 준비를 했어야 하지만, 내가 <조제...>와 함께한 3주는 그에 비하면 한없이 짧은 시간인 것이다. 어떻게 감상을 정리해야 할지 아득해져 류근과 나희덕, 박소란의 시를 읽고 아델과 에이미 와인하우스, 우효, 나비, ... 여러 노래들을 섞어 들었으며 영화 대신 다나베 세이코의 원작 단편집을 꺼냈다. 그러고는 영화는 오늘에서야 겨우 두 번째로 봤다. 2003년 작이라는 걸 상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투박하고 담백한 영화였다. 그러나 온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쓸쓸히 전해졌다.


동생의 전화를 받았을 때. 카나에를 다시 만났을 때. 츠네오는 더 이상 조제를 볼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알았을 것이다. 감정은 그렇게 불쑥 찾아온다, 내 마음도 모른 채. 하나의 마음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더 이상 그것이 돌아올 수 없다는 바를 깨닫는 일이다. 이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 떨어져 나간 우주의 일부는 다시 봉합될 수 없다는 것. 앞으로의 삶은 이제는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



조제(쿠미코)가 자신의 이름을 딴,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무언가가 나로부터 멀어진다는 걸 아는 일은, 그 자체로는 슬픈 게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 그러한 것은, 그 멀게 된 것이 절대 다시 가까워질 수는 없다는 일이다. 노래는 더 이상 같은 노래가 아니고, 영화도 이제는 같은 영화이지 않게 되며, 있던 사람은 없는 사람이 된다.


그런 불안을 우리는 늘 안고 사는 것을 넘어 평생 떨쳐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음이 있다면,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런 말 따위를 하지 않더라도 내가 있어주는 것은 누군가에게 그 자체로 그런 일일 수 있었으면. 그런 일이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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