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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진 Jul 23. 2018

10년 전 편의점의 지금 일기, 라고 해야할까

라디오 데이즈

최저시급이 4천 원을 갓 넘겼을 때였다. 편의점이랑 친하게 된 건, 단지 입대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때 늘 매장에서 라디오를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출근할 땐 이적의 텐텐클럽,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 박스, ... , 배성재의 행복한 아침, 그리고 퇴근 무렵에는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까지. 몇 개의 종영 프로그램은 DJ나 프로그램명이 아쉽게도 생각나지 않는다. 몇십 원 하는 유료 문자로 보낸 신청곡 나올 때가 새벽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오류동에 살지 않게 되면서 그 자리에는 이후 다시 가보지 못했다. 네이버 지도 이곳저곳을 자주 살펴보는 편인데 얼마 전 지도를 보다 보니, 내가 처음 아르바이트라는 걸 시작했던 거기 그 자리에는 더 이상 GS25가 없었다. 나 일 가르쳐줬던 형이랑, 교대하는 저녁 타임 누나랑, 점장님이랑, 같이 극장에도 가고 고기도 먹고 맥주도 마시고 그랬었는데. 점장님이 시급 너무 적다고 간식이랑 커피 사 먹으라고 POS기 밑에다 몇 천 원씩 넣어주시곤 했었는데. 그때 다녔던 동네 미용실도 그렇고, 장소에는 여러 좋은 기억과 시간들이 있었다. 벌써 그게 10년 전의 일들이다.


전역하고 나서는, 그때 점장님 덕에 알게 됐던, (같은 권역의 점주들끼리는 대체로 다 알고 지내는 모양이다) 몇백 미터 인근 GS25의 점장님이 부탁해서 몇 달을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입대 전 저녁 타임 때 있던 누나를 우연히 가게에서 만나기도 했다. 그 누나는 중간에 잠시 그만두었다가 다시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대에 일부러 가서는 음료나 도넛 같은 걸 슬쩍 건네기도 했다. 아직도 두 점장님 성함도, 그 누나 이름도 기억난다. 영화에 지금처럼 관심과 애착이 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그때 봤던 영화 두 편도 물론이다. '빵 굽는 편의점' 시범 매장 같은 게 돼서 그 두껍고 뭉툭한 장갑도 점장님 곁에서 몇 번 껴보곤 했다. 내 일은 야간인데 낮에도 가게에 들르고 저녁에도 들르고 아침에 교대 안 하고 어슬렁어슬렁 일 도와주다 점장님이 점심 사주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카드 포인트 때문에도 그렇고 집 바로 앞에 CU가 있어서도 그렇고 요즘은 정작 GS25를 잘 안 가고 CU를 더 자주 찾게 됐는데, 내 느낌엔 도시락이나 김밥 같은 F&F들은 CU보단 GS25가 지금도 더 잘 만드는 것 같다. 새로 나왔는데 먹어보고 싶은 건 일부러 유통기한 몇 시간 남았을 때 사무실 냉장고로 빼놓고 폐기 찍어서 먹어보기도 했다. 새벽 다섯 시 무렵이면 늘 줄 지어 들어와서 말없이 커피랑 담배 사가는 일용직 아저씨들도, 그보다 30분 후면 매일 오시던 박스 수거해가던 할아버지도, 아침이면 교통카드 충전해가던 교복 입은 학생들도, 이제야 보면 미화된 기억들이다.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은 이제는 무얼 하며 지내고 있을까. 요즘 야간 아르바이트하던 사람이 그만두었는지 집 앞 CU에 밤늦게 방문하게 되면 점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계시는데, 늘 피곤해 보인다. 커피라도 하나 건네보아야겠다. 지금 최저시급이라면 비싼 커피를 사도 내가 일하던 때 시급만큼은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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