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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Sep 22. 2015

감정을 억제하기보다 보듬어야 하는 이유

<인사이드 아웃>(2015), 피트 닥터

이제 이야기로서의 영화는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오기는 힘들어진 지 오래다. 내 머리 속의 "감정 컨트롤 타워"가 있다면 그 안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을까. 그 설정 자체는 이 작품이 처음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인사이드 아웃>이 뜨거운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열두 살까지의 아이의 마음과 그 마음 속 움직임들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재현해 낸 이야기의 작법과 구현력과 세밀한 설정들 때문이다. 특히 '꿈 제작소'나 '핵심 기억' '상상의 나라' '생각의 열차' '성격 섬' 등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지만으로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직관적인 화법은 일단 빠져들고 나서 나중에 생각하게 한다.


영화의 다섯 캐릭터 중 유일하게 푸른 빛이 감도는 '기쁨'이 주인공처럼 보이고 실제로 비중이 가장 크지만, 좀 더 <인사이드 아웃>의 본질에 닿는 캐릭터는 '슬픔'이다. 특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쁨이 우선일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슬픔이 있음으로 인하여 가능했던 행복을 떠올리는 시퀀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나쁘다고 여기는 감정도 억제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우리 삶에 건강한 필요로 작용하는 순간들을 깨닫고, 그것을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라일리의 머릿속에서 '가족 섬'은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사랑이어야만 한다. 사람이 생산해내는 감정에는 기쁨만 있지 않다. 건강한 슬픔은 기쁨을 더 기쁘게 한다. 슬픔도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인사이드 아웃>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으나 제대로 표출하지 못했던 '슬픔사용설명서'다. 기쁨과 슬픔이 만나 사랑이 된다면, 다른 모든 아픈 조각들은 생각 속에서 복원과 증축을 거쳐 단단해진다. 살아나서 삶이 된다. 슬픔마저도 사랑스러워지는 삶이 된다.


단편을 제외하면 10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이 정도의 깊이의 이야기를 이 정도의 쾌활함과 전달력으로 관객에게 스미는 작품을 만날 때면, 픽사가 왜 아직도 명가인지를 깨닫는다. 더불어 마블과 픽사를 모두 끌어안고 있는 디즈니의 콘텐츠 역량이 무서울 따름이다. 게다가 그간 애니메이션에서 마주해 왔던,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별이라니!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애니메이션은 이미 '아이들만' 보는 작품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오히려 <인사이드 아웃>은 성인 관객의 눈높이에 맞는 이야기라는 들 정도다.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에필로그도 놓치면 아쉽다. (★ 9/10점.)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2015)>, by 피트 닥터

2015년 7월 9일 (국내) 개봉, 102분, 전체 관람가.


(목소리) 출연: 에이미 포엘러, 다이안 레인, 필리스 스미스, 카일 맥라클란, 민디 캘링, 빌 헤이더, 루이스 블랙 등.


*내 마음조차 내 것이 아니기에 사람이 사람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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