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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07. 2018

명동에서 뉴욕 생각했던 날.

뉴욕이라니, 동진아

뉴욕에서 머물던 일주일 중 세운 유일한 계획은 '한국 사람'들로부터 최대한 벗어나 철저히 혼자가 되는 거였다. 이건 딱 두 순간을 제외하면 그런대로 잘 지켜졌는데,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블루보틀 커피에서 어느 한국 사람들의 대화를 잠시 엿들었던 것이 하나였고, 다른 하나는 물티슈 때문이었다. 가지고 갔던 20매짜리 휴대용 물티슈가 다 떨어져서 새로운 걸 사려는데 드럭스토어들은 몇 군데를 돌아봐도 도무지 물티슈를 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생각난 게 코리아타운이었는데, '한국 마트' 같은 곳에 물티슈가 있긴 했지만 100매 짜리여서 가지고 다니기엔 영 아니었다. 네이처 리퍼블릭이나 토니모리 같은 데서는 클렌징 티슈 밖에 팔지 않았다. 저녁 시간이 됐으니 저녁이나 먹어보자 하곤, 두어 블록을 걸어서 들어간 곳이 짬뽕을 하는 체인점이었다. 그곳의 점원들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었다.


원래는 명동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여기 온 건 단지 CGV 여의도에서 이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상영하고 있지 않아서였는데, 걷는 중에 비가 조금 많이 오기 시작했다. 비 구경을 하면서 저녁을 해결할 작정으로, 무작정 눈에 보이는 라멘집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점원 중에는 '한국 사람'이 있었지만 식사를 하는 동안 들은 말은 메뉴 주문할 때 들은 "저희 선불이에요"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말이었다. 나처럼 혼자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세 명 있었으니 선불이라는 말을 세 번 들은 걸 빼면 이곳은 외국이었다.


그것보다 정작 외국이었다고 느낀 건 인테리어 때문이었는데, 코리아타운 근처의 짬뽕집도 마침 2층에 있었던 데다 창가 자리와 일반 테이블 자리의 배치가 꼭 그때 거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서울 명동 가운데에 앉아 뉴욕에서 먹은 짬뽕을 떠올리게 된 건 내게 뉴욕이 아직 거기 있어서일 테다. 전부터 명동이라는 공간에 정감을 느껴본 적은 줄곧 없었는데, 지나가는 우산들을 보면서 새우덴뿌라라멘을 받아들고 있자니 타국 생각이 또 나는 것이다. 그때는 잠시나마 혼자라는 게 좋았다. 그 계절의 기분을 다시 겪고 싶다. 라멘을 한 젓가락 집으려는데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금세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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