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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7. 2018

그래도 많은 일들은 여름에 일어나곤 했어.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집에 시집이 적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시에 관하여 잘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읽기에 쉽다고 느끼는 시들만 편식할 뿐이다. 시집의 앞이나 뒤에 있는 '시인의 말'의 몇 문장에 이끌려 덜컥 구입하는 일도 잦다. (내게는, 박준과 이병률, 유희경의 시집이 그랬다.) 그 '시인의 말'들 중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문장을 언급한다면 분명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한 일'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박준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에서


모든 일은 아름다워보자고 시작하는 일들이지 아름답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아닐 터인데, 어째서 모든 게 아름답지는 않은 걸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 그 답은 평생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하지만, 한 가지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의 존재가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그렇게 되는 시기와 내가 그것이 아름답길 원하는 시기에는 종종 차이가 생길 것이라는 것. 그것들은 거의 언제나 어긋나고, 왜곡되거나 변질된다. 게다가 어떤 마음은 그 속뜻과는 달리 전해진다.


내게 있어 마음이 주관하는 많은 일들의, 시작은 대체로 사계절 중 여름일 때가 많았다. 땀을 닦아야 하는 온도, 조금만 걸어도 땀을 흘리게 되는 습도,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 날벌레들, 중간을 모르는 뜨거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던 일도 여름이었고, 애틋한 마음이 시작되었던 일도 여름이었고, 새로운 공간을 알게 되거나 회사를 그만두거나 하는 일도 여름에 있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이제는 몰라도 좋다고 여길 만큼 그 자체로 잊혔거나 지나간 일이 되었고, 모르는 일은 어떻게 되나 한 번 두고 보자며 내버려둔 것들에 있다.


그런 여름은 온갖, 높은 불쾌지수를 일으키는 일들로 가득해서 오히려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누그러지게 해 주는, 편안함을 주는, 기척들에 예민해진다. 다른 계절이었다면 아마도 알아채지 못하거나 알고도 지나쳤을 것들이 여름에는 열린다. 그래서 여름이란 계절은 싫어하지만 여름에 생기는 일들은 반가운 것을 넘어 종종 기다리기까지 하게 되는 것인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올여름은 무엇인가가 멈춰 있는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름에는 다시 일을 시작하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쉬면서, 휴식에 젖은 채로, 불확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베이에서 하나를 더 구입한 <디트로이트>의 사운드트랙 씨디는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소식 모르고 멈춰 있다. 그러고 보니 저 시인의 말이 쓰인 건 내가 태어난 달인 12월이구나. 이러다 가만히 겨울이 와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를 하게 된다. 여름을 그렇게나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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