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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31. 2018

칭찬에 관하여, 다만 나를 웃게 하는

모임을 운영하다보니

칭찬에 약하다. 무엇이 됐든,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길 들으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당할까 싶어 지는 머쓱함을 느낀다. "에이 아니에요" 하자니 과한 겸손인 것 같고, 넙죽 "감사합니다" 하자니 그것도 스스로에겐 아주 마음에 드는 반응은 아니다. 그럴 땐 그냥 가볍게 웃고 만다. "그런가요", "다행이다" 등의 말과 함께. 어릴 때부터 스스로가 무언가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칭찬의 말은 누구에게든 무엇에 관해서든 들을 때마다 낯설었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상대가 보기에 그의 입장에서 정말 칭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만한 나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고, 동일한 일에 대해서도 그 받아들임이 다르기에 거기다 대고 "제가 진짜 잘한 것 맞아요?" 식의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겠다. 마찬가지로 "저 칭찬받을 자격 없어요! 못했어요!"와 같은 이야기도 하지 않으니만 못할 것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건 그래서, 칭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되 그저 그 발화에 고마움을 전하는 내 방법이다. 거기엔 이런 말이 숨어 있다. 그 칭찬에 정말 부응하는 사람이 될게요. 말하기보단 쓰는 게 좋고, 쓰는 것보단 가만히 바라보는 게 좋다. 영화 모임을 운영하니 자연히 이야기를 준비하고 이야기해봄직한 씨앗과 단추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야깃거리에 해당하는 건 그 영화에 대하여 사실에 기반한 것들로 최소화하게 된다.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3년 정도 이 모임을 꾸리다 보니 경험상으로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보다는 함께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는 편이 그날의 대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본 영화에 대해 개괄적인 소개를 하다가도, 내 마무리는 거의 항상 이렇다. "어떻게 보셨어요?"



6월에 이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쓰는 시간'이라는 걸 만들었다. 매번 만들어온 '카드'의 실용성을 높이고 싶었기도 하지만,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쓰는 행위'를 모임에 오시는 분들에게도 짧게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자의 감상을 꺼내기 앞서 스스로 돌아보거나 정리해볼 만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분 남짓의 '쓰는 시간'에는 스타벅스의 그것처럼 자연스러울 만한 배경음악을 세 곡 정도 틀어놓는다. 해보니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이런 이야길 나눠보면 좋겠다, 는 것들을 스스로 조금 정리하면서 숨 고를 시간이 된다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말없이 각자의 펜만 움직이는 그 짧은 시간이 이다음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줄까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번 7월 모임 때는 참석자 분들께 문자 공지를 하면서 펜 가져오시라는 이야길 빠뜨렸는데, 마침 펜을 여러 개 갖고 다녀서 다행히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시간이 나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와주시는 분들 각자가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영화의 시간도 영화 밖의 시간도 유한하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낳아지고 쌓아지고 또 퍼지고 번질 수 있으니까. 모임이 끝나고 가볍게 식사를 하는 시간도, 지하철역까지 잠깐 같이 걷는 시간도, 모두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칭찬을 들었을 때 내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는 행위에는, 말 하나가 더 숨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이 시간을 같이 만들어준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라고. 하나 더 있다. 다음의 이야기도 함께해주셨으면 해요,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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