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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6. 2018

시를 읽는 이유, 서로 다른 우리의 공감을 만나는 순간

유희경 시인의 낭독회에서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모호함을 느끼는 순간. 모호하지만 그것을 분명 느끼고 있음을 아는 순간. 평범하고 사소한 것도 문득 다르게 다가오는 순간. 그런 것들을 완전히 닿을 수 없지만 가능한 정확한 언어로 담고자 노력하고 사색한 시인의 말들이 시가 된다.


문래동 재미공작소에서 열린 낭독회, 사진 출처 instagram.com/studio_zemi
유희경의 시 '안과 밖',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수록


시인은 "이 세계가 공정(공명, 정대)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우주의 질서는 그러한 쪽으로 가까워져 갈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런 세계에서 서로에게 (당)신이 되어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잠시'란 30초일 수도, 30년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낭독회가 끝나고 유희경 시인으로부터 시집에 받은 싸인, 소소한 자랑이라면, 시인께서 "목소리가 참 좋으시더라"고 하셨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재미공작소'란 공간에서 열린, 유희경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낭독회. 두 시간 반을 꼬박 자리를 지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조금씩 다르고 비슷한 한 세계 안에 빠져들었던 시간. 시인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시와, 시인의 앞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돌아가며 읽는 시들 모두가 목요일 저녁을 채워주었다. 누군가는 무용하다 할지 모르지만 내가 언어의, 텍스트의 힘을 믿는 이유를 다시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었다.


뉴욕의 노란 택시를 본딴 피규어,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담긴 엽서.


여기 사는 나보다 문래동을 더 잘 알고 더 많이 경험한, 취향으로 알게 된 분을 낭독회에서 다시 만났다. 낭독회가 끝나고 잠시 걸으며 카메라와 풍경 이야길 하다 자연스럽게 뉴욕이 화두가 되었는데, 생각지 못한 고마운 기념품을 선물 받았다. 우리는 같은 시집을 모두 다르게 읽듯이 같은 뉴욕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에 있어서의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그 다름들을 닮음일 수도 있게 해주는 것이리라.


조금만 길 나서 걸으면 닿는 곳에서 시의 우주를 만났고 또 뉴욕도 만났다. 걷는 날씨가 알맞았던 이 하루는 오래 기억되고 간직될 것이다. 오늘도, 이 동네가 조금 더 좋아졌다.


낭독회에 가기 전 발견한 동네 카페, '루트 442'라는 곳. 아지트 삼고 싶어졌다.


7월 5일, 유희경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낭독회 @재미공작소, 문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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