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이즈 마인>(2017)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맨 오브 스틸>(2013)에는 어린 클라크 켄트와 어머니 마사가 나누는 이런 대화가 있다.
"세상이 너무 커요, 엄마."
"그럼 작게 만들어보렴. 내 목소리만 생각해,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굳이 전혀 다른 장르와 내용의 영화를 끌어다 온 것은, 두 가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하나는 세상에 나를 맞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내가 원하는 세계에 맞게 이용하라는 것, 다른 하나는,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의 주인공인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잭 로던) 역시 <맨 오브 스틸>의 '수퍼맨'(헨리 카빌)처럼 그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세상에 평범하게 속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 때문이다.
'더 스미스'라는 밴드에 대해서는 실은 잘 모른다. 아니, 분명히 알 수밖에 없는데 한동안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그 이름을 처음으로 접한 건 영화 <500일의 썸머>(2009)에서였다. 영화 초반 엘리베이터 안, '톰'(조셉 고든 레빗)은 헤드폰을 쓴 채 음악을 듣고 있고 그 옆에 탄 '썸머'(주이 디샤넬)는 '톰'이 듣고 있는 음악에 곁에서 함께 흥을 맞춘다. "스미스네요." "네?" "더 스미스, 저도 그 노래 좋아해요." '톰'이 듣고 있던 노래는 '더 스미스'의 'There i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라는 곡이다. 노래 한 곡은 그렇게 두 사람의 계절이 시작되게 만들었다.
'모리세이'는 물론 훗날 영화 속에서나마 자신의 노래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만들 것이란 걸 몰랐겠지만, '브리티시 아이콘'으로 칭해지는 '더 스미스'라는 밴드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영화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 다루는 바는 그것이다. 그러나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관객들이 흔히 떠올릴 법한 '음악 영화'의 범주를 상당 부분 벗어난다. '모리세이'의 이상을 꿈꾸면서도 현실에 좌절하고 끊임없이 감수성에 젖어드는 복잡한 내면을 반영하듯 몇몇 대목에서는 가늠하기 힘든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영화 자체가 그의 내면세계를 비추는 한 편의 영상으로 된 시(詩)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정작 관객들의 귀를 더 많이 채워주는 건 '모리세이'나 '더 스미스'의 노래가 아니라 조지 폼비, 록시 뮤직, 섹스 피스톨즈, 조니 틸로스턴, 스팍스, 모트 더 후플 등 당대의 다른 가수들의 삽입곡이다.
이쯤에서 영화의 제목을 다시 상기해야겠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이라는 말은 '더 스미스'의 노래 중 하나인 'Still Ill'의 가사 중 일부다. 모두는 여전히 아프다. 언제나 아프다. 그 아픔이 끝끝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믿는다면 누군가는 그 아픔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게 될 것이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의 '모리세이' 역시, 그저 아픈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삶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아무도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꼈을 것이고, 직장에서 보내는 무료한 일상은 그저 벗어나고 싶은 탈출구만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툰 대신 끊임없이 스스로의 언어만을 내면으로 써 내려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온갖 종류의 아픔들은 켜켜이 쌓이고 또 쌓여서, 아픔을 앓아본, 그러나 끊임없이 방황하는 자신을 만들었을 테다.
<잉글랜드 이즈 마인>은 흔한 음악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볼 법한 짜릿하고 설레는 공연 신이 등장하지 않고, 가사를 쓰거나 곡을 만들고 밴드 멤버들과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등 '음악을 만드는' 과정 역시 거의 없다. 영화 이후의 '더 스미스'의 시작이 하나의 공연이라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건 그 공연이 펼쳐질 무대가 지어지기까지, 과정 이전의 과정이다.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칭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주는 것에는 충실하다 할 것이다. 세상이 자신 같지 않을 때, 스스로를 세상으로 만들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게 음악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잉글랜드 이즈 마인>(England Is Mine, 2017), 마크 길
2018년 7월 5일 (국내) 개봉, 94분, 12세 관람가.
출연: 잭 로던, 제시카 브라운 핀들레이, 애덤 로렌스, 조디 코머, 시모네 커비, 피터 맥도날드, 로리 키나스턴, 안지 하디 등.
수입/배급: 싸이더스
*브런치 무비패스 관람 (2018.07.03 씨네큐브 광화문)
*<잉글랜드 이즈 마인> 국내 메인 예고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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