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운영하다보니
칭찬에 약하다. 무엇이 됐든, 나에 대한 좋은 이야길 들으면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적당할까 싶어 지는 머쓱함을 느낀다. "에이 아니에요" 하자니 과한 겸손인 것 같고, 넙죽 "감사합니다" 하자니 그것도 스스로에겐 아주 마음에 드는 반응은 아니다. 그럴 땐 그냥 가볍게 웃고 만다. "그런가요", "다행이다" 등의 말과 함께. 어릴 때부터 스스로가 무언가를 아주 잘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칭찬의 말은 누구에게든 무엇에 관해서든 들을 때마다 낯설었고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상대가 보기에 그의 입장에서 정말 칭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만한 나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고, 동일한 일에 대해서도 그 받아들임이 다르기에 거기다 대고 "제가 진짜 잘한 것 맞아요?" 식의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겠다. 마찬가지로 "저 칭찬받을 자격 없어요! 못했어요!"와 같은 이야기도 하지 않으니만 못할 것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건 그래서, 칭찬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되 그저 그 발화에 고마움을 전하는 내 방법이다. 거기엔 이런 말이 숨어 있다. 그 칭찬에 정말 부응하는 사람이 될게요. 말하기보단 쓰는 게 좋고, 쓰는 것보단 가만히 바라보는 게 좋다. 영화 모임을 운영하니 자연히 이야기를 준비하고 이야기해봄직한 씨앗과 단추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야깃거리에 해당하는 건 그 영화에 대하여 사실에 기반한 것들로 최소화하게 된다.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3년 정도 이 모임을 꾸리다 보니 경험상으로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보다는 함께 본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는 편이 그날의 대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본 영화에 대해 개괄적인 소개를 하다가도, 내 마무리는 거의 항상 이렇다. "어떻게 보셨어요?"
6월에 이 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쓰는 시간'이라는 걸 만들었다. 매번 만들어온 '카드'의 실용성을 높이고 싶었기도 하지만,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쓰는 행위'를 모임에 오시는 분들에게도 짧게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각자의 감상을 꺼내기 앞서 스스로 돌아보거나 정리해볼 만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분 남짓의 '쓰는 시간'에는 스타벅스의 그것처럼 자연스러울 만한 배경음악을 세 곡 정도 틀어놓는다. 해보니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이런 이야길 나눠보면 좋겠다, 는 것들을 스스로 조금 정리하면서 숨 고를 시간이 된다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말없이 각자의 펜만 움직이는 그 짧은 시간이 이다음을 어떤 이야기로 만들어줄까 기대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것이다.
이번 7월 모임 때는 참석자 분들께 문자 공지를 하면서 펜 가져오시라는 이야길 빠뜨렸는데, 마침 펜을 여러 개 갖고 다녀서 다행히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시간이 나 스스로에게가 아니라, 와주시는 분들 각자가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영화의 시간도 영화 밖의 시간도 유한하지만 이야기는 끊임없이, 낳아지고 쌓아지고 또 퍼지고 번질 수 있으니까. 모임이 끝나고 가볍게 식사를 하는 시간도, 지하철역까지 잠깐 같이 걷는 시간도, 모두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의 칭찬을 들었을 때 내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는 행위에는, 말 하나가 더 숨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이 시간을 같이 만들어준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라고. 하나 더 있다. 다음의 이야기도 함께해주셨으면 해요,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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